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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n 12. 2019

#10. 감나무와 맺은 인연(因緣)

감나무가 아픈건가?

우리 집엔 감나무 한 구루가 자란다. 벌써 십 수년째 한 가족처럼 연(緣)을 맺어왔다. 그런데 올해는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이상 징후가 보인다. 해를 거르며 열매를 맺은 적은 있지만 올해처럼 한 나무에서 하나의 줄기만 열매를 맺는 일은 없었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맺힌 감을 보면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곤 했는데, 이른 봄, 몇 년 동안 잎을 맺지 않는 굵은 곁 줄기 하나를 자른 것에 대한 저항일까? 그 흔한 영양제 하나 공급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을 표출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올해는 탐스럽게 맺힌 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30년이 넘게 살던 단독 주택을 헐고 그 자리에 다시 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심었던 대부분의 나무들을 정리하고, 감나무 한 구루만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 옮기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뿌리 부분 손상이 컸기 때문에 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뿌리가 내리면서 오늘에 이른 고마운 감나무다.


나무는 생물이다.

나무는 인간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이 주는 비와 바람, 그리고 온도, 땅의 기운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손이 닿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무의 본질보다는 꽃과 열매에 초점을 맞추는 인간들 때문에, 자연법칙에 온전히 순응하는 삶이 쉽지 않다. 원치 않는 살충제가 뿌려져도 저항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쁘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키우고 싶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무수히 잘려나가는 가지를 지켜보는 아픔도 겪어야 한다. 인간의 이런 행위들이, 진정으로 나무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꽃과 더 많은 열매, 그리고 균형 잡힌 나무를 원하는 인간들이기적 사고에 기인한 아픔이고 스트레스다.


인연(因緣)은 사람과 사람 사이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감나무와 맺은 인연처럼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생물들과 연을 맺을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공기와 바람, 같은 낮과 밤을 보낸다면 이 보다 귀한 인연은 없다. 세상 모든 생물들이 인간처럼 말과 글로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연(緣)을 이어갈 순 없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다만 표출하는 소리와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우매함이 더 깊숙한 연을 방해할 뿐이다.


인연(因緣)이란?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인 직접적 원인을 의미하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인 간접적 원인을 의미한다. 씨앗은 나무의 직접적 원인인 인(因)이고, 햇빛, 공기, 수분, 온도 등은 간접적 원인인 연(緣)이다.


인연(因緣)은 강제하지 않는 차원 높은 책임이 뒤 따른다.

서로를 헤치지 않고,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며 공생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인위적으로 감나무를 옮겨 왔다면 자연의 순리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감나무를 심은 것이 인(因)이라면,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가꾸고 보살피는 책임은 연(緣)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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