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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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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ul 19. 2022

앞으로 올 사랑

박승훈 씀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


정혜윤 / 위고 / 2020.12.


  책을 읽는 일은 얼마나 까마득한 일인가. 재미있다 생각하면서 책을 읽다가, 이 책은 다시 읽고 싶다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고도 다시 뒤를 돌아보면, 이 책을 읽었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출발한 곳은 책의 표지이고, 끝난 곳은 거기서 한 꼬집 정도 떨어진 지점인데도, 아주 먼 곳으로 가서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나는 책의 첫 장과 마지막 페이지를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에는 그저 다 기억하지 못해도, 이 책의 이야기는 분명 나를 통과했다.라고 나를 설득하기가 이롭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음악을 알려면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고, 그림을 보려면 많은 그림을 봐야 하고, 책을 읽으려면 많은 책을 봐야 한다. 그러기 귀찮아서 혹은 빠르게 가려고, 누군가의 책 추천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정혜윤 작가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읽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책을 좀 읽어야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에 나오는 작품은 다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책 속에 소개된 책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의 목록들이 많이 쌓여 있다. 이 생에는 충분히 많은 책을 읽기는 글렀구나 생각이 들지만,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 일부를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아픈 사람 곁의 책


  코로나 시대의 이야기로, 책의 방향을 여는 이 작품은 페스트가 유행했던 시대에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데카메론의 이야기 방식을 따라가기로 한다. 데카메론을 읽지 않은 나는 그저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여러 가지 가엾은 것, 가엾은 사람들, 가여운 순간들.. 그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나는 몇 번이고 눈에 힘을 주고 하늘을 쳐다봤다. 책을 다 읽은 오늘 붙여둔 띠지를 보고, 다락방 계단을 오르듯 하나씩 따라간다.

이 책은 읽을 책들에 대한 사랑을 다음 이야기고, 읽은 책들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동물을 사랑하는 저자의 이야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노동자, 수컷 병아리, 박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말에 홀린 듯, 인간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고, 나는 무엇으로부터 눈을 돌려 왔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반성할 게 너무 많다는 건, 마치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때, 사람이 일단 넋을 놓고 있는 것처럼.  

의심을 품으면 자유, 의심을 품지 않으면 부자유라는 말에 입각해서 보면 내 친구는 자유다.

의심을 품는다고 해도, 나는 길들여진 인간. 나에게 자유의 불편함이나 의심의 의의에 대해 알려줄 자극이 필요하다. 좋은 책과 좋은 영화 혹은 좋은 사람과의 대화가 그런 역할을 할 텐데, 요즘에는 일일일에 떠밀며 좋은 책도 좋은 영화도 좋은 사람과의 대화도 드물다. 바다에 빠졌으되 육지가 보이는데도 간신히 제자리에 떠 있기만 한 기분에 빗댈 수 있을까. 바쁘고 바쁜 시기에 이 책이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찌 되었든 재미있는 책, 나를 일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잠시 건져내 줄 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존을 탐색했던 영국 작가 제이 그리피스의 말에 따르면 정글에서는 길을 잃기가 너무나 쉬운데 그것은 길이 금방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글에선 길을 반복해서 걷는 것이 사랑의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반복해서 하는 것도 사랑의 행위다.


  이런 비유는 마치 공부와 장기기억 같지 않은가. 기억을 자주 인출하면, 그 지식까지 가는 통로가 선명해져서 더 잘 인출하게 된다.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자주 꺼내어 보고, 퀴즈로 만들어 다시 돌보는 게 좋은 방법이다. 옳은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옳은 길을 자꾸 걷는 것은 쉬울까. 학교에서 자주 나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는데, 후회를 하면서도 자책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고 나를 깍아내리는 말을 내게 할 때도 있다. 우선 나를 사랑해서 나를 건져내야 하는데, 나의 감정에 귀 기울여 줄 시간이 늘 필요하다.


  아이돌에서 아이돌이 아닌 가수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가수들이 곧잘 "나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른다. 오래된 노래지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Voice Within 이 그렇고, 요즘 듣고 있는 이하이의 홀로도 그렇다. 정신없이 살다가, 결국 헛헛한 기분이 들면, 나의 마음을 먼저 돌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혼자이거나, 혼자일 수 있어서 혼자이거나.


  오늘까지 비폭력대화 온라인 강의(기본) 마지막 강좌를 들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대화, 내 감정을 읽고, 감정 뒤에 숨은 욕구를 찾고,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읽어내고, 다른 사람을 연민의 감정으로 살피고, 모두의 연결을 꿈꾸는 방법. 현실에서 가능이나 할까 싶지만, 여러모로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익힐 수 있는 좋은 태도를 알려준다. 여기서 태도의 전환이란 결국 마음의 전환이다. 하지만, 마음 만으로는 어떠한 실체를 가진 실천이 될 수 없으니 '대화'를 연습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연결하려면, 우선 다른 사람과 연결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야 하는데, 내 마음부터 보는 게 그 시작이다. 내 마음부터 돌보는 게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게 너무나 마음에 든다.


  나와의 화해는 나여서만 가능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사람들, 사건들에 마음은 가라앉고, 뜻하지 않은 죄책감을 느끼고 내 무지를 꾸짖는다. 그렇지만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알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더 알아갈 결심을 한다는 점에서 칭찬한다. 그리고 서점 장바구니를 채우면서, 그렇게 채운 책만큼 타자에 대한 내 감수성도 조금씩은 더 예민해지기를 기대한다.


  아래에 띠지로 표시했던 부분을 더 옮겼다. 나에게 울림이 있었던 과는 다른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집어 들 수 있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면 좋겠다.  

신비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자아를 넘어선 어떤 것을 생각한다. 제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그 일을 한다.
우리는 고독을 권장하는 사회에 살지만 연결이 끊어진 순간 불안해한다.
만약 한 사람이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면 학대로 여겨진다. 그런데 산업이란 명목으로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면 용인된다. 나아가 정말 정말 큰돈이 걸리면 아주 똑똑한 사람들까지 나서서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끝까지 옹호한다.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핵심이 '생명과 삶의 전 과정에 대한 돈의 지배'의 전면화였다면 디스토피아의 굳건한 토대는 무지와 무관심이다. 나쁜 것을 나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무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심 없는 무관심.
다른 식으로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 하나의 풍경처럼 아름다울 때 --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일에 몰두해 있을 때, 무심코 하는 행동이 음악처럼 아름다울 때 -- 우리는 거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늘 다른 사람이 봐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단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퍼퍼위.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인데, 퍼퍼위는 '버 밤중에 땅에서 밀어 올리는 힘'을 뜻하는 단어다. 내가 이 단어를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출신의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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