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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ul 05. 2022

리뷰 쓰는 법

김현규 씀

내가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낀 것의 가치를 전하는 비평의 기본기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 박숙경 옮김 / 도서출판 유유 / 2018.03.


  제목은 <리뷰 쓰는 법>이고 부제목은 <내가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낀 것의 가치를 전하는 비평의 기본기>이다. 리뷰와 비평을 섞어서 쓴 이유를 모르겠다. <비평 쓰는 법>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본문을 보면 머리말에서 한두 번 나오는 걸 제외하고는 전부 비평이라고 나온다. 오히려 '리뷰'라는 단어를 써서 용어의 일관성이라는 원칙이 깨졌다. 본문에서는 대부분 비평이라고 쓰고서는 제목을 저렇게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 제일 처음, 그러니까 본문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쓴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재능은 하나의 재산이자 보편적인 취득물이라 겉으로 드러난 사상과 문체 아래에서 확인되어야 하지만, 비평은 단지 사상과 문체의 표면만 보고 작가를 분류할 따름이다.


  저자는 이 문장을 왜 인용했을까. 비평이 창작에 비해 별 거 아니라는 뜻일까? 아니면 재능이 필요한 창작에 비해 비평은 성실히 노력한 사람이라면 꼭 재능이 없더라도 쓸 수 있다는 뜻일까? 번역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번역본을 읽어봐야 무슨 의도로 책 맨 앞부분에 이 문장을 배치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의 맨 마지막에 있는 역자 후기를 보니 의문이 풀렸다. 제목이 <누구나 비평을 쓸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이다. 그리고 내용 중에도 "과거 무게 잡던 비평의 권위를 벗어나되 비평이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가지라."라고 말한다. 책의 내용을 활용하여 정리하자면 아마도 저자와 역자 모두 비평을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휴식처"라고 생각한 듯하다.


  저자가 쓴 머리말 제목은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글쓰기>다. 여기에서 저자는 "비평은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도구이고, 비평은 상대에게 가치를 전하는 행위다... 저마다 다른 관점이나 사고를 활용해 가치를 전달하는 사회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정보 통신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글을 썼다고 한다. 원고를 출판사에 의뢰해 편집 과정을 거쳐서 책으로 만들던 시대에서 글을 생산하는 사람(발신자)과 글을 소비하는 사람(수신자)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글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시대, 즉 '쌍방향성의 시대'에 살고 있어 사람들이 평가를 의식해 의견 주장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한다. 사람들이 이를 피곤해한다, 또는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즉각적 쌍방향성의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쓰고 읽으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에 능숙하기 어렵다고 얘기하는데 비평이 가진 효과를 젊은이들과 공유하려는 생각은 좋지만 젊은이들이 이를 어려워하니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가르쳐 주자는 생각은 계몽주의적인 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평은 대상의 긍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관찰할 수 있고 관찰해야 발견할 수 있다. 발견해야 생각이 쌓인다. 비평은 끊임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현대에 조금이나마 침착함과 차분함을 제공할 수 있다.


  긍정해야 관찰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어떤 글에서 저자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대상에 대해 '평가'하는 비평은 반드시 긍정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긍정하지 않더라도 관찰할 수 있다. 의심하거나 반대하거나 부정하기 때문에 관찰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걸 단순히 '싫다'라고 하는 건 비평에 어울리는 좋은 문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긍정해야 관찰하고 관찰해야 발견하고'의 연쇄 과정은 좀 무리가 아닌가.


  상세한 방법적인 내용을 정리한 책이지만 중간중간 이상하다 내지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예를 들어, 물건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결정된다는 표현이 있는데 내가 알기로 물건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고 객관보다 주관에 영향을 받는다. 그림의 가치가 그렇고 아파트 가격이 그렇다.


  문제를 단순화하는 글은 다양한 가치를 해친다고 하지만 문제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단순화하여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건 주장하는 글을 쓰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저자가 주장하는 '다양한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주장을 담은 글을 다양하게 읽는 게 필요하지 글 하나에 이것저것 다양한 가치를 담으면 다양해지는 게 아니라 모호해진다. 어떤 글이 남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글 하나에 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글의 본문에서 대상을 다양한 각도로 조망하여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아마도 일본 특유의 문화인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본인인 저자가 쓴 글이기 때문에 역자주가 필요한 부분이 눈에 띈다. 본문에 보면  


사전에서는 '비평'을 "모든 물건과 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표현이 있는데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비평은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 또는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이러쿵저러쿵 좋지 아니하게 말하여 퍼뜨림."이라고 나온다. 그러면 여기에 역자주를 달아서 대체로 뜻이 통한다든가 본문의 설명은 일본 사전에 나오는 표현이고 한국어 사전에서는 이런 뜻이다라고 따로 설명을 했어야 한다.


  쓰다 보니 책이 이상하다는 쪽으로만 흐르는데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내용도 함께 담겨 있다. 가치를 전달하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객관적 정보만을 모아서는 안 되고 독자에게 행동을 촉구하거나 주의를 환기할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사고 과정이 일어나도록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비평을 비롯하여 주장하는 글이 갖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비평에서는 감상으로 끝내지 말고 세세히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명확히 문제 제기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비평을 쓸 때 꼭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비평은 대상과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니 사랑이 없으면 쓰지도 말라고 한다든가 하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그리고 다듬지 않은 용어 선택도 아쉽다.  


  비평은 시대를 부감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어색한 문장이기도 하고 '부감'이라는 단어도 낯설다. 우리말 사전에 있는 단어이긴 하지만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나로서도 처음 본 단어다. 부감은 俯瞰 부감-되다 부감-하다로 파생되며 "높은 곳에서 내려다봄."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조감 鳥瞰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이 책에서 설명하는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은 아주 정확하고 간결하며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목차를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글 쓰는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 역자의 설명에 의하면 언어 차이 때문에 문장을 단련하는 대목은 어느 정도 생략했다고 하는데 본문에서는 나도 별로 이견이 없다. 확실히 일본인은 책을 쉽고 실용적으로 쓴다. 어렵고 딱딱한 책은 독일인이 잘 쓰고 일본인과 미국인은,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는, 가볍고 실용적인 책을 잘 쓴다.


  주장하는 글을 쓰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2. 비평을 위한 준비부터 읽으면 된다. 특히 5. 비평을 꿰뚫다의 마지막 파트인 '계속 쓰자'를 명심하길 빈다. 왜 계속 써야 할까? 저자가 말한 내용 그대로다.  


  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는 바로 계속 쓰는 것입니다. 재미도 특징도 없는 제안이지만, 이 방법을 이길 기본기는 없습니다.... 글에는 계속 써 나가야 하는 총체로서 '커다란 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쓰는 한, 다 썼다고 단언할 수 있는 글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중간에 동의가 되지 않거나 상세히 설명한 부분은 빼고 적었다. 특히 하나하나의 글이 모여서 만들어진 총체로서의 큰 글이 있으며 계속 쓰는 한, 글은 계속 이어진다는 표현이 평소 생각과 같아서 마음에 든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국 서사이고 이것은 보편 서사 안에 담긴 개인 서사이자 나의 통시적 서사는 공시적 서사와 연결된다. 그 지점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불꽃이 튀며 역사가 만들어진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늘 있어 왔지만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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