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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Nov 13. 2023

[레드벨벳] 여왕님이 돌아오셨다.

레드벨벳 3집 Chill Kill 리뷰

나는 여자 아이돌 중에 레드벨벳을 제일 좋아해. 확실한 콘셉트, 완벽한 음악, 각 멤버의 보컬 역량, 퍼포먼스까지. 어디 하나 빼놓을 게 없거든. 레드벨벳은 항상 실험적인 음악을 타이틀곡으로 들고 왔던 거 같아. [피카부]나 [psycho] 같은 음산한 곡부터 [짐살라빔]이나 [Ice cream cake] 같은 몽환적인 음악, [빨간 맛]이나 [러시안룰렛] 같은 댄서블한 음악까지. 개인적으로 SM식 네오함의 정점은 레드벨벳이 아닐까 싶어. 아이돌 앨범은, 특히 타이틀곡은 시류를 따를 수밖에 없거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을 가지고 콘셉트를 짜고 안무를 만들고 홍보를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말이야.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음악가들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을 발매했다가 묻히는 먹는 경우가 다반수인데 말이야.

근데 레드벨벳은 뭔가… 뭔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앨범마다 신선한 콘셉트와 특이한 스토리를 가지고 컴백하는 거 같아. 아이돌판 앤디 워홀이라고 하면 비유가 맞을까.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인 이와이 슌지가 화이트 이와이와 블랙 이와이, 두 색깔을 가진 것처럼, 레드벨벳도 화이트 레드벨벳과 블랙 레드벨벳, 두 색깔을 가졌다고 생각해. 이번 앨범은 블랙 레드벨벳이야. 몽환적이고 음산한, 마치 마녀의 성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느낌 같달까.

그럼 앨범을 찬찬히 살펴볼까?     


1. Chill Kill

타이틀 곡인 [Chill Kill]은 레드벨벳 특유의 음산함으로 시작하는 트랙이야. 사실 한 곡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처음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어. 나는 귀에 꽂히는 메인 테마를 기반으로 해서 점점 지엽적으로 곡을 듣거든. 레드벨벳의 [러시안룰렛] 같은 경우에는 인트로에 나오는 ‘La La La La La~’하는 테마를 바탕으로 곡이 전개되잖아. 그에 반해 [Chill Kill]은 중심이 되는 테마를 찾기가 어려워. 근데 관점을 바꾸면 전체적인 맥락이 잡혀. 어떻게 바꿔야 할까? 내가 추천하는 방식은 이 곡을 ‘뮤지컬 넘버’라고 생각하고 듣는 거야. 뮤지컬 넘버는 주인공의 감정 혹은 스토리의 변화를 중심으로 곡이 전개되잖아. 그래서 전조(Modulation)가 가요보다 더 자유롭고 변화무쌍하지.

[Chill Kill]도 한 편의 짧은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면 곡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확 다가오지. ‘Chill Kill’이라는 인물(혹은 사건이라고 봐야 할까. 앨범 설명엔 ‘고요함을 깨뜨리는 사건이나 존재’라고 표현하더라고)이 등장으로 변하는 삶을 노래로 표현했어. 상대를 떠나보냈을 때(혹은 떠났을 때)를 노래할 땐 단조로, 상대를 기다린다고 노래할 때는 장조로 진행돼.

단조로 진행될 때는 회상의 기운을 더 살리기 위해 Bell synth가 사용됐어. bell synth는 몽환적인 느낌을 더 주지. 반대로 장조로 변한 후렴구 부분에는 밝고 희망적인 코드 진행으로 분위기를 전환해.

I – II(III, VI) - IV – iv

이 코드 진행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전달하기 적합한 코드 진행이야. JOJI로 더 유명한 Pink guy의 [Fried Noodle(Getter Remix)] 역시 비슷한 진행이야. 이 곡 역시 그의 요상한 캐릭터와는 대비되게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지지. 크러쉬의 [잊어버리지마]의 후렴구도 비슷한 진행이야.

이런 단조와 장조의 변화, 후렴구의 코드 진행, 브릿지에서 오는 80년대 바이브가 한데 섞여 ‘밝은 비극’의 느낌을 주는 거 같아.

내가 항상 말했듯이 앨범의 첫 트랙은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를 미리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해. 이제 이 앨범이 어떤 느낌을 지니고 있는지 대충 파악이 되지?     

2. Knock Knock (Who’s There?)

차이코스프키의 [사탕 요정의 춤]이 연상되는 트랙인 [Knock Knock]은 전작인 [Psycho]가 연상되는 곡이야.

처음에 제목을 보고 미국 유머의 한 종류인 Knock Knock jokes를 떠올렸어. 곡을 들어보니 그런 건 아닌 거 같더라고.

이 곡은 [Psycho]가 연상되는 곡이야. 근데 [psycho]보다 더 어둡고 묵직해. [Psycho]가 광기 어린 커플을 노래했다면, 이건 한쪽이 잡히면 죽는(?) 커플이야. 얼마 전에 ‘집착광공’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었는데, 집착광공 두 명이 연애를 한다면 이런 음악 같은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서로를 미친 듯이 원하는 만큼 종속적인 관계를 원하는 두 명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싸움을 한다면? 그런 드라마가 나온다면 분명 [Knock Knock]이 OST로 쓰일 거야.

근래 발매된 레드벨벳의 음악은 스트링이 꽤 자주 쓰이는 거 같아. [Psycho] 말고도 [Feel My rhythm]에서도 메인 테마로 쓰였지(물론 바흐 선배님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해서이긴 하지만, 그 곡을 샘플링한 트랙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스트링이 주는 웅장함이 레드벨벳의 음악과 잘 어울려서인 거 같아.     

3. underwater

강력했던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곡인 [underwater]는 레드벨벳의 특장점이 돋보이는 R&B 트랙이야. 그들의 타이틀곡보다는 R&B 수록곡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R&B를 제대로 소화하는 그룹이지. 아마 S.E.S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아.

인트로를 듣고 ‘아, 좀 조용한 트랙이겠구나’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강력하고 묵직한 드럼이 똭!하고 나오더라고. 왠지 기시감이 느껴져서 머리를 굴려보니 Kendrick Lamar의 [LOVE.]를 들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더라고(절대 표절이란 얘기가 아니야). 나른한 보컬과 묵직한 베이스단(베이스, 킥드럼)의 언발란스가 꽤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주고 있어.

레드벨벳의 음악 중 특히 좋아하는 건 코러스인데, 이 곡 역시 코러스가 기가 막혀. 후렴구 ‘I can’t Wait babe-’부터 ‘숨을 쉴 수 있는 걸-’까지 겹겹이 쌓인 코러스는 곡을 풍성하게 만들어.     

4. Will I Ever See You Again?

이 곡을 듣고 ‘어머, 이게 뭐야?’ 싶었어. 이런 신스팝까지 소화한다고? 소화 못하는 장르는 뭐지, 싶더라고. 물론 놀라웠지만, 곡 자체에서는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어. 곡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잠깐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야. 상대적으로 평이했다?     

5. Nightmare

다시 다크 레드벨벳으로 돌아왔어. 벌스의 웬디 파트를 듣고 좀 놀랐는데, 멜로디 라인이 옛날 발라드 라인인 거야.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라든지, 양수경의 [당신은 어디 있나요] 같은 옛 발라드 말이야. 물론 뒤로 갈수록 옛 발라드 느낌보다 레드벨벳 특유의 느낌으로 바뀌었지만 말이야. 개인적으로 웬디 파트의 바이브가 쭉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어.

레드벨벳 음악은 ‘모달 인터체인지를 어떡하면 더 화려하게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느껴져. 모달 인터체인지는 나란한 조(C key – Am Key)에 있는 코드를 빌려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 사실은 더 복잡하긴 한데, 만약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아래 영상을 보는 걸 추천할게!



이 곡 역시 타이틀 곡인 [Chill Kill]과 비슷한 느낌이야. 3/4 왈츠 리듬과 피치카토(줄을 뜯는 연주법) 스트링이 [Chill Kill]과는 다른 매력 포인트야. 다크 레드벨벳답게 곡 주제는 악몽에 관한 얘기야. 곡을 듣다 보니 이런 장면이 연상되더라고.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을 꾸는데 저 멀리 하얀빛이 보이는 거야. 그 빛에 점점 빨려 들어가다 잠에서 깼는데, 내 악몽을 깨운 건 옆에 있는 연인이었던 거지. “악몽을 꿨어.”라고 말하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연인이 떠올랐어.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옛날 발라드를 이런 식으로 편곡해서 부른다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네. 웬디 벌스가 너무 강력해.     

6. Iced Coffee

[Nightmare]의 왈츠 리듬이 [Iced Coffee]까지 이어졌어. 다른 점은 [Iced Coffee]는 6/8 박자라는 것과, 전체적으로 통일된 바이브를 가지고 간다는 거? 이 곡 역시 옛 발라드 느낌이 나. 한국 발라드보다는 Blues 풍의 미국 발라드가 떠올라. Jeff Buckley의 [Hallelujah]나 Keith Urban의 [Blue Ain’t Your Color] 같은 곡이 레드벨벳 스타일로 편곡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 Rock으로 편곡해도 꽤 잘 어울릴 거 같아.      

one kiss
bulldozer


7번 트랙인 [One Kiss]와 8번 트랙인 [Bulldozer]는 00-10년대 바이브를 지닌 트랙이야. [One Kiss]는 엔싱크나 보아 느낌이 나고, [Bulldozer]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느낌이 나. 그 당시 엔싱크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One Kiss]와 [Bulldozer]를 좋아할 거 같아. 물론 [One Kiss]의 트랙 편곡 자체는 좀 더 모던하긴 하지만, 멜로디 라인이나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는 왠지 엔싱크 때를 연상시키는 거 같아.   

9. Wings

[Wings]는 앨범의 끝을 장식하는 희망적인 음악이야. 곡에서 S.E.S가 연상되기도 하지.

이 곡을 듣고 또 든 생각은, 레드벨벳이라는 그룹은 SM 여자 아이돌의 에센셜만을 응축해서 만든 그룹이란 거야. S.E.S의 음악성, 천상지희의 퍼포먼스, 소녀시대의 대중성, F(x)의 실험성을 응축해서 만든 게 레드벨벳 같아. 좋은 걸 다 섞었으니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정말 K-POP의 여왕님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그룹이지.   

10. 풍경화(Scenery)

[Wings]가 R&B스러운 트랙이었다면, [풍경화]는 발라드스러운 트랙이야. 둘 다 앨범을 마무리 짓기엔 딱 어울리는 곡이지. 난 사실 [풍경화] 같은 정통 발라드 스타일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아. 그냥 개인적인 기호인 거 같아. 그래도, 앨범의 마무리로는 적합한 노래라고 생각해. 강하고 자극적인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노래라 그런지, 개인 기호와는 상관없이 듣게 되더라고.     

자, 이렇게 레드벨벳의 정규 3집인 ‘Chill Kill’의 리뷰가 끝났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룹이어서인지, 사심이 좀 많이 담긴 리뷰였던 거 같아. 앞으로 더 신선한 앨범을 내줬으면 하는 ‘레드벨벳’. 다음 앨범이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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