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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un 02. 2021

모멸감

쓸모 많은 사회학 - 한국 사회를 지배한 모멸감을 꺼내 보이다


쓸모 많은 사회학 - 한국 사회를 지배한 모멸감을 꺼내 보이다.

- <모멸감>(김찬호.문학과지성사)을 읽고 / 박미정


김찬호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사회학자이다. 30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탐구한 [문화의 발견], 돈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돈의 인문학]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모멸감]은 ‘굴욕과 감정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책이다. 책은 우리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위험한 감정인 모멸감에 대해 다룬다. 과거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이기에 공감하며 책장을 부지런히 넘기게 된다. 저자의 눈을 통해 사회를 넓게 바라보면 모멸을 주는 우리가 보이고, 모멸감으로 고통받는 우리가 보인다. 


    최근 보복 살인, 보복 운전,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살인, 고객의 갑질 행태 등 흉흉한 사건이 자주 보도된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크게 분노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동기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의 이면에 모멸감이 존재한다고 본다. 모멸감은 타인에게서 모욕이나 경멸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모멸은 인간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을 크게 훼손시킨다. 자존감을 훼손당한 사람은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저자는 한국이 모멸감을 쉽게 주는 사회라고 말한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심보가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모멸을 주고받는 사회 안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오늘은 내가 갑이지만 내일은 을이 되어 누군가에게서 모멸을 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세 가지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일자리 창출, 불평등한 분배의 개선, 부동산 가격 안정 등 구조적 차원의 접근이다. 둘째는 특정한 기준으로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문화를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도록 바꾸는 문화적인 차원의 접근이다. 마지막은 모멸감을 당하지 않도록 개인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 즉 내면적인 힘을 키우는 일이다. 


    [모멸감]을 읽으면서 문득 이것이 사회학의 쓸모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사회학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해 준다. 개인의 삶과 사회․문화 구조가 맞닿은 지점을 조망하게 해 준다. 사회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이 또렷이 드러난다. 나와 너를 가르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나 보다 못하다 싶으면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내가 받은 모멸감을 더 약한 사람에게 분노로 퍼붓는 사람들. [모멸감]을 통해 우리는 한국인을 지배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모멸의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인용된 연구물, 영화, 문학 작품, 다양한 통계 자료는 나 또한 모멸 메커니즘의 일부일 수 있음을 생생하게 깨닫게 해 준다. ‘모멸감을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모멸을 넘어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세 가지 차원의 대안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쳐 아쉽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지배한 감정의 실체를 분석하고, 모멸의 메커니즘을 지적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모멸을 넘어 존엄한 삶,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책에 담긴 사유는 넓고 깊지만 읽어나가기 어렵지 않다. 인용한 문구나 사례들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들이라 낯설지 않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문체도 쉽게 읽힌다. 사회학의 쓸모가 궁금하다면, 모멸감이란 낱말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면, 한국인을 지배한 분노와 불안의 원인을 알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읽어보자. 당연시했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모멸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사회학의 쓸모를 깨닫게 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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