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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May 04. 2017

#27. 중년 남자들에게 묻고 싶다

퇴직 이후 생애 전략이 있는가?

중년 남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아래 제시된 항목별 지출액(月 또는 年)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는가?


1. 전기

2. 상수도세

3. 가스료

4. 재산세

5. 자동차세

6. 의료비(본인)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도 몰랐다.

그런데 노인 관련 책을 쓰면서 그 비용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서 자동이체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주거 관련 항목 비용(상수도, 전기, 가스, 재산세) 300만 원(年), 자동차세 55만 원, 본인 의료비로 120만 원(연말정산 참고)을 더한 총액이 475 만윈으로 매월 39만 6천 원이 지출된 셈이다(물론 식대, 자동차 유류대까지 포함하면 그 비용은 대폭 상승한다)


문제는 노년이다.

그때도 39만 6천 원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

택도 없는 소리다


족히 3년은 된 것 같다.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찜질 방 데이트를 즐기는 편이다.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주 2회 정도 이용한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자주 이용하다 보니 찜질 방을 주택 삼아 출퇴근하는 중, 노년기의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찜질 방에서 식사와 목욕 그리고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일일 찜질 방 사용권이 할인해서 6천 원인데 1개월이면 18만 원 수준이다.

월세를 살아도 물값, 전기 값, 가스 값을 더하면 월 18만 원으로 한 달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은 물값 아깝다고 아껴 쓸 일도 없다. 겨울엔 따듯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냉 난방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 공짜 러닝 머신을 뛰면서 운동도 할 수 있다, 조용하진 않아도 책도 읽을 수 있고 친구도 사귈 수 있다. 라면, 김밥, 계란, 미역국..  다양하진 않아도 식사까지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삶이 좋은 삶은 아니다.

하지만 비용을 아낀다는 측면에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노년기에도 규모와 상관없이 주거 공간은 필요하다. 주거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직접 감당해야 한다. 먹고 입고 쓰는 문제는 기본이요 각종 공공요금을 포함하는 세금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젠 자동차가 사치인 시대도 아니고 나이 들었다고 자동차가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시대다. 경차라도 한대 굴리려면 앞서 언급한 자동차세 이외에 유류비용, 수리비용 등이 주기적으로 들어간다. 간혹 교통 신호라도 위반하면 딱지 값은 덤이다.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지출 주머니를 또 하나 열어 놓고 있는 것과 같다. 늙었다고 지출이 없는 게 아니기에 수입도 지속적으로 발생해야 하는데 안타깝지만 수입은 끊어진다.


자동차가 사치라고 여겨진다면 타지 않으면 그만이다. 먹는 것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다. 기타 생활비도 노력하여 줄일 수는 있다. 안 타고, 덜 먹고, 덜 쓰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출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역 시절 노년기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리 준비해두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민연금이라도 소득에 맞게 정상적으로 가입했다면 사망할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 종신 돈 주머니 하나쯤은 차고 있을 수 있다. 수입의 규모와 상관없이 돈 나올 확실한 주머니가 있긴 있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소위 몸으로 때우는 일을 통해 돈벌이의 수단을 찾아야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단독, 연립,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주를 이루다 보니 가정 폐기물을 아파트처럼 일괄적인 관리를 할 수 없다. 주택마다 자체 공간에 폐기할 물건들을 내다 놓으면 청소 차량이 수거해간다. 그런데 동네 노인들 중 몇 분은 각종 박스나 휴지, 그리고 빈 병이나 고철 등을 수거해서 생계를 해결하는 분들이 있다. 마치 지하철에서 벼룩 신문을 수거하던 분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절처럼 폐 휴지를 줍는 노인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적어도 5명 이상의 어른이 주기적으로 동네를 돌아다닌다. 봄만 되면 우리 집 연례행사 때문에 발생하는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어른이 있다. 옥상과 뒤뜰 그리고 주택의 외벽에 화단을 직접 만들고 화초를 가꾸는 취미를 가진 아내 때문에 생긴 단골(?)이다. 크고 작은 화초와 각종 채소류들을 키우기 위해 헌인릉 화훼단지를 수시로 다닌다. 사 오는 양은 일반 가정집의 수준이 아니다. 꽃 가계 수준은 아니라도 적지 않은 양을 사 온다. 한 번 갔다 올 때마다 폐기해야 할 플라스틱이 넘쳐난다. 벌써 6년째 이어지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내겐 곤욕이지만 아내에겐 기쁨이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다고 불평할 수는 없고 그냥 군 소리 없이 흙과의 씨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벌써 한 7년쯤 해보는 거라 그런지 이젠 조금씩 재미가 느껴진다. 이 참에 나무, 꽃, 각종 채소들을 가꾸는 일에 마음을 부쳐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처음 시작은 아버님 소일거리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조울 성 우울증이 심한 겨울철을 빼고는 그나마 아버님을 조금이라도 활동하게 하는 좋은 수단이기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월 어느 주말인가 텃밭을 가꾸면서 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지나고 보니 젊은 시절은 고통스러웠는데 그래도 노년은 평안한 것 같다고’ 자식들하고 손주들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가족과 텃밭을 가꾸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노년기에 누리는 행복이란다. 폐 휴지를 줍는 노인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더 크게 와 닿는다고 하신다.

 

요즘 들어 그동안 걱정했던 두 가지 사안이 구체화되는 것 같아 고민이다. 하나는 아버님의 노년이 서서히 끝나가는 것 같아 걱정이고, 또 하나는 필자의 퇴직 시점이 코 앞이라 태연한 척 넘겨지지 않는 게 그것이다. 


‘퇴직 이후 생애 전략이 있는가(미국)?’라는 조사에서 무려 5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생애 전략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자신감(59%), 스스로 할 수 있다(40%), 재산 관련 걱정은 하지 않는다(19%), 자금 부족(31%), 전문가에게 조언 비용을 내고 싶지 않아서(5%), 전문가를 믿을 수 없어서(5%)등 실로 다양한 구실들을 제시하면서 생애 전략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은퇴 이후 생애 전략 수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의 예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처한 노년기 삶의 질은 미국에 비 할 바가 아님을 알고 있지 않은가.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이 시대의 노인들의 삶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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