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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Sep 30. 2019

#98. 정의의 가면을 쓴 진짜 저항 자는 누구일까?

검찰 개혁을 가로막는 주범은 누구일까?

검찰 개혁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복잡하다. 그 중심에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그의 가족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 개혁 적임자 인식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각 정당뿐 아니라 국민의 시선도 극명하게 갈리다 보니 나라 안이 시끄럽다. 여야 모두 검찰 개혁을 원하지만 검찰개혁 촛불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민주당 대변인은 29일 현안 서면 브리핑에서 이런 말을 했다(출처: 동아닷컴 기사)

“어제(9월 28일), 200만 국민이 검찰청 앞에 모여 검찰개혁을 외쳤다”, “검찰개혁, 국민이 나섰다”,  “거대한 촛불의 물결은 검찰개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사명이다”, “오로지 ‘자기 조직’을 위해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몽니도, 나아가 검찰과 한편을 자처하며 개혁을 막아서는 정치세력도, 더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


 “어제 검찰청 앞은 분노로 분열된 국민들 간의 전쟁터였다”, “그것도 역대급 부정과 비리의 집합체로 판명난 조국으로 인해 매우 처절하고 극렬하게 나뉘었다”,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울분을 토하고 있다”,“부적격 장관 한 명 때문에, 아까운 국가적 역량을 이렇게까지 소진시켜야 하는가” - 한국당 대변인 논평 -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대법원에 가면 오른손엔 저울을, 왼손엔 법전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만날 수 있다.


오른손 저울은 형평성을, 왼손의 법전은 올바른 판단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정의 실현의 의지를 상징한다.


法(법 법) = 氵(삼수변_水) + 去 (버릴 거)


물(_삼수변, 水)은 잔잔하고 부드럽다가도 바람이 거세지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파고를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수평을 유지하며 잔잔해지는 특성이 있다(형평성). 반면에 去 (버릴 거)는 없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악의 요소를 제거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사람이 누구든 죄를 지으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법이 가진 기본 정신이다.

法은 사람에게 적용하지만 본질은 지은 죄에 초점이 맞추어진 응징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검찰청 역사관 체험관 홈 페이지에 보면 검찰의 역할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검찰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법집행기관이자 인권보호기관으로, “헌법가치를 수호하여 국민의 인권을 보장합니다”, “적법절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여 정의 실현에 기여합니다”, “부정부패 범죄에 적극 대응하여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보다 좋은 검찰의 역할이 또 있을까. 결국은 역할엔 충실하지 않으면서 무소불위의 권력만 휘두른다고 보았기 때문에 “검찰 개혁”이 도마 위의 생선이 된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익숙한 것이 떠나고 새로움이 들어오면 마찰이 생긴다. 여, 야 막론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개혁을 외친다. 하지만 익숙함(기존의 검찰)과 새로움(검찰 개혁)이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음 정권으로 그 숙제를 넘기는 꼴이 반복되어 왔다.


검찰의 역할만 놓고 보면 여, 야 정치인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죄’라는 본질을 다루는 사람이 부패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이다. 즉 국민의 부패를 막아야 할 집단이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단이다. 그렇다면 이 싸움은 국민과 검찰 간 싸움인 셈이다.

문제는 이해 관계자들의 자기중심적 해석이 문제다. 모두가 좋자고 하는 일임에도 대통령과 정부, 검찰, 여, 야 국회의원, 그리고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식자들의 해석이 다른 이유가 뭘까. 이는 그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이래서 검찰 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다”


검찰 개혁 총대를 매는 사람이 누구든 본질은 “부패하지 않는 검찰”,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검찰”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적임자인지 묻고 싶다. 여든 야든 자신들의 생각만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진심이라면, 투쟁에 앞서 선행해야 할 것이 있다. 검찰 개혁과 관련한 이해 관계자들 모두 지금까지 누려왔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는 선언이 먼저다. 가진 게 많을수록, 지키고 싶은 게 많을수록 저항도 심하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잃거나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결국은 그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5천만 국민이 공평하게 누려야 할 공정성이 무차별 훼손되어 온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이 국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민 행복을 대리하는 사람들 중에 주범이 있는 셈이다.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사람들, 명쾌한 대안은 없고 목소리만 큰 사람들, 죄라는 본질은 보지 못하고 사람만 보는 사람들, 자신들만이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것처럼 드러내는 사람들… 그들이 검찰 개혁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정의의 가면을 쓴 진짜 저항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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