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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Apr 18. 2017

#16. 생애 3死

사람은 3번의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

죽는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예외는 없다

화려했던 명성도, 힘들고 버거웠던 삶도 때가 이르면 다 내려놓고 돌아서야만 한다.

이승에서 누렸던 그 어떤 것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저승길은 그렇게 시작된다.

죽음이란 ‘생물의 목숨이 끊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죽음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생애 3死

인간은 3번의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하겠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사람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죽음은 신체적으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사망하는 죽음을 말한다.

숨 줄이 끊어진 사망(신체적 사망)이 그것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실질적인 죽음을 뜻한다.


또 하나의 죽음은 정신적 사망이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문제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를 살아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명의 존엄적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생명을 죽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기에 독자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다만 역할적 측면에서의 죽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혼 줄이 끊어진 정신적 죽음이라  할수있다..


마지막 한 가지는 경제적인 죽음이다. 즉 돈 줄이 끊어진 죽음을 비유한 것이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돈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거칠게 표현했다.

“우리는 구석기시대처럼 자연으로부터 직접 먹을거리를 포획할 수가 없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있다. 다 큰 사람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

돈을 경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세상에서 돈줄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넉넉하진 않아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돈은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존재의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


노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노년은 돈으로 통하는 세상을 경험하는데 수많은 제약 조건을 넘어설 수 없다. 당장 먹고 입고 쓰는 기본의 문제부터 비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많은 날들을 누군가의 도움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만일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주인공이 된다면 이는 경제적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죽음은 단연코 경제적 죽음(돈 줄)일 확률이 높다.

이어서 정신적 죽음(혼 줄), 마지막으로 신체적 죽음(숨 줄)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보편적일 게다(물론 단계를 거치지 않는 죽음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죽음은 한 번의 죽음이다.

하지만 3가지 죽음의 형태를 경계할 필요는 있다.


1. 돈 줄이 끊어지지 않게 재무적 관점에서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평생소득 디자인)


2. 혼 줄에 이상이 생겨도 가족에게 금전적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간병 보장 플랜을 마련해 두어야한다(간병보장 디자인)


3. 끝으로 원치 않는 상해나 질병으로 인해 숨 줄이 당겨때를 대비한 사망보장 플랜이 그것이다( 사망보장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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