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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n 23. 2020

정말 뒤끝이 없다고

내가 뒤끝은 없잖아”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어떤 여자분이 통화 중에 했던 말이다. 통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느낌은 친구와의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순간 뒤끝의 의미를 알고 싶어 졌다. 검색해 보니 눈에 들어오는 표현이 있었다.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감정>은 무를 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감정을 마음속에서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끝을 말한다면,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만다. 논리의 비약인지 모르지만 과연 그렇게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뒤끝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당사자는 어떨까?

이미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신음 중인데, 정작 돌멩이를 던진 당사자는 뒤끝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 받은 마음이 위로될까? 설령 돌멩이를 던진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돌멩이를 맞은 상대는 아니다. 물론 뒤끝 소릴 들어야 하는 원인 제공자가 돌멩이를 맞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돌멩이를 던지며 분풀이를 한 후, 뒤끝 없음을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뒤끝이란 말은 함부로 남발할 수 있는 말이 아닌 셈이다. “뒤끝 없음”을 말하면서 쿨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또 하나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뒤끝을 논하기 전에, 정말로 자신이 뒤끝 없는 사람인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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