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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Nov 19. 2023

[크러쉬] 외길을 걷는 고집. 뮤지션에서 아티스트로

크러쉬 정규 3집 [Wonderego] 리뷰

크러쉬를 처음 접한 건 [가끔]이었어. 뮤지크소울차일드를 닮은 그의 음악은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 락과 발라드만 듣던 내가 제대로 흑인 음악에 빠진 것도 크러쉬를 들은 이후일 거야. 그전에도 R&B를 자주 들었었지만, 아예 디깅했던 건 크러쉬를 들은 이후였던 거 같아.

풋풋했던 신인을 지나 유명한 뮤지션이 되더니, 이제는 거대한 아티스트가 된 크러쉬. 19곡이라는 방대한 양의 곡을 한 앨범에 담은 고집(할 말이 꽤 많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어). 시류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자신감. 더욱 정교하고 섬세해진 트랙까지.

결핍이 앨범의 원동력이었다던 효서비 형의 신보를 들으러 가볼까?


인상 깊게 들었던 곡들을 리뷰하겠습니다.

2. 흠칫

[흠칫]은 2000년대 당시에 유행했던 흑인 POP 기반에 뉴잭스윙 한스쿱을 섞은 듯한 트랙이야. 샤카 칸의 [Like sugar]와 스티비원더의 [Superstation]을 적절히 섞고 거기에 바비 브라운을 얹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내가 크러쉬의 음악을 들을 때 항상 감동하는 건 보컬 코러스야. 보컬 코러스를 너무 잘 쌓아. 곡의 고급스러움을 더하기도 하고 듣는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하지.

내 생각에 크러쉬는 관객과 호흡하는 파트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곡을 쓰는 거 같아. 가수들이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기 위해 뱉는 애드리브를 곡에 녹이는 경우가 많지. 이번 곡 역시 그런 파트가 존재하는데, 'Do you wanna move , NOw i just wanna groove' 파트야. 크러쉬의 콘서트가 그렇게 재밌다던데, 아마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어.

이번 노래도 크러쉬 특유의 워드플레잉이 돋보이는데, [우아해]에서 보여준 우아해(WooWah해), 씨리얼에서 보여준 씨리얼(She's real)처럼 흠칫의 발음을 차용해 (Hmm-Cheat)이란 중의적 표현을 했어. Cheat가 속이다, 바람 피우다라는 뜻이지만, 우리에겐 Cheat-key의 Cheat로 더 잘 알려져있잖아. 아마 흠칫 놀랄만큼 매력적인 이성이 Cheat-key만큼 강력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


3. No Break(Feat. Dynamic Duo)

[No Break]는 기타 라인이 매력적인 디스코 곡이야. 만약 이 노래가 좋다면 톰 미쉬도 좋아할 거야. 이 곡은 다이나믹듀오가 피처링에 참여했어. 오랜만에 전 회사 사장님과 호흡을 맞추는 기분은 어떨까. 곡이 주는 바이브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되게 신났을 거 같아.

크러쉬의 음악은 상쾌함과 따뜻함 두 바이브로 나뉘는 거 같아. [No Break]는 전작인 [Outside]처럼 상쾌한 바이브의 곡이야. 가벼운 킥드럼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베이스는 청량감을 더하지.

여름 바다에 놀러 갈 때 틀으면 딱일 것 같아.


6. Deep End(Feat. amaka)

[Deep End]는 필리소울 트랙이야. 해외 R&B 가수인 'amaka'가 피처링에 참여했어. 'amaka'란 가수를 처음 들어봤는데, 목소리가 곡과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어. 이런 가수를 어떻게 찾았고, 피처링 제안까지 했는지.

크러쉬가 정규 2집 작업을 하면서 나얼을 찾아갔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하지. 90년대 R&B를 오마쥬하고 싶어 이런저런 조언을 얻기 위해 찾아간 그에게 나얼은 5시간 동안 90년대 R&B 음악을 거의 다 들려줬다고 하지. 대화 내용이 웃긴데, 나얼이 '너 이 노래 알아?' 하면 크러쉬는 '아니요.' 그럼 또 나얼은 '이걸 왜 몰라?' 5시간 동안 대화는 이런 흐름의 연속이었다고 해. 그때 정말 많이 배웠었는지 [Deep End]에서 제대로 된 80-90년대 R&B를 보여줘. [No Break]에서 말했듯이 크러쉬는 상쾌함과 따뜻함 두 바이브로 나뉜다고 했었지? 이건 따뜻한 바이브야.  연인과 나란히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연상되지 않아? 


7. EZPZ

[EZPZ]는 요즘 화려한 전성기를 맞고 있는 장르인 저지 클럽 기반의 트랙이야. 크러쉬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저지 클럽을 들으니까 새롭게 느껴지더라고. 앞부분은 왠지 모르게 m-flo가 떠오르기도 해. 장르의 폭을 넓혀가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역시 소화 능력이겠지. 이 트랙에서 크러쉬는 자신의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한 거 같아.


09. GOT ME GOT U

[GOT ME GOT U]는 하우스 음악이야. 테크 하우스라고 하기엔 정적이고, 딥하우스라고 하기엔 동적인 이 오묘한 트랙은 듣자마자 감탄을 유발한 음악이야. 난 Disclosure가 옛 음악들을 리믹스한 트랙을 굉장히 좋아하거든(EP : Moonlight). 크러쉬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하우스 음악을 들으니까 문득 그가 했던 인터뷰 구절이 떠오르더라고. 

"19곡이나 제작한 이유는 서사나 음악적 방향성,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

자신이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장르, 앞으로에 대한 방향성, 서사까지 결합되었기 때문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앨범이 나온 거 같아.

10. Bad Habits(Feat. 이하이)

[Bad Habits]은 'Ego의 시작.'이라고 해. 아마 앨범을 구상할 때 처음 포함된 노래였거나, 처음 만들어진 노래가 아닐까 싶어. 이 노래는 한 편의 단막극처럼 구성된 음악이야. 만남의 설렘 뒤 오는 권태. 그 권태를 견디지 못해 또 다른 사람을 찾는 '나쁜 습관'을 연인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음악이지.

이 노래 덕분에 권태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 누군가가 나한테 '진짜 사랑은 권태 이후로 시작된다.'라고 했었거든. 연애 초창기에 하는 사랑한다는 말은 진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모든 걸 겪고 난 후, 서로가 익숙함이란 감정에 적응될 때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고. 그 말이 사실일까? 정말 사랑은 그렇게 정의 내려진 걸까? 처음의 설렘은 착각인 걸까. 이런 고민을 6/8의 느린 템포에 녹여낸 [Bad Habits]은 왠지 우울하게 느껴지는 음악이야. 사랑이란 단순한 순간의 감정일 뿐일까. 어렵다, 어려워.


13. A Man Like Me

'Back to the 90's soul'이라는 설명에 걸맞은 [A Man Like Me]는 90년대 소울음악의 바이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트랙이야. 전 가사가 영어인데, 아마 듣는 이에게 그 당시 바이브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 Al B. Sure!의 [nite and Day]나 Johnny Gill의 [Giving My All To you]를 좋아하거나 Babyface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무조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그때 유행했던 코드 진행과 코러스 라인이 굉장히 인상적이야. 투박한 힙합 드럼까지. 15번 트랙인 [ㅠ.ㅠ(You)] 역시 90년대 바이브가 느껴져. 


19. 기억해줘

마지막 트랙인 [기억해줘]는 그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음악 동료인 'staytune(신용식)'에게 헌정하는 트랙이야. 앨범 설명에 보면 '2020년 1월 19일 용식이 형에게'라고 쓰여있지.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음악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단순히 작업뿐 아니라, 그 음악을 듣는 리스너 역시 가수와 함께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기억해줘]는 그런 고마운 사람들을 위한 곡이야. 경쾌한 분위기 덕분에 앨범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정리하는 느낌이 들어. 단순히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건, 기억에 남는 걸 거야. 기억은 결국 추억이 되잖아.



이번 크러쉬 정규 3집인 'wonderego'는 크러쉬 모음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앨범이야. 다만 아쉬운 건, 유기성이 좀 없게 느껴진달까? 곡들 간의 유기성은 있지만, 전체적인 앨범의 유기성은 좀 아쉬운 거 같아. 어쩌면 의도된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 게, 앨범 설명에 '나의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을 밟아가며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번 여행에서는 궁극적으로 이 모습도, 저 모습도 결국은 '나'라서 우린 내일도 '나'로서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라고 쓰여있거든. 앨범의 유기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함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 앨범은 크러쉬의 과도기라고 표현하고 싶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다양한 감정들이 모여있는 앨범처럼 느껴졌거든. 현재 진행형인 크러쉬의 음악 여행, 다음 경유지는 어디일지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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