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글쓰기가 즐겁지 않았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쓰고 있었고, 쓰는 행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작가로서의 성실함이라고 믿었고, 쓰지 않으면 먹지도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성실이 아니라 강박적인 공포였다.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내가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숨이 차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선 뭐라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잘못이었다.
글쓰기가 아닌 ‘작가’라는 타이틀에 매달렸다는 것.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웠는지도 몰랐다.
시작부터 좋은 작품이 아닌 작가라는 껍데기에 매몰되어 있었다.
작가가 되면 온 세상 행복이 다 내 것일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후로 나는 목표를 잃은 조각배처럼 표류했다.
*
단지 글을 쓰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완전히 절망했다.
삶 전체가 붕괴되고 있었다.
먹고 마시는 일도 귀찮았고, 뭘 보고 들어도 즐겁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필요했다.
가장 처음 한 일은 ‘서브 필명’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정은’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잊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신인 시절 무료연재를 했던 작은 플랫폼을 선택했다.
플랫폼의 프로모션을 따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뱀 머리라도 된 듯한 우월감을 느끼며 연재를 시작했다.
글을 쓰는 방식도 달리 했다.
시놉시스를 쓰긴 했지만 프로모션을 따기 위한 필요 서류였을 뿐 실상 줄거리는 아무것도 정해놓은 게 없었다.
캐릭터 두 명과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 하나.
단출한 조합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계획적인 글쓰기는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즉흥적인 글쓰기는 자유로운 쾌감을 가져다 준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만들어지고, 캐릭터가 그 위에서 놀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낯설지 않은 감정이었다. 드라마 대본을 쓰다가 처음 웹소설을 썼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구속구를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작품의 성적이 주는 압박감도, 내 이름을 따서 지은 필명의 무게도 잊었다.
그 날 그 시간 속에는 오로지 글과 나만이 존재했다.
우리 둘 사이는 너무 긴밀해서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닌, 순수한 재미로 인해 만들어진 창작물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
해당 작품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마다 소소한 용돈을 보내온다.
그 숫자는 작품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그 작품은 특히 나에게 소중한 작품의 하나가 되었다.
그 작품이 나를 다시 초심으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즐거움.
내가 되찾은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