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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Dec 01. 2021

훗날, 간병(돌봄)은 어떤 위험을 예고하는 일일까?


은퇴를 앞둔 탓인지 벌써부터 80살 먹은 어른처럼 건강에 대한 걱정이 늘어납니다. 아직은 건강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수가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잖아요? 저는 비교적 보험을 잘 들어 놓은 상태지만 아내는 일직이 공황 장해가 오면서 보험을 준비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친 상황이라 저보다는 아내가 더 걱정이 됩니다.


EBS 다큐 프라임 특별기획으로 출간된 <100세 수업>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저도 지금 3독 중인데 볼 때마다 100세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처럼 우리가 맞이 하게 될 노후를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100세 수업> 142P에 나오는 글을 인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의 소 제목은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인데요 내용을 축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는 77세 엄마와 50세 딸의 이야기인데요, 본문은 이렇게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따라 어디가 불편한지 엄마의 짜증이 잦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니 손사래를 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매일 하는 일이다


엄마: 야야 야야, 하지 마!

딸: 엄마 나이가 몇 살일까?

엄마: 나이, … 알아 77

딸: 엄마 나는? 내가 몇 살일까요?

엄마: 47


엄마의 기억은 딸이 47세일 때에 멈춰져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건강했던 엄마에게 갑작스레 잔인한 병이 찾아왔다 엄마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대비할 시간이 없었다. 간병은 큰 딸의 몫이 되었다. 큰 딸은 엄마의 손, 발이 되어 간병하느라 다른 가족은 돌볼 새가 없다. 주변 대부분이 요양 병원을 권유했지만 혹시라도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을 먹지 못했다


딸: 엄마 기저귀 바꿔야죠. 바꾸지 마요?

엄마: 바꾸지 마


딸의 얼굴을 계속 때리는 어머니를 들어 올려 눕히면서 딸은 어머니의 눈을 맞춘다


딸: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대답이 없지만 편안해 보인다. 그러면 되었다고 딸은 생각한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치매는 간병에 최선을 다해도 더 나아지는 병이 아니었다. 차라리 암이라면 어떤 과정과 결론을 예상할 수 있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엄마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면서 끝이 안 보였다. 여전히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딸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딸: 자식은 많지만 엄마는 하나야. 내가 사랑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 내가 끝까지 있어줄 게


엄마는 알아듣지 못해도 딸은 계속해서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엄마의 표정이 온화해진다. 노인요양시설이 많아지고, 좋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집만큼은 아니고, 간병도 가족이 아니면 맡기기 불안하다. 딸의 그런 마음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딸: 엄마, 엄마가 제일 행복할 때가 언제였어요?

엄마: 지금이 제일 행복해

딸: 지금이, 아이고 우리 엄마 지금이 행복해요?


딸은 엄마의 손을 잡고 웃자, 엄마가 따라 웃는다




100세 수업 2독 할 때 까지도 본 문장은 저에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독을 하는 지금은 그렇지 않았죠. 저도 내년이면 구순을 맞는 아버님을 모시고 있어서 일까요? 물론 아버님이 간병을 요할 만큼 아픈 건 아니지만 부모를 모신다는 측면에선 공감할 순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글에서 엄마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는 딸이 고맙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저의 아내는 스물네 살 나이에 홀시아버지와 5명의 시누이가 있는 집으로 그것도 맏아들이자, 외동아들인 저에게 시집을 왔답니다. 스물넷, 며느리 입장에서 앞이 캄캄한 시집살이를 각오해야 하는 결혼일 텐데, 무슨 생각으로 저에게 왔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간병에 관한 방송을 보면서 아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기야, 우리 엄마, 아빠도 치매 걸리면, 요양기관에 안 보낼 거야.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섭섭해하겠어. 아프니까 요양시설로 내친다고,… 난 내가 모실 꺼야, 알았지?”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사실은 못 들은 척 흘리면서 자리를 피 했거든요. 솔직히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홀 시아버지를 30년이 넘도록 모셨고 앞으로도 돌아가실 대까지 모실 것이고, 또 다섯 명의 시누이들이 모두 시집을 간 후부터는 친정 엄마 노릇까지 착실히 한 것을 생각하면 “장인 장모”를 모시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처럼 제가 그 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우리 가족들에게 한 것을 생각하면 아내의 부모를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인데, 제가 나뿐 생각을 했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저도 아내의 생각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굳혔으니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죠.


저도 잘 압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제가 아내에게 받은 게 많은데 저도 상응하는 만큼 돌려주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요. 그래야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요. 마음은 그런데  2 가지 변수가 걱정입니다. 하나는 장인, 장모가 혹여 치매로 인해 간병을 요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하고, 또 한 가지는 우리 부부가 건강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제 아내는 맏딸입니다.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죠. 물론 장인, 장모를 모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장인, 장모가 이제껏 준비한 자산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집도 있고 저축한 것도 있으니까요. 설령 부족하면 아내의 형제들과 1/n로 나누어 부담하면 되겠죠. 문제는 두 번째 변수가 더 걱정입니다. 우리 부부가 건강해야 한다는 거죠. 처남과 처제가, 맏딸인 제 아내처럼 여차하면 자기의 부모를 모시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니지만, 제가 보기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조금 그렇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건강을 유지한 상태라야 장인, 장모를 모실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겠죠. 현재 장인이 80세, 장모가 76세인데 아직은 건강하지만 노년기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바뀔 수 있는 만큼, 길어도 10년 내에 두 분의 건강과 관련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저는 70세, 아내도 66세니까 자칫하면 老老간병이 현실도 다가올 수 있는 거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혹시 부모님의 건강이 간병을 요할 만큼 아픈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복안을 세워 두셨나요? 예를 들면 재택 간병을 할 것인지 시설 간병을 할 것인지, 자녀들 중 누가 간병인 역할을 할 것인지, 또 간병 비용과 치료비는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관한 대책 말입니다. 특히 형제들 중 맏아들이나 맏딸인 분들은 이런 문제를 동생에게 떠 맡기기 어려운 위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비용 문제가 가장 큰 부담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형제들이 많은 집은 매월 회비를 모아서 부모님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의료비로 충당하는 예가 많더군요. 저도 6형제인데 가구당 매월 5만 원씩 회비를 각출한 지 벌써 10 수년이 되다 보니까 적지 않은 돈이 쌓이더군요. 다행스러운 것은 아버님이 큰 병으로 병원신세를 져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을 헐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님이 건강하신 게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자식인 저를 중심으로 부모의 간병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부모님이 돌아간 그다음입니다. 역할 체인지가 생기는 거죠. 지금까지 자녀였던 우리가 더 나이가 들면 지금의 자녀들이 우리의 역할을 대신할 위치에 올 테니 까요? 우리 집의 경우 시간적으로 빠르면 10년 길어도 20년 후엔 지금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를 걱정하겠죠. 그때가 되면 과연 우리들의 자녀들은 부모와 관련해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아주 오래전 발표된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노 부모의 생활비를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2002년 통계에서는 가족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이 70.7%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러분도 남은 가족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8년이 지난 2010년 자료에서는 가족이 노부모의 생활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이 36%로 급락합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노부모의 생활비는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요? 그만큼 사는 게 만만치 않아서일까요? 이번엔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족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나요.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분분하겠지만 보편적으로 시니어들은 당연히 가족이란 답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입니다. 2005년 자료에 따르면 할 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이라고 답변한 청소년은 67%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설문을 2010년에 조사했을 때는 가족이라고 답한 청소년은  23%로 급락합니다. 이 또한 거꾸로 해석하면 설문에 응답한 77% 청소년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이기보다는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마지막 통계입니다. 역시 2010년 통계인데요, 한국 청소년 정책 문화연구원에서 조산한 것으로 청소년들에게 물었습니다.


"반려동물이 가족인가?"


어떤 답변이 나왔을까요? 답변을 말하기 전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은 반려동물 천만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국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인 또는 2인 가구 증가가 반려 인구 증가의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이죠. 반려동물이 가족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가족이라고 답한 청소년은 57%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표본은 아니지만 설문에 답한 청소년의 마음 한 구석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려동물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분명 아닐 겁니다. 설마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반려동물을 더 가족처럼 여기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대를 거듭할수록 핏줄이 진 해지기보다는 묽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추론일 뿐 절대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만큼, 절대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도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데 정말 가족만큼, 어느 땐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느낄 때가 많거든요. 아마 설문에 답한 청소년들도 단순한 느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절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이 아니란 취지로 응답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자식을 낳으면 철들 때까지 착하게 인도해야 한다. 이미 자란 다음에 바로 잡으려 하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 율곡 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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