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유명하지 않지만, 언젠가 유명해질
1. 선데이서울
선데이서울을 검색해 보면 1968년 창간한 잡지가 나오거나, ‘중식이 밴드’의 [선데이 서울]만 나와. 뭐 나오는 게 없어. 하도 안 나오길래 나는 ‘내 머릿속에서 꾸며낸 밴드였나?’라는 회의감도 들더라고. 더 집중해서 찾아보니까 음원 사이트에서 전부 내려갔더라고. 왜 내려갔는지, 은퇴를 한 건지, 해체를 한 건지, 잠정적 휴식인 건지. 그 어떤 정보도 없어. 남은 건 유튜브에 일반인(인지 아닌지도 모를)분께서 업로드하신 1집 앨범 전곡뿐.
‘THE WANNADIES’의 [you and me song]을 닮은 풋풋한 음악을 하는 ‘선데이 서울’. 한 번 들어볼래?
2.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내 인생에서,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밴드를 꼽으라면 단연코 ‘라디오헤드’야. 만약 평생 라디오헤드 음악만 들으라고 하면, 그건 좀 어렵지만. 물론 브리티시 밴드를 전반적으로 좋아하지. ‘The Doves’나 ‘The Verve’처럼 몽환적이고 우울한 밴드를 좋아해. 한국 아티스트 중에도 우울하고 몽환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가 많아. 쏜애플이나, 못도 그렇지.
밴드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는 접한 지 얼마 안 된 밴드야. 이 밴드에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난 국카스텐을 헬로 루키에서 처음 접했던 때의 느낌을 받았어.
‘아, 이건 암네시악이다. 이 감성은 정말 암네시악이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제대로 된 보컬 멜로디가 없는 것도 충격적이었고, 보컬이 없는데도 곡의 힘을 끌고 가는 것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트랙의 길이가 너무 긴 게 좋았어.
3분짜리 곡을 3배로 늘리고 변태같이 파고드는 노래랄까? 확실히 깊이감이 느껴졌어. 이런 음악을 슈게이징이라고 하는데, 신발의 shoe와 뚫어지게 보다의 gaze의 합성어라고 하네. 무대에서 관객들과 소통은커녕 발만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 장르 이름처럼 음악이 뭔가 음침하고 우울해. 만약 이런 우울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분명히 좋아할 거야.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유명하지 않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밴드.
3. 아마츄어증폭기
아마츄어 증폭기는 2001년도에 데뷔한 포크 가수야. 지금은 활동명을 ‘한받’으로 바꿨어. 그는 두 가지 활동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츄어 증폭기’와 ‘야마가타 트윅스터’야. ‘아마츄어 증폭기’는 포크 음악을 할 때 사용하던 활동명이었고,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할 때 사용하던 활동명이었어. 2018년, 래퍼 ‘마미손’의 등장 이후로 부캐가 전성기를 맞았잖아. 부캐라는 건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고. ‘한받’은 이미 2005년도에 두 가지의 음악 자아를 만들어서 활동했었던 거지. 아쉽게도 ‘아마츄어 증폭기’는 2008년 은퇴를 했어. 그 뒤로 ‘야마가타 트위스터’가 활발히 활동 중이지. 본캐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한받’은 지금 민중 엔터테이너로 활동 중이자, 만리동에서 <만유인력>이라는 24시간 무인 서점을 운영 중이야. 민중 엔터테이너가 뭔지 찾아보던 중, 그가 과거에 했던 인터뷰 자료를 발견했어.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86
그는 민중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기에 자신을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소개한대. ‘민중 가수’가 아닌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의 집회 분위기가 과거의 집회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해. 더 이상 예전처럼 진중하거나 가라앉아 있지 않고, 흥겹게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에 맞게끔 이름도 ‘엔터테이너’로 바꿨다고 하네.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미 ‘아마츄어 증폭기’가 은퇴한 이후인 2011년도였어. 영화 ‘파수꾼’에서 기태 무리가 월미도에 놀러 갈 때와 엔딩 때 삽입된 노래가 아마츄어 증폭기의 [먼데이 로봇]이었거든. 난 그때 처음 ‘아마츄어 증폭기’의 음악을 접했어.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블로그에서 밝히길,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 시기에 기술 조교님이셨던 아마츄어 증폭기. 그분의 음악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 영화에 꼭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기술했지.
(출처 : https://blog.naver.com/bleaknight/100123514967)
내가 너무 감명 깊게 본 영화의 가장 중요한 씬에 나왔으니 내 뇌리에 꽂히기는 충분했지. 그 뒤로 거의 몇 년간 내 핸드폰 벨소리는 아마츄어 증폭기의 [먼데이 로봇]이었어. 그리고 그의 마지막 앨범인 ‘수성랜드’는 10대 후반, 내가 힘들 때마다 들었던 앨범이었지.
아마츄어 증폭기의 음악은 단순해. 음원 사이트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인 ‘극좌표’를 들어보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포크 가수답게 기타 한 곡과 목소리가 전부인 구성이야.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기타 주법도 비슷해. BPM만 달라졌어. 코드 진행도 거의 흡사해. 4도에서 1도로 떨어지는 진행(C Key(다장조)를 예로 들면 도{C}가 1도, 레{D}가 2도, 미{E}가 3도…… 시{B}가 7도, 한 옥타브 위 도{C}가 다시 1도. 4도는 파{F}다. 4도 코드는 파{F},라{A},도{C}, 1도 코드는 도{C},미{E},솔{G}이다. 즉, 4도에서 1도로 떨어지는 진행이란, F코드 다음 C코드가 나오는 진행이라는 뜻)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아. 2-5-1 진행도(투파이브원 진행은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걸 추천할게. 2-5-1 진행의 곡은 정말 많아. 깊게 알아 두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꽤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극좌표’ 뿐만 아니라 ‘수성랜드’에서도 이런 진행이 꽤 나오지. 녹음도, 믹싱도 정말 단순하게, 어쩌면 믹싱은 정말 미니멀하게(물론 악기 개수가 적기 때문에 악기가 많은 곡보다는 당연히 수월하겠지만) 작업한 곡 같아. 표면적으로 들으면 ‘대충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근데, 또 음악을 들어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아.
내가 마지막으로 ‘수성랜드’를 들었던 게 2014년도였으니까 햇수로만 따지면 그 뒤로 10년 동안 ‘수성랜드’ 수록곡을 안 들었던 거지. 그리고 지금, 이번 ‘인디 음악 추천’ 글을 쓰기 위해 음악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니 글쎄 유튜브에는 없는 거야. 멜론에도 없고 유튜브에도 없고……. 그러다 만선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지. 그곳에서 23,456원(진짜 기가 막혔어. 금액 때문이 아니라 책정된 숫자 때문에. 웃겨서)을 지불하고 앨범을 다운로드 했어. 23,456원이면 상하이 치킨 스낵랩이 몇 개야……. 근데, 이런 한심하고 반(反)아티스트적인 생각이 2번 트랙이 시작되자마자 사라지더라고. 음악을 듣자마자 어렸을 적 사용했던 핸드폰의 촉감(벨소리였었으니까)과 그때의 공기와 장면까지 모조리 떠오른 거 있지. 거의 3분 동안 입을 벌리고 멍하니 들었던 거 같아. 3분 동안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억만금을 지불할 사람도 있겠지? 근데 난 23,456원만 내고 타고 갔다 온 거야. 진짜 저렴하게.
그 뒤로 음악을 쭉 들었지. 트랙이 26개나 되더라고. 확실히 중간중간 음악이 깨지는 부분도 있고, 기타의 저음부가 공명을 일으켜 '부웅'대는 소리가 그대로 들어가 있기도 했어. 근데, 그런데도 좋더라고. 이런 음악은 이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퀄리티가 좋아지면 절대 이 느낌이 안 날 것 같아(내가 말하는 퀄리티가 좋아진다는 뜻은 ‘잘 정제되어서 만들어진다면’이야).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은 느낌도 들어. 힘을 아껴두거나 패를 숨긴 듯한 느낌이 아니라, ‘이게 나야’라며 당당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느낌.
만약 이전에 단 한 차례도 ‘아마츄어 증폭기’ 음악을 듣지 않았다면, 일단 유튜브에서 {아마추어 증폭기 – 먼데이로봇}만 들어. 들어봤는데 좀 끌린다? 그러면 이제 멜론에서 ‘극좌표’ 전곡을 들어. 이것도 괜찮다? 그러면 일단, ‘수성랜드’ 데모를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들어. 이것마저도 괜찮다? 그럼 만선에서 구매하는 걸 추천할게. 만약 23,456원을 지불하고 ‘수성랜드’부터 들으면, 나를 원망할지도 몰라. 아무래도 추억이 깊은 인디 가수는 아마츄어 증폭기인 것 같아. 아마츄어 증폭기만으로 거의 한 편 분량을 썼으니까. 음악 리뷰는 하지도 않았는데.
만약 네가 파수꾼이 인생 영화이고, 영화 OST인 [먼데이 로봇]을 좋아했었다면(나처럼 핸드폰 벨소리로 설정까지 했었다면) 내 말을 이해할 거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상한 매력을 가진 가수, ‘아마츄어 증폭기’를 추천할게.
마무리는 내가 좋아하는 ‘아마츄어 증폭기’ - [먼데이 로봇]의 Remix로 끝을 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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