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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Apr 18. 2017

#17. Know人

훗날 No人은 아니고 싶다. 나는 Know人(노인)이고 싶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終日 本家’ ‘종일 본가’ 란 하루 온종일 집에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팔 살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 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 보는 것이다     
이동순의 ‘가시연 꽃’이다.

3년전 여름. 본의 아니게 종일본가를 경험한 적이 있다. 때 마침 아이들도 휴가를 떠났고 집사람도 친구와의 약속으로 주말을 비워야 했던 것이다. 주말에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다는 생각에 생색도 낼 겸 아내의 자리를 대신하겠다는  했다. 원한 것은 아니지만 인위적 종일 본가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언뜻 생각해도 아버님 식사와 강아지 밥을 챙기는 일 외엔 딱히 신경 쓸 일은 없어 보였다.

금요일 저녁

아내를 보내고 아버님과 나 그리고 뽀돌이와 미소(강아지) 맞닥트린 토요일의 아침은 아침이 아니었다. 실컷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11시 5분. 해가 중천이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늦잠을 잔 것이다. 문제는 아버님 아침 식사였다. 본의 아니게 아침을 직접 해결 하셨단다. 첫날부터 실수다. 이불 자리를 정리하고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한다. 호박, 두부, 약간의 돼지고기와 깻잎을 넣은 나만의 된장찌개를 끓인다. 아내가 챙겨놓은 반찬을 꺼내 아버님과 함께하는 남정네들의 점심을 해결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심심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내의 잔소리가 사라지다 보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한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그건 싫고 차라리 강아지와 함께하는 산책을 선택했다. 강아지 목줄을 메고 비닐봉지 한 장, 냅킨 서너 장을 챙긴 후 문을 나선다. 7월 하순의 햇볕은 뜨겁다. 해 떨어지면 할걸 그랬나, 내심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집 밖에 나온 것을 좋아하는 강아지 두 마리를 위해서라도 산책을 강행한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목줄을 풀고 달리기도 하고, 남한 산성 초입까지 길거리 산책도 했다. 버스정류장 앞. 사람들이 즐비한 곳에서 뽀돌이가 응가를 한다. 재빨리 냅킨으로 응가를 치우고 비닐봉지에 담은 후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난다. 우린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강아지와 함께하는 산책 겸 데이트로 오후를 보냈다.

어느덧 해는 기울고 저녁은 또 무엇을 먹나. 아버님이 삼겹살을 좋아하시니 점심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삼겹살을 올리기로 했다. 우린 그렇게 오늘 하루끼니를 해결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설거지 통을 보니 식기가 한득이다. 발바닥에 걸리는 이 물질들도 자꾸 거슬린다

강아지 똥이며 소변은 왜 그리 자주 보는지, 저녁 설거지와 간단한 청소를 끝내고 나니 9시 뉴스가 시작된다.

피곤했나 보다. 뉴스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자장가로 들린다.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하시는 아버님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벌써 11시가 넘어간다.

버틸 수 있는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오면 안 될까?

토요일 하루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내가 아내에겐 어떻게 보였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말의 단 이틀도 가사 일을 책임지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지..


나는 이동순 작가의 ‘종일 본가’라는 글을 폭풍 공감한다.

아버님의 ‘종일 본가’를 매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옥상에 심어 놓은 상추, 깻잎, 호박과 참외 그리고 고추, 가지, 샐러리와 방울 토마토까지 잔뜩 심어 놓은 채소류에 물을 주는 것이 하루 중 아버님이 해야 하는 노동량의 전부다. 토종닭 4마리 모이를 주고 물 주는 것도 아버님 몫이다. 하지만 길가에 만들어 놓은 11m 화단과 뒷마당 화초에 물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몫이 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배분한 것은 아니다. 어찌하다 보니 아버님은 당신의 몫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한다. 강의 때문에 집을 비우는 출장이 잦은 편이다.  그럼 뒷마당의 화초나 화단에 물 주는 일을 할 수도 있으련만 돌아와 보면 바짝 말라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물을 준다. 한두 번이 아니다. 늘 그랬다 아버님은 당신이 하는 것 외엔 모두가 다 귀찮다고 한다. 아버님이 키우자고 고집해서 키운 닭이지만 물주는 것도 내심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맘이 동하지 않것이다. 조울성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아버님의 활동량이 늘어나지만 추워지면 급 다운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그나마도 아니다. 벌써 7월 더위가 한창인데 방 이외엔 꼼짝도 안 한다. 집 밖 출입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이젠 옥상채소나 닭 물주는 것도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좋지 않은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다. 매사에 동분서주하며 가족들을 부양한 최고의 아버지다. 홀홀 단신으로 남하하여 8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다. 심장병과 당뇨 합병증을 앓고 단명하신 어머니를 18년간 뒷바라지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다.

피붙이 하나 없는 남한 땅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댈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면서 오로지 성실한 자세 하나만으로 6남매를 키워낸 위대한 아버지다.  그것이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75세까지의 아버지다. 하지만 세월은 아버지를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았다. 75세에 일손을 놓고 1년이 지나면서 조성 우울증이 들어왔다.  급기야 아버지의 행동 반경도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집으로, 집에서 아버지의 방으로 행동 반경을 좁히는데 불과 1년이면 족했다. 지금의 아버지는 당신의 방과 침대, 그리고 TV를 벗 삼아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끊었다. 눈이 아픈 까닭이다. 침대에 망부석처럼 않아서 특정 사물을 주시하는 날이 많아졌다. 종일 본가가 아닌 종일 침대 수준을 연상케 한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일까?  

우리 모두는 부모님 사랑으로 얻어진 하늘의 선이다. 세상에 울음소리를 신고하면서 아들(남자인 경우)이라는 호칭으로 태어났다. 시간이 흘러 배우자를 만나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가문의 사위된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좋은 때에 튼튼한 아들과 어여쁜 딸을 출생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세상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겪어보지 않은 마지막 한 가지의 경험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낳게 될 손 자녀로부터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노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NO人은 아니고 싶다. KNOW人(노인)이고 싶다. 

Know는 ‘안다’는 뜻이다. ‘人’, 사람을 안다는 뜻이다.  나는 know人이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노인으로 해석하고 싶다. 보태자면 ‘폼 나게 사는 방법을 아는 노인’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두 가지의 귀한 가르침을 받은 것 같다.

하나는 평생의 검소함이다.

재산을 낭비하지 않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는 삶의 방식을 물려 신것 같다.

두 번째는 정신력이다

황해도 봉산, 18세의 어린 나이에 고향을 뒤로하고 홀홀 단신 남쪽으로 내려와 가정을 일구셨. 믿고 의지 할 사람이 없는 타향살이. 서울에서 이날까지 당신의 힘 만으로 이 만큼의 행복을 이루어 낸 아버지다. 그것만으로도 그분은 내게 있어 NO人이 아닌 KNOW人이다. 아직도 당신과 관련한 비용은 자식인 내게 부담시키지 않으려 하신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결하려는 아버지다. 한 가지 건강 문제와 무뚝뚝한 성격을 제외하면 흠잡을 것이 없는 KNOW人이다. 다만 남들이 말하는 재미있는 인생을 살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런 분이다.  정적이면서, 사색하면서 평안을 느끼는 그런 사람 말이다.


누군가 내게 폼나게 사는 KNOW의 삶은 어떤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1. 건강해야 한다

  2. 경제적으로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노인이다

  3. 만날 사람이 적지 않아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노인이다

  4. 마음만 먹으면 자식 눈치 보지 않고 아내와 함께 몇 날   며칠씩 여행할 줄 아는 노인이다

  5.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의 관심 범위에 늘 존재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배려하며 베풀 줄 아는 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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