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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Mar 29. 2021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자기만의 방을 소망하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 박미정 씀

하재영-지음  펴낸곳-라이프앤페이지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었다. 책에는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이란 부재가 붙어 있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 주목하고, 그것을 소재로 글을 썼다니 일단 관심이 생긴다. 새로운 소재고 신선한 접근이다. 


 책에는 대구시 중구 북성로의 집부터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의 집까지 하재영이란 사람이 살았던 집에 관한 10편의 글이 실려 있다. 단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집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아니다. 그 집에 살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대구의 강남 '수성구'의 명문 빌라에서 살았던 부유했던 시절을 지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서울에 와서 관악구 신림동의 원룸에 살았던 시절, 동생과 함께 성동구 금호동에서 함께 지냈던 시절 등. 작가는 그 집에 살던 시절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지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었고, 글 쓰는 사람이고자 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은 가난한 작가에게, 약자인 여성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공간을 선택하고, 그 공간을 나의 취향대로 꾸밀 수 있는 자유는 내 삶을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권리와 맞닿아 있다. 


  자신이 소유한 집을 제 취향대로 꾸미는 이가 있는가 하면 월세나 전셋집을 전전하며 나만의 방 하나 갖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이가 있다. 한집에 살아도 누군가는 집 전체가 자신의 공간인 반면 누군가는 방 한 구석에라도 자신만의 책상 하나를 놓아보길 소망한다. 


  나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난 시절 나의 집과 나의 삶을 떠올렸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글을 써야 했다는 그녀의 말에 눈물이 났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걸 나도 안다. 그녀에게서 내 지난 시절을 보았다. 가슴이 저릿하고, 목이 메었다. 


  작가는 결혼 후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리기 위해 집을 고르고, 집을 손수 꾸미고, 거실을 자기만의 방으로 만들었다. 힘겹고 고단했던 시절을 자기 안에 꾹꾹 눌러 담아 이제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됐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건 자기의 취향을 존중받는 것이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집에서 나만의 방은 어디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정식으로 내게 할당된 방은 없다. 몇 년 전부터 글을 쓴다고 거실에 놓은 커다란 책상과 의자가 전부다. 이거라도 어딘가 싶다가도 왜 여기에 만족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을 맞춰야 한다는 걸 작가를 보면서 깨달았다. 


  오랜만에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자기만의 삶을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여성의 이야기다. 작가의 시선, 문체, 주제 모두 좋았다. 오랜 시간 묵히고, 걸러내고, 다듬은 이야기다. 하재영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자기만의 방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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