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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시티팝 5곡

K-POP 시티팝 추천 5곡

by kolumnlist

내가 시티팝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을까. 도시의 밤, 그 화려함과 쓸쓸함을 처음 느끼게 해줬던 곡은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였던 거 같다(물론 그때는 시티팝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니메이션 유유백서의 OST에 푹 빠져 128MB짜리 MP3에 넣어 종일 듣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개인적으로 유유백서의 OST 6곡은 시티팝 명반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음악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대 초반, 아키모토 카오루의 [Dress Down]을 접했을 때 난 80년대 J-POP을 미친 듯이 디깅했었다. 야마시타 타츠로, 마츠바라 미키, 안리 등등……. 그 후 태평양을 건너 보즈 스캑스, 로비 듀프리, 두비 브라더스, 조지 벤슨 등등, AOR 장르와 펑키, 필리 소울 장르를 들었었다. 시티팝의 원류인 서양 AOR 장르도 좋지만, 내 귀에는 일본 스타일의 시티팝 음악이 더 좋았다. 서양 음악을 동양 스타일로 로컬라이징한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뎁스(깊이. 주로 공간계 이펙터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뎁스의 양이 많아지면 더 깊은 공간감이 만들어진다)가 깊어 더 화려하게 느껴지는 리버브가 두 번째 이유였다. 특히 리버브, 그 리버브가 나를 80년대 일본 밤거리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모두가 잠들어있어야 할 밤, 아침보다 찬란한 네온사인이 태양의 열기를 대신 뿜어주던 그 거리. 쓸쓸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가본 적도 없는 80년대 일본 그 거품의 거리를.

시티팝 유행의 시작은 유튜브의 성장과 비례했다. MACROSS 82-99, Yung Bae, Aests 같은 뮤지션들이 80년대 일본 음악을 Daft Punk 스타일로 리믹스한 것이 유행의 시작이었다. 그 음악에 80년대 일본 TV 광고나 애니, 드라마의 한 장면을 반복 재생해 같이 업로드했다. 유튜브의 세계화, 힙스터들의 유행 좇기, 기존 음악에 대한 염증,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비주얼.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찰나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던 시티팝은 여전히 곳곳에서 소비되고 있다. 아마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게 아니기 때문일 테다(디스코 드럼 루프에 펑키한 베이스와 기타 리프, 레트로 신시사이저에 깊은 리버브가 어우러진 노래는 거진 시티팝 느낌이 난다. 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위 4가지 요소가 내가 생각하는 시티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오늘은 K-POP 아티스트 앨범에 수록된 시티팝 장르를 소개하려 한다.

유빈 – 숙녀 [작사/작곡/편곡 : Dr.JO]

숙녀를 시티팝 유행의 시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시티팝 유행을 가장 먼저 캐치했던 음악임은 확실하다. 원더걸스의 래퍼였던 유빈의 이미지가 바뀐 계기가 된 곡이기도 하다.

인트로에 나오는 플럭 신스 테마와 미러볼처럼 공중에서 반짝이는 듯한 벨 신스 사운드, 펑키한 베이스 라인과 디스코 리듬의 드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뎁스가 깊은 리버브까지. 인트로에서 이미 끝났다. 시티팝의 가장 중요한 4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다. 레트로한 재킷 커버, 80년대의 느낌을 확실히 살린 뮤직비디오, 안무까지. 음악 외적으로도 시티팝의 콘셉트를 확실히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믹싱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트랙 구성을 시티팝스럽게 하더라도, 믹싱을 트렌디하게 하면 시티팝 느낌이 나지 않는다(Ex : 프로미스 나인 – DM, sabrina carpenter – Cupid). 확실한 콘셉트에 음악성이 받쳐줘 [숙녀]란 좋은 곡이 탄생했다고 본다.

곡의 재밌는 포인트는 후렴구, ‘신경 쓰지 않아’ 후에 나오는 아-아- 코러스와 ‘boy I don’t cry’ 후에 나오는 우-우- 코러스가 있다. 이 외에도 이 곡엔 차곡차곡 잘 쌓인 코러스가 꽤 많다. 코러스들은 음악의 듣는 재미와 풍성함을 더한다.

모른 척할 테니 이 곡으로 다시 활동해 달라는 댓글이 달리는 곡 [숙녀]. 시티팝 추천 첫 번째 곡으로 안성맞춤이다.

2. 예성 – Fireworks [작사/작곡 : NODAY, 이아일, 박문치 편곡 : 박문치]

예성의 4집 미니앨범 ‘beautiful night’에 수록된 [Fireworks] 역시 시티팝의 4요소가 모두 포함된 곡이다. 다만 [Fireworks]는 킥 리듬이 변형되었다. 정박에 들어가는 디스코 리듬과는 다르게, 싱코페이션(한 마디 안에서 강박과 약박의 위치가 바뀌는 것. 당김음이라고 한다)이 가미된 킥 리듬이다. 전체적인 드럼을 들으니 TR-808 소스인 것 같다. [Fireworks]는 필리 소울 기반의 시티팝 느낌이 난다. 적절한 싱코페이션과 컬러풀한 코드 보이싱. 그리고 고급진 코드 진행 때문에 왠지 모르게 카시오페아나 티 스퀘어를 간소화한 느낌도 난다.

숙녀보다 조금 더 차분하고 묵직한 시티팝을 원한다면, 예성의 [Fireworks]를 추천한다.

3. 레드벨벳 – BAMBOLEO [작사 : 차유빈 작곡 : Jake K, Maria Marcus, Andreas Oberg ,MCK 편곡 : Jake K , MCK]

개인적으로 레드벨벳의 음악을 좋아한다. S.E.S의 음악성과 f(x)의 실험성을 결합한 그룹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Bad boy]나 [빨간맛]처럼 대중적인 곡들도 있지만, [짐살라빔]이나 [피카부]처럼 실험적인 곡들도 많다. 레드벨벳 음악의 특징은 비트가 꽤 강렬하다는 점이다. [Rookie], [Russian Roulette], 그리고 위에 언급한 곡들이 그 예이다(Bad boy 제외).

[BAMBOLEO]는 시티팝 느낌을 SM 스타일로 로컬라이징한 곡이다. 시티팝의 4요소를 유지하는 트랙 위에 SM 스타일의 멜로디가 얹어져 묘한 느낌을 준다. 80년대 댄스곡 스타일의 드럼 소스들과 신시사이저 사운드들, 그 위에 언발란스하게 얹힌 모던 멜로디 라인, 그 양 옆에서 화려하게 서포트해주는 코러스까지.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에 현재 가장 트렌디한 아티스트가 공연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레드벨벳과 시티팝을 좋아한다면, [BAMBOLEO]를 적극 추천한다.

4. RM - Hectic (With Colde) [작곡/작사 : Pdogg , RM , Colde]

지금은 몇 멤버가 군대에 가 있어 완전체를 볼 수 없는 BTS. 우리는 그들의 복귀를 퇴근 후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완전체로 모이기 전,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멤버들 모두가 개개인의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그중, RM이 발매한 ‘Indigo’의 수록곡, [Hectic]을 소개하려 한다.

[Hectic]은 레트로 팝에 더 가깝다. The Weeknd의 [Building Lights]나 밴드 ADOY의 음악처럼, 동양의 시티팝 느낌보다는 서양의 레트로 팝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트랙은 시티팝의 어법을 어느 정도 따르고 있다. 초창기 시티팝이 부흥하기 시작할 때, 원곡에 강한 드럼을 덧대어 리믹스했던 곡들처럼, [Hectic]도 드럼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와 딜레이 계열의 모듈레이션 이펙터(페이저, 플랜저, 코러스 등등)가 걸려있는 베이스, 그 위에 지글대는 듯한 RM의 목소리까지. 특히 지글거리는 RM의 목소리는 Colde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대비된다(보컬 믹싱 차이). 그 때문에 RM 파트는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느낌을, Colde의 파트는 차가운 밤거리 같은 느낌이 난다. 이 곡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낮과 밤을 넘나드는 고속도로 드라이브’라고 할 수 있겠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잠시 우리 곁을 떠난 RM, 그의 [Hectic]를 추천한다.

5. 블랙핑크 - Hard to Love [작곡 : Freddy Wexler , TEDDY , Bianca “Blush” Atterberry , Max Wolfgang , 24 , 알티(R.Tee) 작사 : Freddy Wexler , Bianca “Blush” Atterberry , Max Wolfgang , TEDDY 편곡 : 24 , 알티(R.Tee)]

처음엔 R&B인 줄 알았다. 기타가 등장할 땐 모던락 기반의 댄스곡인 줄 알았다. 드럼이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아, 이건 하이브리드다.’ 블랙핑크는 이미 [마지막처럼]에서 디스코를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처럼]은 후렴구만 디스코 리듬을 차용했었다. [Hard to Love] 역시 [마지막처럼]처럼 곡 전체를 시티팝으로 꾸민 게 아니라 시티팝의 몇 요소만을 차용했다. 디스코 리듬과 펑키한 베이스, 단 두 가지만. 명확하게 시티팝이 아닌데도 이 노래를 추천하는 이유는, 왠지 모르게 멜랑꼴리아한 느낌 때문이다. 분명 신나는 리듬인데 노래는 음울하다. 쓸쓸함과 고독함, 마와타리 마츠코의 [sayonara bye bye]에서 느꼈던 그 쓸쓸함이 느껴졌다. 지코의 [아무노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모두가 신나게 놀고 있는 파티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듯한 장면이 연상된다. 화려함과 쓸쓸함. 난 이런 쓸쓸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쓸쓸함은 여운을 남긴다. 화려했던 80년대 거품의 일본, 그 여운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여운을 남기는 [Hard to Love]을 들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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