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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May 19. 2017

#30. 핏줄의 배신

핏줄도 아니라면 누굴 믿으란 말인가?

원시불교의 경전인 “아함경”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부처님께서 탁발하시려고 성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늙고 쇠약한 어떤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구걸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 물었다.

[부처님]  어찌하여 늙고 쇠약한 몸인데도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까?
[구걸 노인] 아들을 키워 며느리를 맞아들이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더니, 늙은이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쫓아내 더이다. 이제 의지할 곳 없어 이렇게 걸식하고 있나이다.
[부처님]  계송(부처님 공덕을 찬탄하거나 교리를 기록한 것)을 일러줄 터이니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말하세요.

이 말을 들은 구걸 노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걸 노인] 나는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고 그 아들을 위해 애써 재산을 모았으며 아들을 위해서 며느리를 들인 뒤에 재산을 물려주고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네, 마을의 어떤 부랑한 자식이 늙은 아비를 등지고 버렸으니 얼굴은 비록 사람이라지만 그 마음은 나찰(羅刹) 악귀(惡鬼)이라네. 늙은 말(馬)은 쓸 데가 없다고 하여 보리 껍질 먹이까지 빼앗아 버리듯이 젊은 자식이 늙어 힘없는 아비를 쫓아내니 늙은 아비는 거리를 떠돌면서 구걸하네. 내 늙어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고 보니 자식이란 지팡이 보다도 못한 것, 자식이 귀하다고 사랑만 할 것 아니라오. 지팡이는 소나 개를 막아주고 험한 곳에선 나를 지탱해 주며 가시덤불도 헤쳐가게 해주니 “말 없는 지팡이가 못된 자식보다 훨씬 낫다오”...

추적 60분에 이런 이야기가 방영된 바 있다.

평생 동안 땀 흘려 일하 5남매를 키웠던 김氏는 자녀들이 장성한 후에도 현금, 집, 자동차까지 마련해주며 자식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단다. 2년 전에는 ‘집을 사주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겠다’는 말을 믿고 마지막 남은 재산을 딸에게 넘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딸과 함께 산지 불과 두 달 만에 갖은 구박을 당하며 집에서 쫓겨난 김氏는 그가 원했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월세 20만 원의 영세민 아파트에서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고 있다. 그의 자식들은 연락 조차 닿지 않는 상황이다. 괘씸한 마음에 결국 자식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한 김氏는 딸에게 준 돈의 일부를 돌려받게 되었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는 돌이 킬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엔 내가 잘못한 거야, 자식들이 나한테 이렇게 할 줄 몰랐다고, 되돌아 간다면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추적 60분 / 1203화 / 패륜 범죄, 돈은 피보다 진했다)


이미 가버린 세월은 되돌릴 순 없다.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배반당하는 심정이 무엇일지 헤아릴 순 없지만 그 어떤 아픔보다 크다는 것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중년이라면 경제적인 면에서 자녀와의 관계 설정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경제적인 면에서는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지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집 돈 많아’

친구를 폭행해 놓고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할지언정 돈이 많다고 말하는 삐뚤어진 인성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개탄스럽다. 하지만 어쩌랴,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는 사실인 것을......

폭행을 저지른 아이도 문제지만 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부모는 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돈은 핏줄의 배신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간에 돈을 대하는 인식’은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어야 한다. ‘집을 사주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겠다’는 제안을 거꾸로 해석하면 ‘집을 사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지 않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돌봄이 필요한 부모에게 흥정하는 딸의 마음은 아함경에서 말하는 나찰(羅刹) 악귀(惡鬼)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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