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종종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글쓰기는 결국 혼자 하는 일인데, 누군가가 그걸 ‘가르친다’는 게 가능한 걸까.
그래서 나는 강사로서의 나를 조금 다르게 정의한다.
‘스토리 디렉터 이정은’
배우가 연기를 직접 한다면, 감독은 그 연기 속에서 감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도 비슷하다.
나는 그들의 문장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 문장이 더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그 이야기가 가진 본래의 힘을 잃지 않도록 살짝 각도를 조정해주는 사람이다.
때로는 ‘이 장면의 감정을 조금 더 밀어보자’라고 말하고, 때로는 ‘여긴 잠시 호흡을 빼도 괜찮아요’라며 멈춰 서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저앉았을 땐, ‘괜찮아요. 다시 해봅시다.’ 하며 손을 내민다.
나는 글을 ‘가르친다’기보다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디렉팅한다’.
결국 그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재가공해서 가장 진심 어린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강의실은 나에게 늘 하나의 무대다.
그 안에는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배우들이 서 있고, 나는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그들의 연기를 지켜본다.
어떤 수강생은 너무 서두르고, 어떤 수강생은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춘다.
나는 그들의 페이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곁을 보좌한다.
*
가르친다는 건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사실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글은 결국 스스로 써야하고, 내가 하는 것은 웹소설 문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줄 뿐이다.
아니, 오히려 함께 배우는 일이다.
때로 수강생이 던진 질문은 날카로워서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 때가 있다.
‘지망생들 중에 정말 잘 쓰는 분들도 계신데 왜 데뷔를 못 하실까요?’
‘런칭된 작품 중에도 개연성이 맞지 않는 작품이 많아요.’
그들의 질문은 내 안에 또 다른 질문을 생산시키고 생각을 확장시킨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답을 준다기보다 같이 고민하는 쪽을 택한다.
함께 답을 찾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 또한 수강생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초심을 되찾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갖고 있는 얕은 지식이 얼마나 비루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더불어 글쓰기를 통해 인간은 대체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내게 남은 성장과제가 무궁무진하다는 아득한 현실도 깨닫는다.
*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더 정확히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설계하고, 행동의 이유를 찾아내다 보면 언젠가 그 감정의 뿌리가 내 안에 닿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수많은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첫 독자로서 만나게 된다.
그들의 문장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지만 그 나름대로의 결이 살아 있다.
그 서툰 결 속에는 언제나 진심이 있다.
나는 그 진심을 읽는다.
그리고 그 진심이 나의 과거와 닿아 있을 때, 문득 가슴 한편이 저릿해진다.
그들이 처음 문장을 써 내려갈 때 느끼는 두려움, 끝까지 완성하지 못할까 하는 불안,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의 부끄러움. 그 모든 감정이 너무 익숙하다.
그들을 엿보고 이해하면서 다시 나를 돌이켜 보고 이해하게 된다.
순기능이다.
나는 가르친다기보다, 그들의 옆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왜 쓰게 되었는지를 함께 찾아가는 사람으로.
그게 내가 말하는 ‘스토리 디렉터’의 일이다.
이야기를 지도 위에 펼쳐놓고, 그 길을 함께 걸으며 방향을 제시하는 일.
길을 잃은 이에게 손전등을 들어주고, 잠시 쉬어갈 때는 그 옆에 앉아 있는 일.
지친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물병을 건네는 일.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디렉팅하며 동시에 나 자신을 배워간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를 보고, 그들의 성장 속에서 내 안의 성장도 본다.
그 순환 속에서 나는 여전히 쓰고, 여전히 배우며, 여전히 성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