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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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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May 29. 2022

동사의 맛

김현규 씀

김정선 / 유유 / 2015.04.

  제목과 부제가 재밌다. 동사의 맛이라.. 우선 습관적으로 관형격 조사 '-의'를 쓴 게 아닌가 의심하며 빼고 생각해 봤다. '동사 맛' 뜻은 통하는데 '맛동산'이 떠오른다. 부제를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이라고 되어 있다. '숙수'는 요리사를 뜻하는 단어인데 여기서는 '어떤 일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비슷한 말로 '익수'라고도 하는데 '베테랑'이나 '노련가'라는 뜻이다. '움직씨'는 우리말 품사 중 동사를 순우리말로 순화한 표현이다. 참고로 명사는 이름씨, 조사는 도움씨, 부사는 어찌씨, 형용사는 그림씨 등이다. 아마 제목과 부제를 정할 때 '동사'라는 표현과 이를 일컫는 순우리말 순화어 '움직씨'를 함께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 표지만 봐도 아! 동사를 움직씨라고 하는가 보구나 하는 정보를 배울 수 있고 이렇게 연결하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움직씨가 대체 뭘까 하는 궁금한 마음을 갖고 표지를 열 수 있다. 20년 넘게 잡지와 단행본 문장을 다듬어 온 전문 교정자다운 멋진 솜씨다


  그런데 왜 '맛'이라고 했을까. 사실 세상에 맛이 아예 없는 음식은 없다. 가끔 과학 시간에 '질소는 공기의 약 5분의 4를 차지하는 무색, 무취, 무미한 기체입니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음식은 사용된 재료마다 고유한 맛이 있기 때문에 '무미(맛이 없음)'란 있을 수 없다. 사실 '맛'이라는 단어는

1.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에 느끼는 감각
2.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느끼는 기분

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겉으로는 1로 보이고 실제로는 2를 염두에 두고 쓴 중의적인 표현 같다. 실제 본문을 보면 이런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단어를 나란히 제시하여 비교하고 있다. 불어에서 온 외래어 뉘앙스 nuance는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이라는 뜻인데 순화어로 '느낌, 말맛, 어감'이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동사가 가진 뉘앙스, 곧 동사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문을 열면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로막다
가로새다

  사람이든 비밀이든 이야기든 옆길로 샐 때가 있다. 사람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비밀은 누군가 발설하고 이야기는 맥락에서 벗어나 옆길로 샌다. 가로샌 사람은 실망을 남기고 가로샌 비밀은 노여움을 불러일으키며 가로샌 이야기는 맥 빠지게 만든다.

  모든 사람을 내 곁에 잡아 둘 수 없고 내가 입 밖에 낸 말이 끝까지 비밀로 남기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 또한 옆길로 새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어릴 때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가로새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것 같던 비밀들은 어느새 가로새 한낱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듯, 삶의 이야기 또한 무수한 옆길을 만나 이리저리 가로새면서 이어져 간다.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가로새는 삶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언젠가는 이야기들만 남고 남자도 나도 모두 삶의 무대에서 슬그머니 가로새겠지.

  이렇게 가로새는 것들은 가로막아 봐야 헛일이리라.

27쪽


  비슷하게 생겼지만 뜻이 다른 두 단어를 나란히 두고 그 단어들을 활용하여 짧은 글을 한 편 썼다. 그러면서 내용이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한편 직접 설명하는 장면도 나온다.


간당이다
간댕이다

  느슨하게 달려 있는 작은 물체가 위태롭게 흔들릴 때 '간당간당하다' 또는 '간댕간댕하다'라고 한다. 물건 따위를 많이 써서 거의 남지 않거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둘은 각각 '간당이다'와 '간댕이다'에서 온 표현인 듯한데, '간당이다'와 '간댕이다'에는 느슨하게 달려 있는 작은 물체가 위태롭게 흔들린다는 뜻밖에 없다. '간당간당' 또는 '간댕간댕'이 되면서 물건이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 더해진 모양이다.

  하긴 느슨하게 달려 있는 작은 물체가 자꾸만 흔들린다면 곧 떨어질 것 같을 테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실제로 간당간당하다, 간댕간댕하다 하고 발음해 보면 정말이지 마음이 어딘가에 걸려 흔들리다가 곧 낙엽처럼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생각해 보니 남자와 여자에게 어울릴 만한 낱말이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로 살던 때는 간당이는 삶이었다면 두 사람이 만나면서 간당간당해진 셈이니까.

  35쪽


  설명만 나오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잘 엮어서 썼다. 그야말로 숙수답게 노련하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게 하고 비슷하게 글을 써 보게 할 수도 있겠다.


말맛을 견줄 단어들 + 설명 + 단어를 활용하여 생각과 느낌(또는 깨달음)을 담은 짧은 글짓기


  나도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읽은 책이나 교과서를 읽고 뜻을 알고 싶은 단어를 사전에서 찾고 예문까지 적게 한 다음 새로운 예문을 책에서 찾아 쓰거나 새로 지어 쓰는 활동을 했다. 다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진지하게 열심히 수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개념어 공부하기 시간에는 알고 싶은 개념어를 찾아 쓰고 한자어인 경우 한자도 쓰고 같은 뜻을 가진 외국어도 쓰게 했다. 예를 들면, 문화 文化 culture(영) cultra(라틴. 경작하다). 이렇게 해서 내용을 비교하게 한 것이다


  본문 구성이 내가 했던 수업과 유사한 면이 있고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은 면도 있어서 읽는 내내 어떤 활동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띄어쓰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나 활용에 따른 형태 변화 같은 문법적 설명 등도 포함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한국어 문법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더 잘 읽을 수 있다. 물론 그런 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다. 재미있는 설명도 중간중간 많이 있다.


  머리카락은 나고 병은 낫고 애는 낳는다.
  
  71쪽


  이렇게 가르치면 학생들이 외우기도 쉽겠다. 실제 교실에서 써먹었는데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오오! 하며 감탄했다. 하루에 한쪽씩 제시해서 베껴 쓰게 해도 좋은 활동이 될 거 같다. 재미도 있고 배울 점도 많고 무엇보다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차례는 1부. 가려 쓰면 글맛 나는 동사 2부. 톺아보면 감칠맛 나는 동사로 이루어져 있다. 글쓴이는 머리말에서 동사를 '글맛을 내는 육수와 양념'이라고 소개하면서 본문 구성과 차례를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지 밝히고 있다.


  표제어는 찾기 쉽도록 사전처럼 배열하되 예문을 통해 한 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이 책의 1부가 쓰였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동사의 뜻풀이와 활용형을 밝혔고 예문을 통해 기본형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꾸몄다. 그리고 각각의 예문이 연결되어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되도록 짰다. 이야기와 함께 우리말 동사의 쓰임을 일별할 수 있으리라는 깜냥에서였다. 그런 다음 2부에서 좀 더 헷갈리는 동사들을 만난다면 적어도 덜 지루하게 읽을 수 있는데다, 좀 과장하자면 심화 학습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11~12쪽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코로나 이후 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들린다. 나는 일찍이 모어인 한국어 실력을 잘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얘길 여러 곳에서 틈만 있으면 해왔다. 학교에서 보면 영어를 우리말로 다 해석해 놓고도 주제를 찾지 못한다든지, 다음에 이어질 말로 적절한 문장을 찾지 못한다든지, 말하는 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등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를 보이는 학생을 자주 만났다. 또한, 말하고 쓰고 듣고 읽는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해서 학습이나 관계 맺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많이 만났다. 실제로 한국인의 한국어 실력은 높은 편이 아니다. 모어로 작성된 고급 정보에 접근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글쓴이는 명사가 음식으로 치면 주재료 해당하고 동사는 늘 찬밥 신세라고 했다. 사전에서도 기본형이 실리고 활용형은 몇 가지만 제시되는 등 용언에 대한 배려가 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면 중요도는 어떨까. 나는 한국어의 핵심이 용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 문장에서는 서술어가 핵심이다. 물론 용언만 서술어가 되는 건 아니다. 서술격조사 '-이다'가 체언과 결합하여 서술어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서술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요구하는 문장 성분이 달라지니 한국어 문장에서 서술어가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용언은 전부 서술어가 된다. 한국어를 세련되게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즐겨 보면 크게 도움이 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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