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은 글은?
지금까지 살아온 비교적 짧은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주제는 ‘방황’ 일 것이다. 수업 빼먹고 놀러 가기(물론 교칙에 맞게), 고등학교 자퇴, 미성년자 때 친구들과 술 마시기(부모님 허락 맡고), 놀러 갔다고 봐도 무방한 대학 시절, 작곡회사 입사, 퇴사 후 소설 작가 지망생?
내 인생이 요 모양이어서인지 내 소설엔 방황이 주된 주제가 된다.
사실 나는 내가 방황이란 키워드를 그렇게 많이 활용하는지는 몰랐었다. 글쓰기 모임의 거의 리더 격이었던(진짜 리더는 책방 사장님이셨지만) 극작과 출신의 회원 분이 내게 말하기 전까지는.
“선율 씨는 되게 방황하는 주인공을 잘 쓰는 거 같아요.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었달까? 그러니 ‘카르마‘ 같은 판타지 말고 현실적인, 청춘의 방황에 관련된 소설을 써보세요."
솔직히 속으로 '잉? 카르마 개꾸르잼인데?' 생각했지만,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소설인 '서른'을 집필했다. 거기 나오는 인물들은 거진 다 방황 중이다. 현재는 카르마를 재집필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 역시 방황 중이다. 방황. 아마 그것이 내 인생과 가장 맞닿아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당선됐던 ’경기히든작가‘ 주인공 역시 방황하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 역시 ‘방황’ 혹은 ‘청춘’이란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 대표적으로 유아인(아, 님은 갔습니다). 음악 역시 방황하는 청춘의 대명사인 락을 사랑했고, 소설 역시 방황을 주로 다루는 작가들을 사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에쿠니 가오리, j.d 샐린저… 영화감독 역시. 왕가위, 이와이 슌지…등등 막상 적으려니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근데, 방황하지 않는 인간도 있을까? 정해진 길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럴 수 있는데, 정해진 길이란 게 실재할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행복한 결혼 생활. 이것들이 정해진 길일까? 그것들이 최상의 길일까? 그 길 외엔 모두 방황일까.
개인적으로 포르노 사업도 해보고 싶다. 이건 이 글의 제목과도 맞닿아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 아주 자극적이고 금단의 영역을 벗어난 야설을 쓴다.
2. 그 소설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섹시한 사람을 구한다. 정말 섹시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
3. 아주 좋은 음질로 그 야설을 읽는 asmr을 제작한다. 여성용 남성용.
개인적으로, 영상에 적나라하게 나오는 음란물은 너무 자극적이다. 사실 그 자극에 무뎌지면 사람이 멍청해진다. 더군다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아직도 많은 음란물이 불법 촬영물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이 합법으로 이뤄진 ‘야설 asmr’ 사업을 해보고 싶다. 윌라 오디오북, 밀리의 서재를 이은, 밤에 내리는 눈으로.
이걸 사업화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컨셉을 가진 소설을 한 편 써보고 싶다. 아니, 카르마 다 쓰면 쓸 거다. 음란물 사업에 진출한 여성 사장의 이야기. 지금 시대에 성별로 성적인 것을 억압한다면 시대착오적이니까, 배경은 세기말로 잡는다. 시놉시스를 잠깐 잡아보자면,
한창 성인 인터넷방송이 성행하던 그 시기(2000년대 초반), 주인공은 이런 작금의 현실에 한탄하게 된다.
'이런 시각적인 자극만 좇다 보면, 상상력은 퇴화될 거야. 그럼 인류의 미래는...'
주인공은 야설 읽어주는 인터넷방송국을 개설한다. 영상이 없는, 오로지 음성으로만 자극을 주는 라디오 방송국. 처음엔 본인이 쓴 소설을 직접 녹음했지만, 방송국의 규모가 커져 그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 혼자서 그 많은 공급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주인공은 작가를 섭외하고 또 목소리가 섹시한 여성들 역시 섭외한다(어차피 목소리만 필요하면 되니).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로 한 여성의 편지가 도착한다.
'여성을 위한 야설도 제작해 주세요. 내용이 꼴리기는 하는데, 남자 목소리로 들으면 더 꼴릴 거 같아요.'
주인공은 파이를 키워, 아예 사업화를 계획하게 된다. 그러면서 생겨나는 여러 고난과 핍박.
'여자가 사업을 해? 그것도 포르노 사업을?'
재밌을 것 같다. 써야겠다.
여담 : 프로필 사진을 바꿀 때마다 구독자 급등 작가가 된다. 난 구독자가 급등한 적이 없는디. 구독자 급등 작가의 기준은 프사를 바꾸는 횟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