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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n 25. 2020

#16. 달님께 빈 소원

이름 모를 식물과 나누었던 무언의 이야기


"어떻게 그런 곳에 자릴 잡았니?"

돌 틈에 핀 이름 모를 생명


"바람이 저를 이곳으로 데려왔데요. 틔웠을 때 바람이 알려줬어요. 하지만 돌 틈에 끼다 보니 제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여기서 살았죠"


"그랬구나. 근데 힘들지 않니?"


"지금까진 그럭저럭 견뎠는데 이젠 무서워요?"


"왜, 뭐가 무서운데?"


"뽑힐까 봐요. 청소하는 아저씨가 저를 뽑아버리면 어떡해요. 아저씨처럼 예쁘게 봐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거 봐요, 아저씨도 자신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무서워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아저씨는 저를 뽑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건 네 말이 맞다"


"ㅎㅎ 거 봐요. 그러고 보면 세상은 감사한 게 많아요"


"감사한 거? 그게 뭔데?"


"아저씨처럼 저를 사진 찍는 사람도 많아요. 이 넓은 틈에 저만 피어 있잖아요. 바람도 느낄 수 있고, 때론 시원한 비도 맞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좋은 건, 매일 밤마다 달과 별을 보면서 방해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달님께 소원을 빌 수 게 제일 감사하죠. 어젯밤에도 그랬어요"


"소원!  무슨 소원"


"사람도 달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잖아요. 저도 매일 소원을 빌거든요. 그중에서 제일 많이 비는 소원이 뭔지 아세요? 내일도 살아있게 해 달라는 거예요. 매일 은 사람들만 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요"


"그럼 아저씨가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곳으로 옮겨줄까?"


"아니요. 돌틈이 너무 빡빡해서 파헤치면 제가 다칠 수 있거든요. 보기보다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놨어요"


"그럼 어쩌지?"


"그냥 여기 있을래요. 자리는 바꿀 수 없지만, 자세라도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서 열심히 살아야죠. 어때요. 오늘 제모습 예쁜가요?"


"응, 많이 예뻐"


"아저씨께 부탁하나 드려도 되나요?"


"부탁!, 나한테,... 그게 뭔데?"


"청소하는 아저씨에게 저를 뽑지 말라고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랫잎이 조금 녹슬긴 했지만,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요. 언제 뽑힐지 하루하루 근심하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그건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곳을 관리하는 분을 내가  알거든, 대신 부탁해 볼게"


"정말요. 고맙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가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저씨가 될 거예요.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도 기억하고 있을게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


오늘은 6월 13일 토요일 오후, 최재천 교수가 지은 책이 생각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풀 한 포기도 귀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마음을 알게 했던 그 책이 새삼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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