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케이팝 7곡 추천.
내가 초등학교-중학교 때, 컨버스가 유행했었다(지금은 기본 아이템이 된 그 컨버스가 맞다). 그때는 유행을 타면 모두가 그 아이템을 착용하고 다녔었다. 노스페이스 패딩, 나이키 코르테즈, 나이키 배색 바람막이, 샤기컷. 그 당시, 엄마와 시내를 걸으며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 중학교 때도 저 신발 유행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것을. 그래서 준비했다.
언젠가 다시 역주행할 올드 케이팝 7곡.
1. 김트리오 – 사랑은 영원히 [작사:장덕 작곡:김파]
팀 이름부터 고풍스럽다. 김트리오. 김트리오의 대표곡은 연안부두가 있다. 인천광역시의 연안부두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이 노래는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의 응원가로도 사용되고 있다. 아마 이 때문에 어디선가 김트리오를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김트리오는 김파, 김단, 김선 삼 남매로 구성된 가족 밴드이다. 그들의 부모님은 음악가이다(트럼펫 연주자 김영순, 가수 이해연). 이들은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곳에서 삼 남매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1979년, 한국으로 돌아온 세 남매는 팀을 구성해 데뷔하게 된다.
김트리오의 노래는 왜인지 모르게 세련된 느낌이 든다. 특히 앨범 ‘꽃띠 여자’에 수록된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세련된 분위기의 노래들이 존재한다. 그중, [사랑은 영원히]라는 곡이 내 귀를 제일 사로잡았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고급스러운 보이싱(코드의 구성음을 배치하는 방법을 일컫는 음악용어. 재즈 이론에선 상당 부분이 보이싱에 할애되어 있다),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과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후렴구 보컬 멜로디. 이 모든 조화가 곡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조성한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 커튼이 아주 부드럽게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이 상상된다. 말랑말랑하고 두근거리는 사랑의 감정. 어쩌면 사랑은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유일한 감정이 아닐까.
2. 도시아이들 – 텔레파시 [작사:김창남 / 작곡:김창남]
도시아이들은 1986년 데뷔해 1990년까지 활동했던 2인조 음악 그룹이다. 한국 음악그룹 최초로 건반악기인 키타를 처음 도입한 그룹으로 알려졌다. 도시아이들의 히트곡 하면 역시 [달빛 창가에서] 일 것이다. 나는 [달빛 창가에서]보다 [텔레파시]를 더 좋아한다.
펑키한 기타 라인으로 시작하는 인트로와 곡의 리듬감을 살려주는 bell 성향의 신시사이저, 그리고 통통 튀는 가사와 딱 맞는 멜로디까지. 여전히 굉장히 유명한 곡이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회자될 노래라고 생각한다.
3. 김흥국 – 새침떼기 [작사 : 이혜민 작곡 : 이혜민]
김흥국은 1985년 ‘오대장성’이라는 밴드의 드러머로 데뷔했다. 지금은 예능인이 된 많은 옛 가수들이 있다. 하지만, 그 옛 가수들을 예능으로 처음 접한 시청자들은 그들이 가수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흥국은 가수 활동을 전혀 하지 않다시피 하는데도 시청자들은 그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그만큼 [호랑나비]라는 노래가 메가히트를 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항상 방송에 나와 항상 말하는 ‘10대 가수’라는 타이틀 때문일지도 모른다. 히트곡 수보다 어록 보유 수(씨버러버, 우크라 대학 등등)가 더 많은 사람이지만, 그가 발표한 곡 중에 아주 좋은 노래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새침떼기는 인트로부터 시티팝의 정수를 들려준다. Choir pad(합창을 연상케 하는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일종) 사운드와 퍼커션 사운드는 뜨거운 여름의 해변을 연상시킨다. 김흥국의 허스키한 보컬과 신나는 곡의 분위기는 찰떡이라고 할 만큼 잘 맞는다. 2절이 끝나고 나오는 색소폰 솔로는 청량하게 반짝인다. 곡이 끝나갈 때쯤, 김흥국은 ‘아가, 아가 아가씨’라는 보컬 애드립을 한다. 그 발음이 마치 ‘I got, I got 아가씨’처럼 들린다. 내심 ‘설마 이것까지 의도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지만 아직은 더위가 남아있는 낮, [새침떼기]를 틀고 드라이브를 해보는 건 어떨까.
4. 오석준 –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작사 : 김성호/ 작곡 : 오석준]
오석준은 1988년에 1집 앨범 ‘Dream and Love’로 데뷔하였다. 보사노바 스타일의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은 영화 도굴에 삽입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사노바를 참 좋아한다. 보사노바라는 장르가 뭔지는 몰라도, 보사노바 풍의 음악을 들려주면 ‘아 이런 스타일 좋아’라고 대답한다. 그처럼 덧붙일 말 없이 그저 ‘좋다’라는 두 글자면 충분하다. 이 노래는 좋다. 해먹에 누워 파도 소리와 함께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좋다.
5. 강수지 - 흩어진 나날들 [작사 : 강수지 / 작곡 : 윤상]
강수지는 지금은 김국진의 아내로 더 유명하지만, 한때 그녀는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였다. 강수지는 1988년에 MBC 대학가요제 미국 동부지역 예선에서 금상을 받았고, 그 후 1년 뒤 윤상이 프로듀싱한 앨범 ‘보라빛 향기’로 데뷔하게 된다. [보라빛 향기]는 윤상의 색깔이 비교적 적었던 반면, [흩어진 나날들]은 누가 들어도 윤상의 색이 충분히 있다. 윤상의 마이너 한 감성과 강수지의 보컬이 딱 들어맞았던 곡이 바로 [흩어진 나날들]이다. 윤상의 곡은 비련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느낌이 있다. 윤상과 강수지 모두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윤상의 곡은 그런 여리고 맑은 목소리에 참 잘 어울리는 마이너 곡을 작곡한다. 아이유의 곡 [나만 몰랐던 이야기] 역시 가련한 비애의 감정을 품고 있다.
맑은 강수지의 보컬 톤 때문인지 곡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공주님이 처음 겪은 이별을 연상시킨다. 그래서인지 곡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언젠가 이별을 겪게 된다면, 노래방에서 혼자 이 노래를 불러보면 어떨까. 며칠 내내 느껴야 할 슬픔을 그날 하루에 몰아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어떤날 – 취중독백 [작사 : 이병우 / 작곡 : 이병우 / 편곡 : 이병우]
어떤날은 이병우와 조동익, 두 명으로 이뤄진 프로젝트 그룹으로 1984년 결성하여 1986년 1집 음반을 발매했다. 1989년, 2집 음반을 끝으로 그들은 활동을 중단하고 각자의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병우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음악 감독이다.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 중, 천만 관객의 영화는 무려 4편이나 된다(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국제시장). 그의 이름은 생소해도 그가 작업한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일본에 히사이시 조, 서양에 한스 짐머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병우가 있다고 할 정도니까.
조동익은 음악가의 아티스트로 불릴 만큼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다. 그의 작업물을 처음 들었던 것은 김광석 다시 부르기 II에 수록된 [새장속의 친구]였다. 이 곡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95년도에 발표된 곡에서 00-10년대 싱어송라이터들의 냄새가 났으니 말이다.
그 둘이 만나 결성했던 그룹이 어떤날이다(팀명은 조동익이 작곡한 [어떤날]에서 따왔다).
[취중독백]은 어떤날의 2집에 실린 음악이다. 도입부의 처량한 연주가 끝나고 조동익의 노래가 시작된다. 멜로디는 쓸쓸하고도 시니컬하다. 제목처럼 술에 취해 독백하듯이 내뱉는 가사는 곡이 가진 처량한 느낌과는 다르다. 마치 찬양하는 듯하다. 1절이 끝난 뒤 나오는 아리랑은 이 곡의 정체성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이 처량한 멜로디 다음에 나오는 아리랑은 무슨 의미이지? 이 곡은 민중가요인가, 아니면, 가사에 나온 것처럼 ‘조롱’을 위한 곡인가. 그 모호함은 재즈 편곡으로 다시 진행되는 2절에서 명확해진다.
‘네온사인, 제법 붙은 뱃살, 번쩍이는 망토, 설쳐대는 자동차의 끔찍한 괴성, 난지도의 야릇한 향기, 오등신 미인들의 검정 선글라스.’
향락에 취해 무언가를 잊은 사람들로 가득 찬 사람들을 바라본다. 고도성장을 이룩했던 이면에는 피눈물이 있었다. 피눈물과 네온사인이 공존하는 일그러진 서울. 나는 이 곡에서 그 모순을 느꼈다. 물론 나만의 해석이지만 말이다.
오보에 연주로 시작해 재즈 연주로 끝나는 진행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시작해 올림픽을 유치한 한국의 어느 재즈 카페에서 막을 내리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유기적으로 변하는 장르 때문인지 마치 곡을 듣는 게 아니라 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컨셔스 힙합보다 더 컨셔스스러운 곡 [취중독백]. 늦은 저녁, 건물 옥상에 올라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들으면 어떨까.
7. 조동익 – 엄마와 성당에 [ 작사:조동익 / 작곡: 조동익 / 편곡 : 조동익]
조동익 1집 ‘동경’에 수록된 [엄마와 성당에]는 아주 포근한 곡이다. 곡을 들으면 감정이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누가 나를 안아주는 것처럼 따뜻해지기도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곡의 Bell synth 사운드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내가 어린아이가 되어 엄마와 함께 어딘가로 간다. 쇼윈도 안에 있는 컨버스를 보며 엄마가 내게 말을 건넨다.
‘엄마 때도 저거 유행했었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계절, 그때의 냄새, 그때의 모든 것.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닌 [엄마와 성당에].
가끔 어떤 예술 작품들은 분석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시청자가 되어 작품을 보고 듣는 게 아니라, 작품이 나를 작품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조동익의 [엄마와 성당에]가, 아니, 조동익의 ‘동경’이란 앨범이 내겐 그렇다. 팻 메스니를 동경했던 조동익이 팻 메스니와 함께 소년 조동익을 떠나보내는 앨범 ‘동경’. 그중에서도 [엄마와 성당에]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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