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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Sep 02. 2021

일곱 번째 노란 벤치

은영 / 비룡소

정기진 씀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이 평범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 느낀다.


  “그 온기 속에서 아이들이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아이들에게 온기를 주는 세상일까.


  교실을 가지고 얘기해본다면, 나 어릴 적 아침부터 나무와 조개탄을 배급받아 난로를 피우던 교실은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추웠다. 지금은 온풍기 버튼 하나면 금방 훈훈해진다.


  그때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선생님 명령이 법이었다. 지금 선생님들은 대체로 부드럽고 명령보다는 권유형 문장을 사용한다. 하지만 왠지, (과거가 아름다운 원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온기는 그때가 더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세상은 서늘하다. 냉기가 지배하는 세상이랄까. 아마 갈수록 더 그럴 것 같다. 


  그 이유를 ‘연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하는 이야기도 그것이다. 각각이던 존재들이 이어지면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작은 전구들처럼 하나하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깜빡깜빡. 그 깜빡임이 아름다운 책이다. 전류는 강하지 않고 빛의 세기도 별것 아니다. 하지만 불 꺼진 트리와 반짝이는 트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 전선이 연결되는 공간을 작가는 아주 감각적이고 예쁘게 설정해 놓았고, 그걸 제목으로 삼았다. <일곱 번째 노란 벤치> 


  이 책 1부의 제목은 평범한 수식이다. 4-2-1=1. 이 수식은 지금 지후의 상황을 알려준다. 지후네 4 식구 중 엄마 아빠는 바쁜 사정으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 그래서 남은 두 식구, 즉 할머니와 지후는 이 노란 벤치에 곧잘 오곤 했다. 지금은 지후 혼자 앉아있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셨기 때문. 


  하지만 지후는 이 노란 벤치에서 여러 존재들과 연결된다. 가장 먼저 봉수. 한쪽 눈 주변만 까매서 해적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마치 웃는 것 같은 표정으로 사람을 반기는 개다.


  다음은 해나. 겁 없고 당당한 태도로 지후를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렇게 멋진데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다고....


  그리고 할아버지. 길 잃은 봉수의 임시 보호자. 사연을 들어보니 봉수는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 동생의 이름.


  유모차 할머니. 유모차에 아기는 없다. 혼자 걷기 힘드셔서 유모차에 의지해 공원을 산책하신다.


  검은 모자 아저씨. 말없이 공원을 돌기만 해서 좀 무섭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알고 보니 아저씨라기보단 형이었고, 좀처럼 말을 하지 않게 된 사연은 참 슬프다. 가정에서 홀로 상처 받으며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지후네 아랫집 18층 아주머니. 지후가 사촌동생에게 마귀할멈이라 말할 정도로 못된 인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반전을 가진 인물. 


  그리고 악역도 한 명 있다. 그게 현실적이다. 세상엔 확률적으로 악인도 꽤 있으니까. 동물을 학대하는 아저씨. 그가 개들을 함부로 다루는 장면에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 마수가 봉수에게도 뻗치는데, 그때가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 하겠다.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노란 벤치의 풍경은 흐뭇하고 따스하며 안정감 있다. 4-2-1=1의 수식은 이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으셨지만 이 따스함의 근원은 마지막 1, 즉 할머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할머니의 보살핌, 그리고 지후를 재우며 나직이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확신에 찬 말씀이 지후를 지탱하고 서게 했다.


  “작고 여려 보이지만 속이 깊고 강한 아이야.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동안 바빴던 엄마는 돌아가신 할머니께 고마워하겠지만 이런 것까지는 모를 것이다. 이런 사랑을 주실 할머니들도 점점 줄어들어가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그 연결도 다 끊어져가는 사회니까 말이다. 


  귀찮음이냐 외로움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워낙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지 뭐.’라는 생각이 강했다. 요즘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아이들을 ‘1’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읽고 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연결을 끊어버리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잔인한 짓. 코로나로 이 단절은 더욱 심해지고만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이 책은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힘을 합쳐 독자들에게 온기를 보내주려고 애를 쓰는 느낌이다. 만화를 그리신다는 그림작가는 세상의 따스한 색을 모아 일곱 번째 노란 벤치와 그 주변의 정경을 그렸다. 가끔씩 들어있는 만화 페이지도 정겹고 재밌다. 


  이 책에는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들어있진 않지만 소소한 인물들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모여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담아냈다. 아이들과 함께 읽다 보면 각기 어떤 부분에 선가는 크게 공감할 것이다. 주인공 지후의 학년인 4학년, 그리고 에필로그에 나오는 1년 후 5학년 아이들 수준에 가장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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