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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ul 01. 2021

마음

나란 인간의 모순을 조심스레 품다.

박미정 씀. 나스메 소세키 지음, 문학동네

  이 책은 1914년 4월부터 8월까지 일본 신문에 연재된 소세키의 글을 묶은 것이다. 책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선생님과 나>와 <부모님과 나>는 선생님을 동경하며 따르는 화자 ‘나’의 이야기이며, <선생님과 유서>는 선생님이 자살하기 전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글이며, 세 부분 중에서 분량이 가장 많다. 


  화자인 ‘나’는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와 대학을 다닌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난 후 선생님과 가까워지려 한다.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를 동경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뭔가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은 선생님 혼자만 알고 있다. 독자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 선생님 주변을 맴돌며 비밀에 한 발씩 다가간다. <선생님과 유서>에 이르러서야 선생님의 비밀이 밝혀진다. 


  선생님은 작은 아버지가 부모가 자신에게 남긴 재산을 탐내는 걸 보고, ‘돈 앞에서 누구나 악인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일로 선생님은 인간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보았을 거다. 그런 그가 친구 K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선생님은 친구 K의 고매한 인격을 존경하며 의리를 지키고자 애썼지만 불타오르는 사랑의 욕구를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친구 K가 자살한다. 이런 내용이 <선생님과 유서>에 담겼다. 


  제목처럼 이 책은 한 인간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은 본디 충동적이며 생물학적 욕구에 충실한 동물이다. 이런 인간이 사회화 과정(교육)을 통해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는 것을 배우고, 인류와 세계의 의미를 규정하는 다양한 사상과 신념을 익힌다. 겉보기에 더 우아해지고, 그럴싸해진다. ‘생각하는 동물’이 되어 다른 동물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킨다. 세상의 모든 일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선을 말하는 지식과 언어를 머리에 가득 담았으니 자신은 선한 존재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완전한 선일 수 있는 존재일까? 


  독자는 선생님을 통해 아이러니한 인간의 마음을 들여볼 수 있다. 그는 부유한 집 아들로 품위 있는 지식인이다. 그는 작은 아버지의 변심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실망을 느꼈다. 사랑 앞에서 친구와의 우정을 버리는 자신을 보면서 절망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자살로서 자신을 벌한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선생님의 마음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고, 이성이 감성을 벌하려다 감성에게 역풍을 당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선생님에게 연민을 느끼다가 나는 문득 내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렇다. 나 역시 이성과 감성,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미친 듯이 널뛰며 살고 있다. 알고 경험한 것이 많아질수록 본래의 내 모습(욕망하고 충동적이고 거친 나)을 억누르려 애쓴다. 타인을 향해 거침없이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렇게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다가도 내 안의 욕망을 어쩌지 못할 때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어마어마한 모순 덩어리다. K도, 선생님도 그 모순을 견디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실패했다. 그런 실패담이 화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화자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필 이 책을 읽어서,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버린 나는 어떻게 하나. 선생님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아서 쉽게 답을 할 수 없다. 책을 덮고 여러 날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이 선생님에게 머무른다. 나란 인간의 모순을 조심스레 가슴에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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