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범 May 16. 2017

#29. 어떤 Know人의  월급날

자기 일이 있는 노인은 아름답다

오래전 이야기다.

고령의 보험 설계사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어찌나 열심이던지 젊은 사람들 못지 않았던 분으로 기억된다. 자동차 보험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셨는데 월 소득은 대략 250만 원 수준이셨다. 그런데 급여일이 되면 거르지 않고 하시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적지 않은 금액을 힌 봉투에 담고는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 넣는 일이었다.

하루는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드렸다.


‘어르신?  그 돈은 누구에게 주시려고 그렇게 정성을 들이세요?’

‘며느리, 큰 며느리 주려고 그래’

‘네, 며느리요, 사모님이 아니고 며느리 주신다고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된 사실은 소득의 50% 상당액을 큰 며느리에게 준다는 것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할멈을 저 세상으로 보낸후 큰며느리의 제안에 따라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게 되면서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는데 그게 그렀게 고마웠다는 것이다.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면 여우같이 반겨주고 챙겨주는 며느리가 있어서 피곤 한 것도 잊는다는 것이다.


매월 100여 만원 이상의 돈을 며느리에게 주는 시아버지는 몇이나 될까?

또 그런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며느리는 몇이나 될까?


사실 그 나이가 되면 자녀들에게 손 벌리기 십상아닌가. 경제 활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구석이 있겠는가?


생애 2막과 관련한 강의를 할 때면 언제나 빼놓지 않고 전하는 이야기다. 부럽다는 반응은 기본이고 시아버지에게 돈을 받는 건 고사하고 손만 벌리지 않아도 좋겠다는 푸념도 이어진다. 그 어른의 며느리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기 때문에 그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멋진 시아버지라면 얼마든지 모실 수 있다는 며느리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조건의 비교는 어렵지만, 그 어른 만큼은 아니라도 80세가 넘어서까지 자식들에게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따로 떼어서 고마움의 선물을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어쩌다 한두 번도 아니고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런 상황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노후에도 ‘고정 소득’이 발생하는 직업이나 그에 상응하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건강’이 유지된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건강하지 못하면 직업은 고사하고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민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하나는‘자녀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건강하고 적지 않은 고정 소득이 발생한다고 해도 자식이 미우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마음이 멀어지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식, 며느리에게 주는 것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가를 바라고 베푸는 부모는 없다. 다만 주는 마음만큼은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 주고도 편치 않은 느낌이 지속되면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베풂의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

오래전에 고인이 된 최진씨가 CF에서 한 멘트생각난다. 남편은 여자 하기 나름이다’


시아버지도 예외는 아닐 게다. 며느리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28.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