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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Apr 27. 2017

#25. 88하게 살다가 23년간 아프다가 4망 하면?

의료비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

수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회자되던 이야기 중에 9988234라는 숫자가 있다.

구십구(99)세까지 팔팔(88) 하게 살다가 이, 삼일(23) 아프다가 사망(4)한다는 뜻이다.


한 평생 건강하게 살다가 투병기간이 없다시피 하면서 사망하는 것은 복중에 복이다. 

그런 의미로만 해석된다면 9988234는 호상이다. 떠나는 고인도 보내는 가족도 무거운 슬픔이 아니라 가벼운 슬픔으로 이별할 수 있다.

천수를 다 누리고 건강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는 인생이 많지 않기에 부러운 이별 일 수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9988234에 대한 웃지 못할 해석들을 해 볼 수 있다.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23살짜리 아가씨와 4랑에 빠진다’.

사랑엔 국경도 나이도 초월하는 만큼 그냥 한번 웃어버릴 만한 일도 못 이룰 꿈도 아니다. 다만 99세 어른이 빈털터리 라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가진 재산이 충분하다면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해석의 주인공이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99세까지 88 하게 살긴 살았는데 그 후 23년간 아프다가 4 망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건강수명기간 99년에 투병기간 23년을 더하면 122년.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판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가상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앞서 필자의 어머니도 18여 년의 투병 기가 있었음을 거론한 바 있다. 장기 투병 23년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기간 투병중인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 보면서 더 이상 고통받지 마시고 그냥 돌아가시는 편이 더 낳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말한 바 있다.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고백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불효자다. 고통받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가족이 겪는 고통이 먼저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돈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는 비교 대상이 아님을 잘 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가족의 목줄을 누르는 형국에선 차라리 돌아가시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많은 의료비를 써가면서 질긴 목숨을 부여잡고 계실까 하는 철없는 원망을 했었기에 30여 년 시간이 흐른 지금도 죄스러운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더하여 심장 판막 이상으로 심장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인슐린을 당신께서 직접 주사하셨지만 점차 시력을 잃어가면서 주사기의 눈금을 맞출 수 없게 되고, 급기야는 필자가 양 팔 상부와 양 발 허벅지에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려야만 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입원 치료는 사치였다. 당뇨만 아니라 심장까지 이상이 있는 터라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되지 않으면 그냥 몸으로 때우신 것 같다.

한번 입원하시면 장기 입원을 해야 했기에 병원비를 걱정하신 게 분명하다. 그러던 어느 날, 뇌혈관이 터지면서 손 쓸 겨를도 없이 어머니는 필자의 품에서 돌아가셨다.

 

인생의 3분의 1이 투병이었는데 어머니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오랜 투병이 이어지고 있다면 가족들의 얼굴엔 어둠의 그림자가 그득해진다.


우린 이겨낼 수 없는 투병의 날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알지 못한다. 2~3일만 아프다가 죽는 것도, 23년간 아프다 죽는 것도 오로지 신의 선택에 달렸을 뿐, 우리 간들에겐 하늘의 처분에 따라 <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숙제만 남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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