입보다는, 귀와 주머니
말할 때와 들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면 <따> 당한다. 이미 했던 이야기를 벌써 몇 번째 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은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듣다 보면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서서히 피곤해지고, 급기야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다. 그때부터는 함께 있어도 교감은 없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른과, 딴생각 중인 나만 있을 뿐,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우리는 없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나이가 들면 견문이 넓어지고, 지혜가 깊어지다 보니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때문에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끊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는 예가 허다하다. 나이도 많은데, 목소리까지 커서 어른이 주도권을 갖는다. 그렇다고 중간에 말을 끊을 수도 없다. 자칫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시간 이야기하다 보면 이야기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삼천포로 빠진다.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니 혼자 이야기하는 고집불통 늙은이의 잔소리만 가득하다.
고령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지인이 있다. 왕성한 식욕 때문인지 건강은 기본이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한시도 쉬지 않는다. 그 분과 식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전한다.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자기 자랑 일색이다”, “대화 중 한 마디를 거들면 열 마디로 이어진다”
좋게 보면 열정이다.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노인의 고집스러운 자기주장일 수 있다.
말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 말을 끊을 줄 아는 행동이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도 다음 기회로 넘길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말할 기회가 없을 것처럼 이야기를 잇는다면, 상대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막아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치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는 욕심쟁이 꼴불견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이 들수록 입보다는 귀와 주머니를 더 열어야 사람이 따른다.
잘 들어주고 밥 잘 사는 어른에겐 편안함이 있지만, 밥은 잘 사는데, 자기 말만 늘어놓으면 불편한 노인의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짧게 말하고 오래 듣는 습관, 부드럽게 말하고 따듯하게 품는 것은 기술이 필요하다. 자신의 경륜과 지혜를 돋보이고 싶다면, 말하기보다 잘 듣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상대가 원할 때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을 줄 안다면, 젊은이들이 따르고 싶은 선배, 윈더 풀 형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