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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May 31. 2021

외로운 아이들

자해하는 아이들, 그 다섯 가지 이야기. 함은희 씀

배경음악 듣기: https://youtu.be/b6PsOeB9H6I


“감정표현불능증(알렉시티미아) : 영혼을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


  “자해"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책에 대한 설명을 하시고 경기실천교사모임의 김호빈 선생님께서 존경하는 선배님이 쓰신 책이라고 하시면서 여러 권을 사셔서 나눠주셨다. (이렇게 공부의 기회를 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


  그리고 앞부분을 읽다가 마음이 아파서 덮어두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읽어 내려간 이야기. 이런저런 형태로 자기를 혐오하고 자기 자신을 처벌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렇게 아이들이 일그러져가는 것들을 얼마나 어른들은 헤아리고 있는 것일까. 



  나 자신, 교직 처음부터 성적이 낮다고 학생들에 대해 판단한 적이 없었다고 믿었고,  물론 외모는 더 판단의 영역에 넣지 않았다고 믿고 있지만(정말 그러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너무 오랜 시간, 아니면 한 두 번일지라도 판단당하고 외면당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며 자라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차 지필평가(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아이들이 무슨 마음으로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새 학년을 맞았고, 새로운 선생님들과 새로운 친구들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정말 다짐도 높았고 새로운 의지를 불태웠던 아이들의 마음이 풀썩 죽어버려서 저기 땅바닥에 떨어져 한숨과 뒤엉켜 힘없이 늘어져 있는 실황을 목격한 기분이다.  1등급, 약 20여 명의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해 시험문제는 늘 초고난도를 향해 달려가고 결국 전체 9등급에서 6, 7, 8, 9등급의 친구들은 읽어도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인 일반적인 인문계고등학교 시험문제. 그런 시험문제들 앞에서 학생들은 얼마나 더 무능감, 소외감, 초라함을 느끼며 살아야 이 무의미한 학교생활이 끝나는 것일까 싶다. 


  자해하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말로, 아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는 아이들이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어느 순간 떠밀려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마치 인생의 나락인 것처럼 느껴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아무 대답도 해 줄 수 없고 한숨만 쌓여갈 뿐이다. 


  자해의 원인에 대해 뇌과학적인 원인과 5명의 청소년의 심층 대화를 통해 보편성 있는 이유를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논문인 듯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학술적 느낌보다는 귀한 선배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기분이었고,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읽었다. 몰랐던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학생들을 이해하는 기쁨도 있었고, 초등학생을 연구 인터뷰하신 듯한데 고3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실상을 보고 있는지라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당장 내일 만나면 설명해주고 싶은 부분들이 많다. 



  "청소년들에게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모르겠어요'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경험은 표현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충분하지 못한 표현은 다시 감정을 선명하게 알아차리는 과정에 영향을 주어 점점 더 모호해지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은 표현하기 더욱더 어려워져 알렉시티미아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뇌변연계와 전전두엽 사이의 접촉 관계와 뇌의 발달 순서를 설명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살펴보건대  정말 서글프지만 학업성적과 자기표현능력. 즉 자신의 상태를 명료하게 알아차림과 관계가 높았다. 한걸음 더 나가면 가정의 경제적 상황과, 부모님의 양육태도가 또 이와 관계가 높다는 것이 참 서글픈 지점이다. 늘 생각하지만 국어교육의 의사소통능력 신장.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기능만 공교육 12년 동안 깊이 있게 연습시키고 훈련시켜주기만 해도 아이들의 마음의 병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그 텍스트가 문학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내가 만난 자해하는 아이들... 손톱을 물어뜯어서 열 손가락 손톱 주변에 늘 피가 맺혀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는데 일부러인지 실수인지 늘 얼굴이랑 팔 가득 고양이의 할퀸 자국을 달고 다녔다. 두 아이 다 몹시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 선생님과 이야기하면 유난히 긴장도가 높은 아이들. 그 피 맺힌 자국이 너무 가슴 아파.. 가만히 손을 잡아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단순히 손잡아주는 위로조차도 위험한 시대라 자해의 반복에서 이어지는 죽음에 대한 친밀화...


  3년 전에 정말 예상 밖의 아이들의 죽음을 경험했는데 두 아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고 한 친구는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는 생활 속에서 결국. 갈 곳이 없어 헤어진 여자 친구 집이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서 밤을 보내는 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아파트 아래로 몸을 던졌고, 한 친구는 지금도 눈에 선한 웃는 모습. 나에게 다가와 함께 문제를 풀던 모습. 문학작품 해석을 묻던 모습. 공책 가득 자신의 이야기와 꿈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간 아이였다. 한 여름 더운 날... 친구들을 위해 앞에 나와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던 우리 모두가 사랑하던 소년이었다. 교사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세상을 등지기 전날까지도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의 건강을 묻던 그런 소년이었다. 늘 그 애가 교실에서 '선생님 잘하고 계셔요'라는 눈빛을 보내주어서 더 씩씩하게 수업을 할 수 있었던 친구였다. 그러던 그 소년이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그저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그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두고...


  알렉시티미아. 감정표현 불능증의 병명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어원을 해석하자면 ‘영혼을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라고 한다.  공교육 12년 동안 만난 그 수많은 교사들이 가정에서 미처 다 채워주지 못한 곳을 채워주는 역할 중 가장 중요하게 역점을 주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의사소통능력 신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를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어떤 환경적 요인으로 정작 소통의 경험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고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건강한 소통을 잘 훈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나... 주위에 건강한 어른이 하나도 없는 절박한 가정상황이라면(경제적 요인이건. 양육자의 태도가 원인이건) 교실에서 만난 건강한 어른으로서의 교사가 그들의 소통의 물꼬를 열어주고. 네 영혼을 설명해 보렴이라고 마음껏 권해주었으면 좋겠다. 말과 글로, 놀이와 노래로, 운동과 산책과, 그림 그리기와 하염없이 수다 떨기와 만들기와 식물 가꾸기 동물 기르기 등으로...


  너는 너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어른을 만날 수 있고, 그런 다정한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 학교였으면 좋겠다고...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뾰족하게만 자기를 표현하는 학생들이었는데... 그래도 이제 3달 정도 지나면서 말끝의 비수가 많이 무뎌진 학생들을 만날 때 나는 기쁘다. 늘 낯설어하고 데면데면한 관계였는데 뜻밖에 글쓰기 시간에 툭, 진심을 전해줄 때 나는 기쁘다.  그런데 정말 자기 영혼을 표현할 단어가 무엇인지 몰라서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너무 마음 아프다. 우리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방치해도 좋은 것인지. 감정표현 불능이 되건 말건 좋은 대학 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거짓 진리에 우리 아이들이 다 시들어가고 더 단단하게 굳어져 가는 것을 이대로 두고 보아도 괜찮은 것인지 


  나는 날마다 나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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