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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Nov 22. 2020

화초를 키우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

자연에서 나고 자란 야생화와, 온실에서 키운 화초류가 지닌 생명력은 다르다.

이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얻는 방법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야생화는 자연의 보살핌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지만, 온실 속 화초는 사람의 보살핌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야생화나 온실 화는 봄이 오면 싹을 틔우고, 가을로 접어들면 대부분 꽃이 진다. 그리고 뿌리 속에서, 다음 해 봄을 기다리는 생명을 키우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화초들은 나고 지는 일련의 과정이 다르지 않다. 물론 단 년생 화초는 다음이 없다. 그렇다고 나고 지는 메커니즘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화초가 성장하려면 적당한 햇빛과 수분, 그리고 화초가 살 수 있는 온도가 요구된다. 하지만 야생화는 자연이 주는 생명 공급 메커니즘에 특화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보살핌과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다. 가물어도, 춥거나 더워도 자기 생명을 지킬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야생화다. 하다못해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저기 아무 곳이나 필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관심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다. 씨앗이 바람에 실려 안착한 그곳이, 야생화 삶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에,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극복할 뿐이다.


하지만 온실 속 화초는 다르다.

일일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자기 수명을 다하지 못할 만큼 연약하다. 양지바른 햇빛으로 옮겨줘야 하고, 마르지 않게 수분을 보충하는 것도 사람의 손을 탄다. 뿐만 아니라, 화분의 흙도 영양 상태를 고려해서 때마다 분갈이를 해줘야 하고, 통풍이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온실 화초는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관심도 필요하다. 온실 화초는 야생화와 달리 사람의 무관심에 예민하기 때문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고 관리하지 않으면 튼실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일생도 야생화와 온실화가 섞인듯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어릴 땐 온실화, 젊을 땐 야생화, 늙어서는 다시 온실화의 기질을 닮았기 때문이다. 어릴 땐 무엇하나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게 없을 만큼, 세심한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의 관심을 간섭으로 받아들인다. 자기만의 시,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일상을 자신이 주도하고 싶어 한다. 한 마디로 부모에게 간섭받지 않는 자기만의 삶에 눈 뜨기 시작한다.


성장기를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비로소 부모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갖기 시작한다. 이때의 삶은 야생화의 삶과 닮아있다.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관여한 모든 것에 책임의 져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하기 때문에,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으로 옮겨가며 홀로 서려 애쓴다. 하지만 이런 삶도 오래가진 않는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혼과 함께 독립하고 나면, 노부부의 삶은 위축되기 시작한다. 경제 활동, 행동반경, 인과관계, 건강 상태 등 무엇하나 예전 같지 않은 것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물론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노후를 준비한 사람들은,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노년을 보낸다. 이는 비단 경제적 여유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행동반경, 인과 관계,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 까지 한층 여유 있고 액티브한 노년을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준비된 노후를 산다고 해도 날로 쇠약해지는 건강을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 시기만 다를 뿐, 때가 되면 다시 온실화의 삶으로 접어든다.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자기들의 삶을 마감한다. 야생화도, 온실 화도,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나고 지는 일련의 수순을 거부하지 못한다. 다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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