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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Oct 28. 2021

9000원짜리 핸드폰 거치대가 소환시킨 기억

“이제는 1인 방송 시대!”


“비꼬아서 말하면 나 잘났다고 떠들어도 되는 방송 시대”


1인 방송, 유튜버 이야기다.

방송국에 취직하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공부 잘하고 얼굴 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대본 없이 북 치고 장구 치는 능력은 기본이다. 고민의 흔적을 글로 옮기고, 있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자신을 있어 보이게 표현할 줄 아는 종합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곳이 방송국이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한 마디로 말하면 “끼 있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류가 바뀌면, 어종이 바뀌고, 어종이 바뀌면 어선을 바꿔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과거처럼 방송국에 입사하지 않아도 지구촌 79억 명을 대상으로 방송할 수 있는 시대다. 나이, 성별, 스펙, 외모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구글에서 돈을 받는 유튜버가 되는 것은 아니다


“1년 내에 구독자 1000명, 구독 시간 4000시간 확보”


구글이 요구하는 유일한 자격 요건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별반 어렵지 않게 보이지만 경험자의 입장에선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마음은 토끼보다 빠르지만 실상은 거북이보다 못한 속도감을 이겨내야 가능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버를 꿈꾸지만 구글이 설치한 장애물을 통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20년 8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광고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브 채널은 9만 7천9백34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529 명중 1명이 유튜버인 셈이다.


작년 10월 이맘때였다.

퇴근 전철을 타기 위해 잠실 지하도를 걷고 있는데 “핸드폰 거치대 9000원”이란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스치듯 지나가고 말았다..


지하철 게이트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핸드폰 거치대 9000원 표지판이 있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몇 초나 지났을까, 거치대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거 괜찮아요?”

“그럼요. 요즘 많이 팔리는 걸요. 왜요 촬영하시게?”

“아, ~ 아니 뭐, ~ 생각 중이에요”

“그럼 이걸로 하세요. 좋은 거 산다고 영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한 번 써 보시고 나중에 좋은 걸로 하세요”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본격적으로 영상 촬영을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용도로 거치대를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주인장은 맘에 안 들면 좋은 게 많으니까 편히 살펴보라는 말을 전하면서 다른 손님을 맞이한다.


사실 유튜브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 몰입하면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8년이다. 2012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1~2분 남짓한 영상을 몇 편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그때만 해도 유튜버보다는 내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 갖고 싶은 니즈가 더 컸던 것 같다.


2020년 10월 어느 퇴근길

거치대 9000원이란 문구가 그동안 잊었던 유튜버의 꿈을 소환시켰다. 8호선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하는 내 손엔 거치대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유튜브 생각뿐이었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실없는 사람 되는 거 아냐”

“또 예전처럼 하다가 그만두는 게 아닐까?”

“촬영을 그렇다 치고 편집은 어떻게 하지”


2012년 영상은 사내 pd들의 도움을 받아서 촬영한 것으로 업무의 일부였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하는 일이 강사이기 때문에 촬영할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개인적으로 부탁해서 두, 세편 찍었던 경험이 전부였다. 말만 할 줄 알았지 촬영, 편집, 자막 등, 무엇 하나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내 PD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지금은 다를까,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상을 촬영하는 것 까지다. 편집은 물론 자막을 넣은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유튜버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도, 영상 작업에 요구되는 능력은 거대한 장벽 같은 장애물로 다가왔다. 결책은 내 손으로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업로드하는데 필요한 기능을 익히는 것이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지?”


유트버가 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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