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는 말로 쓰는 사람이 되었다.

by 이정은


첫 강의 날, 놀라울 만큼 떨리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막상 닥치고 보니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지도 않았고, 손끝이 차갑게 식지도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익숙한 감각이 들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 공기는 훈훈했다.


책상 위엔 노트북 대신 강의안이 놓여 있었다.

익숙한 댓글 대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맞이 했다.

그 속에서 나는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


왜 떨리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곱씹어 보았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얻은 답은 아마도 나는 이미 수없이 이야기해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은 ‘말’이 아니라 ‘글’로 해왔을 뿐 독자에게 건네는 문장 하나하나가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나의 ‘이야기’ 였다.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잡은 나와, 원고 위에 커서를 두던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 안의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첫 슬라이드를 넘기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웹소설 작가 이정은입니다.’



그 말을 내 입으로 꺼내는 순간, 묘하게 전율이 일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 인생의 다음 챕터가 열리고 있다고.



*



강의가 끝난 후 한 고등학생이라던 수강생이 다가왔다.


수줍은 홍조를 양 볼에 띄운 채로 나를 향해 베시시 웃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막 쓰고 싶어졌어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다음 강의에 대한 설렘과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 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강의를 늘려나갔다.



*



현재 나는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말은 글에 비해 즉흥적이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더 솔직하다.


문장처럼 다듬을 수 없기에, 그 자리에서 진심이 드러난다.


나는 글을 쓸 때보다 더 자주 웃었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한때 나를 괴롭히던 불안이 조금씩 멀어지는 걸 느꼈다.


강의실에 서 있는 동안에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글을 처음 쓰던 그 시절의 내가 돌아와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한다.


세상엔 많은 형태의 ‘쓰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말로 쓰고, 표정으로 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로 쓰고 있는 것처럼.

이전 01화10화. 스토리를 디렉팅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