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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an 19. 2021

결재 도장 날인 각도, 사장에게 인사하듯 찍는 일본

특별히 시간에 쫓기는 일이 아니라면 출근과 동시에 뉴스를 검색하는 편이다.

오늘은 한국경제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기사를 접했다.

 

‘결재 도장도 인사하듯 기울여서’… ‘디지털 시대도 못 말리는 일본의 도장 문화’


첫 문장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재 도장을 찍을 때 지점장란을 향해 기울여 찍으세요.”


하다 하다 별걸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장이 사람도 아닌데, 인사하듯 상급자를 향해 기울여 찍는 게 말이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날인으로, 이른바 겸양 도장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겸양 도장(おじぎ印)이란, ‘사양함’, ‘겸양’을 뜻하는 일본어 ‘오지기(おじぎ)’에 ‘도장 인(印)’을 합한 것으로, 결재 란에 도장 날인을 할 때 직급에 따라 날인 각도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계장은 90도에 가까운 폴더 인사, 과장은 45도, 부장은 30도, 직급이 오를수록 각도는 줄어든다. 전무 정도 되면 사장을 향해 15도 정도 목례 수준의 기울기로 도장을 찍는 것이 겸양 도장의 불문율이란다


출처: 한경 비즈니스 칼럼(2021.1.1 기사)


일본의 조직 문화를 옳다 그르다 차원에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양 도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상사를 향해 인사하듯 도장을 찍는 것도 그렇고, 그 도장의 각도가 상사에 대한 예의라고 인식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혹여 실수라도 해서 각도 조절이 잘못되면 상급자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경위서라도 써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도장의 본질은 결재다. 내용을 이해하고 확인했으며 그 내용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일종의 약속된 징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의 겸양 도장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른바 ‘이상한 예의’가 덧 씌워져 있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예의를 표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고개를 숙이는 마음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은 동양 문화에서는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도장의 각도까지 예의 문화가 적용되는 줄은 몰랐다. 계장이 90도 각도로 찍어야 한다면 말단 사원의 도장 각도는 몇 도란 말인가?


‘하이’


우리말로 해석하면 ‘예’라는 말이다. 일본 사람은 상대에게 화답할 때 고개를 숙이며 ‘하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수도 없이 고객을 숙인다. 고개 숙임은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다. 문제는 너무 쉽게 존중을 표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해석하는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예의’, ‘민도’를 자국의 자랑으로 여기기 때문에 묻고 싶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그렇다면 수도 없는 ‘고개 숙임’은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포함된 예의인지 묻고 싶다.


도장 날인 각도도 마찬가지다. 예의라는 의미를 담아 겸양 도장을 만들었다면, 그 도장 날인에 부하직원이 상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녹아 있어야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도장의 각도에 상사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고 있을까? 아니 존중받고 있다고 억지로라도 믿고 싶은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겸양 도장에는 ‘억지 존중’, ‘억지 예의’ 같은 이상한 조직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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