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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R&B 트랙 5곡

by kolumnlist
K-POP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한 아티스트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다는 점이다. 물론 멤버마다 할당된 포지션이 있지만, 그 포지션이 꼭 고정적이지는 않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아이돌. 그중, 다양한 아이돌들의 앨범에 실린 R&B 곡을 추천하려 한다.

1. SES – Be natural

한국의 TLC라고 불리며 R&B, Soul 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S.E.S는 2000년 12월 26일에 4집 ‘A Letter From Green Land’를 발매했다(타이틀곡은 사토시 시마노가 작곡, SES 멤버들이 작사한 감싸 안으며). 당시 평론가들과 뮤지션들은 이 앨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아이돌도 ‘음악성’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외모나 콘셉트, 춤이나 팬덤이 아닌 오로지 ‘음악성’만으로. 그 말마따나 4집에 실린 음악들은 이를 갈고 만들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들린다. 그 수록곡들 중, 1번 트랙인 [Be natural]을 소개하려 한다.

유영진의 R&B 스타일을 정립한 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유영진의 과거 솔로 앨범은 Boys II Men의 느낌이 나는 부드러운 R&B였다면, [Be natural] 이후로는 리드미컬한 드럼 라인 위에 실크처럼 깔리는 고급스러운 화성이 도드라지는 R&B스타일로 변모했다. 몽환적인 트랙 위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텐션(기본 화성[1,3,5도] 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비화성음. 7도, 9도, 11도 등등이 있다) 멜로디들은 곡을 더욱 R&B스럽게 한다.

K-POP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S.E.S의 노래로 포문을 열어본다.

2. 2NE1 – Baby I Miss You

2014년 발매된 crush의 수록곡인 [baby I miss you]는 Urban R&B 곡이다. 몽환적인 코드 진행과 부드러운 moog 톤의 베이스는 2000-10년대 Neo soul을 연상시킨다. 2절 후렴구에 나오는 사인파 리드 신스(사인파는 배음이 없는 파형, 그 사운드로 만든 신시사이저)는 2000-10년대 우리가 즐겨 듣던 해외 R&B의 느낌을 되살린다. 그와 반대로 킥 사운드는 곡의 중심을 잡아주듯 단단하다.

R&B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몽롱하고 느린 몸동작이 연상된다는 점이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흑인 음악을 지향하는 YG의 아티스트들에겐 보석 같은 수록곡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baby I miss you] 외에도 멋진 곡이 수록된 'crush' 앨범을 즐겨보길 바란다.

3. Red velvet – automatic

2015년, 레드벨벳의 첫 번째 미니앨범 ‘ice cream cake’가 발매되었다. [Automatic]은 2번 트랙이자 더블 타이틀곡이다. Urban R&B곡인 [Automatic]은 마이클 잭슨의 butterflies나 자넷 잭슨의 곡을 연상시킬 만큼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곡은 한 여성의 안내음으로 시작된다. 그 공간은 좁은 대합실 같기도, 어느 낡은 공방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안내음과 함께 기계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아주 기계적인 드럼 리듬이 흘러나온다. Verse가 시작되자마자 상당히 개성 있는 신시사이저가 공간을 압도한다. Pad와 Saw synth를 결합한 듯한 느낌의 신시사이저를 뒷밤침해 주는 건, Moog톤의 신스 베이스다. 단순한 신스 패턴 덕분에 베이스는 복잡하고 리드미컬한 연주가 가능해졌다. 베이스는 그 기회를 살려 자신을 뽐낸다. 다만, 보컬에 방해되지 않게. 보컬 라인은 몽환의 끝을 보여준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삽입된 코러스와 더블링(같은 멜로디를 다시 불러 중첩하는 녹음기법. 보컬 소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을 최대한 활용한다. 00:35에 나오는 윈드차임이 곡의 분위기를 전환하고, E.P(일렉트릭 피아노)가 패드 신스 대신 화성을 이룬다. E.P 덕분인지 분위기가 전보다 차분해진다. 차분해진 분위기는 1:00부터 시작되는 후렴구까지 이어진다. 하행 진행하는 보컬 라인은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 하지만 이내 Verse가 다시 시작되고,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는다.

곡은 이성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연상시킨다. 부드러운 베이스 사운드와 몽환적인 창법은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메이저와 마이너를 넘나드는 조성과 다채롭게 변하는 구성은 사랑에 빠졌을 때의 심장처럼 요동친다.

[Automatic]은 위에서 말했듯이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음악성과 대중성의 경계, 그 모호한 경계선 사이에 놓인 듯한 노래는 아이돌 음악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걸 증명한다.

4.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20cm

[20cm]는 TXT의 정규 1집 앨범인 ‘꿈의 장:MAGIC’의 수록된 R&B 곡이다. 미디엄 템포 R&B인 [20cm]는 200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비트와는 다르게 담백한 보컬이 곡을 세련되게 만든다.

밤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른 R&B와는 다르게 [20cm]는 하늘하늘한 봄바람을 맞으며 황혼의 거리를 연상시킨다. 풋풋한 연인의 두근거리는 그 마음을 대변하듯 곡은 살랑거린다. 가사 역시 풋풋함을 장착하고 있다. 어린 시절, 소년과 소녀의 사랑 얘기를 그때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도서관 맨 위 칸 책들도 내가 꺼내줄게’

‘떡볶이 멤버가 필요할 때’

‘놀랐어, 내 키가 내 어깨가 널 꼭 맞춰 자라난 건지’

섹시하고 끈적하다고 생각했던 R&B를 풋풋하고 청순하게 표현한 [20cm]. 귀여운 트랙을 듣고 싶을 때 추천한다.

5. aespa – Thirsty

몽환적인 R&B곡인 [Thirsty]는 'aespa'의 3번째 미니앨범인 'MY WORLD'에 수록된 곡이다. 에스파는 SMP의 계보를 잇는 [Black mamba]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이는 소녀시대의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 레드벨벳의 데뷔곡인 [행복]과는 결을 달리한다. 오히려 엑소의 데뷔곡 [MAMA]나 보아의 데뷔곡 [ID ; Peace B]와 궤를 같이한다. 이렇게 보면, SM은 부드러운 곡으로 데뷔하는 그룹(동방신기 [hug], 샤이니 [누난 너무 예뻐])과 강렬한 곡으로 데뷔하는 그룹(Nct U [일곱 번째 감각], 슈퍼주니어 [Twins])로 나뉘는 것 같다(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F(x)는 [라차타]로 데뷔했다). 강렬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래들을 타이틀 곡으로 정하는 이유는 그들의 콘셉트에 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에스파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나비스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 디지털 세계를 통해 교감하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버추얼한 느낌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 입장에서 부드럽거나 말랑한 가요 풍의 노래는 오히려 콘셉트를 망칠 우려가 있다. 그래서인지 수록곡들도 강렬하거나 몽환적이다. 그렇게 강렬한 곡들 사이, [Thirsty]처럼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곡들도 존재한다.

[Thirsty]는 팝 스타일의 코드진행에 강렬한 Trap 비트가 돋보이는 곡이다. SM 특유의 맥시멀한 트랙 느낌과 화려한 코러스 라인 덕분에 '돈 냄새'가 난다. 개인적으로, '돈 냄새'를 유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믹싱에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동양권 음악은 화음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이나 코드 진행, 가사를 중점적으로 듣는다면, 서양권 음악은 사운드를 중요시한다. 팝 발라드를 들으면 코드 진행이 의외로 단순하다. 그에 비해 한국 발라드는 코드 진행이 화려하다. 반대로 한국 발라드는 사운드가 좀 붕 떠있다. 반대로 팝 발라드는 사운드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다뤄볼 예정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Thirsty]는 팝송같은 R&B 곡이다. 그간 유영진이 보여줬던 SM표 R&B의 느낌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다. SM 같지 않은 SM R&B 곡 [Thirsty], 어쨌든 듣기 좋은 음악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보석 같은 R&B 트랙 5곡을 추천해 보았다. 독자께서 아는 K-POP R&B곡이 있다면, 댓글로 추천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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