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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Sep 16. 2020

코로나가 바꾼 점심; 도시락을 싸왔다

코로나로 인해 요즘은 도시락 점심을 먹고 있다. 얼추 2주 정도 된 것 같다. 고등학교 이후론 도시락을 싸 본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면 4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도시락은 네모난 양은 도시락이다. 뚜껑을 열어보면 네 귀퉁이엔 회색빛 밥알이 제법 묻어있다. 양은 도시락이 바래서 그런지 귀퉁이 밥은 색깔이 약간 달랐다. 반찬통은 맥스웰 하우스 커피병이다. 특히 김치를 많이 싸왔는데 김치 국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로 뚜껑을 막아도 간간히 국물이 새어 나오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 가방 속 책이 김치 국물에 젖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또 어쩌다 한 번 계란 프라이라도 가져오면 그날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도시락 뚜껑을 열기 무섭게 양 옆에서 젓가락이 날라 든다. 계란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당하고 나면 도시락 싸는 방법이 달라진다. 도시락에 밥을 반만 담고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은 다음,  계란 프라이 위에 나머지 밥을 덮어 도시락을 완성함으로써 친구들의 젓가락을 방어하곤 했다.

그 시절엔 혼, 분식 검사도 있었다. 점심시간, 담임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를 하는데 쌀밥을 가져온 아이들은 보리알 동냥을 한다. 보리밥을 싸온 친구들에게 보리알을 몇 개씩 얻어서 쌀밥 상부에 빽빽이 심는 것이다. 그런다고 쌀밥이 보리밥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점심 풍경으로 다가온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도시락 비빔밥이다. 도시락에 자기 반찬만 아니라 친구들 반찬까지 넣은 후 뚜껑을 닿는다. 그리고 사정없이 도시락을 흔들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비빔밥이 완성된다. 그보다 맛있는 비빔밥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겨울엔 누룽지도 먹을 수 있다. 교실에 비치된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으면 밥이 데워지고 바닥은 눌어붙어 누룽지로 변한다. 밥과 누룽지를 다 먹은 후 조금 남긴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끌이면 구수한 숭늉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40 여전 도시락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시차 점심을 하다 보니 8시 출근 자는 11시에, 10시 출근 자는 1시에 점심을 먹는다. 이번 주 필자의 점심시간은 1시다.


27층에 마련된 사내 휴게실은 전망이 끝내준다.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스카이라운지가 따로 없을 만큼 훌륭하다. 창가에 앉아 도시락을 펼쳐놓고 밥 한 숟가락에 반찬 하나,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한강 풍경을 눈에 담는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밥에 집중했는데, 휴게실에서 밥을 먹을 땐 한강과 주변 풍경을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한강을 벗 삼아 점심을 해결하는 1시간은 지친 업무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낄 수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잠실 730  타워, 27층 휴게실에서 바라본 한강


흐리다. 비가 오려나 보다. 맑은 하늘을 보며 점심을 했으면 더 좋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어 보인다. 오늘은 또 어떤 반찬을 싸쥤을까. 도시락 가방을 여는 재미가 쏠쏠하다. 와우, 김, 불고기, 묵무침, 그리고 볶은 김치와 멸치 볶음이 오늘 반찬이다. 이만하면 아내의 사랑이 담긴 100만 원짜리 점심이다.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라는 말도 있는데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겠다. 맛있게 먹어주는 게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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