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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Dec 31. 2021

엄마가 개가 되었어요

정기진 씀

김태호 동화집 · 장경혜 그림 / 서유재 / 2022

  김태호 작가님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제후의 선택>은 읽은 지 꽤 되었지만 단편집 중에서 아직도 손꼽고 있는 책이다. 이번에 인상적인 제목의 단편집이 또 나왔다. 역시 좋다. 간결한 문체 안에 담아놓은 감정들이 출렁거린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꽤 어렵기도 하다.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며, 머리로 해석하며 읽어야 할 작품이다.

  첫 작품 [초콜릿 샴푸]에선 설명서가 먼저 나온다. ‘천연 초콜릿 샴푸 만드는 법’이다. 그런데 앞부분만 조금 나오고 끊겨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뒤에 계속 나온다. 설명서와 이야기가 함께 가고 있다. 이런 구성들에서도 작가의 센스를 느낀다. 샴푸 만들기라는 소재도 그렇다. 작가가 이것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겠지.... 작가는 아는 것과 경험이 많을수록 좋겠구나, 소재를 포착하는 감이 뛰어나야겠구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소재 안에 흐르는 감정은 돌아가신 엄마(아내)에 대한 그리움..... 엄마 없이 남자들끼리 남은 집안에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채우기는 얼마나 힘들까? 눈물겹지만 그래도 절망적이진 않은 작품이어서 좋았다.


  두 번째 [요즘 자꾸 까먹는 일]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등장한다. 사고로 다리를 못쓰게 되어 휠체어를 타는 강주다. 강주가 휠체어를 탄 채로 농구 경기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농구의 감각을 갖고 있는 걸 보니 강주의 장애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까울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같은 반 친구들은 평범해 보인다. 강주를 끼워주고, 격려해주고 편들어준다. 다만 주장 격인 태하가.... 승부욕이 과하다 보니 졌을 때의 반응이 강주를 주눅 들게 만든다. 그리고 상대편 반 아이들은 아주 비겁하고 매너 없고 못됐다. 강주에게 상처가 퍼부어진 채로 경기는 끝났고, 아이들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까먹고 자기들끼리 교실로 들어오고.... 총체적인 난국이다. 강주는 서러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결말은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게 엄청 안도감을 주었다.


  세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엄마가 개가 되었어요]다. 제목에서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웃긴 이야기려나? 아니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아프고 괴로웠다. ‘개’가 되어가는 엄마는 이미 ‘개’인 아들을 채근하여 학교로 왔다. 학교 회의실이었다. 가만 보니.... 그건 학폭위였다.ㅠㅠ 아 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외면하면 안 된다.


  아들은 학폭 가해자의 위치로 그곳에 섰다. 아이는 친구들을 물어뜯었다고 한다. 폭력 맞다. 하지만 학폭에는 이런 경우가 정말 많다. 오래된 피해자가 그동안 참았던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되돌리고 단번에 가해자로 규정되는 일. 가해자로 여기저기 눈치 봐야 했던 부모가 피해자의 자리에 앉아 태도가 돌변하여 고래고래 다그치는 일. 저간의 사정보다도 규정에 따라야만 하는 무능한 학교, 불합리하지만 여간해선 고쳐지지 않는 규정..... 익히 들어봤던 일이라 더 얼굴이 뜨겁고 마음이 괴롭다.


  이 상황에서 엄마 혼자만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들을 대변하려 하다 남 탓만 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항변을 마친 엄마는 누구보다 가장 큰 잘못을 한 사람은 자신이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자신뿐 아이라 당신들 모두도 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짖음으로 울부짖는다. 엄마 말이 맞다. 아이가 고립될 때까지 살펴주지 못한 어른들, 고립된 친구를 불러주긴 커녕 사냥감처럼 괴롭힌 친구들, 때는 이때다 하고 심판대에 놓고 비난해대는 어른들, 모두 사과해야 한다. 물론 아이도 자신의 폭력을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저마다 눈감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상대를 가해자라 규정하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사과하면 그 프레임이 무너지기 때문에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자식에게도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인정’과 ‘사과’는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진흙탕 속을 뒹군다.ㅠㅠ


  [사냥의 시대]는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대충 읽었다가 엥? 무슨 얘기지? 하고 다시 읽었다. 배경은 지금보다 훨씬 뒤의 미래다. ‘돼지가 멸종한 지 50년도 더 지났다’고 하고 남북통일도 되어있는 걸 보면 말이다. 첨단 기계화된 도시에서 살던 빈이는 할아버지 동네에 와서 낯선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곳은 자동화되어있지 않으며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일구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빈이와 할아버지는 산속에서 돼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시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신다. 어느 날 마을로 내려온 돼지는 주민들에게 생포되고 어른들은 심각한 회의를 오랫동안 한다. 돼지가 불쌍해진 빈이는 도망시켜주려고 하지만 결국은....ㅠ


  빈이는 치명적으로 맛있는 고기를 씹으며 운다. 어린이 독자들은 여기서 ‘잔인하다’ ‘할아버지가 나쁘다’고 하기 쉬울 것 같다. ‘교훈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읽고서 나는 알아들었다.


인간이 욕심을 부릴수록 돼지가 아팠어.
살아있는 돼지들을 땅에 묻고, 또 묻고, 그래도 돼지들은 아팠지.
모두 사라져 버릴 만큼 너무 아팠던 거야.
우리 때문에 돼지들이 또 아프면 안 되잖아!

지구가 키워서 선물처럼 보내주면 우린 이제 사냥해서 잡아먹을 거야.


  이제 제목의 의미가 이해된다. 아, 우리는 이만큼의 시대를 거슬러야 하는 것인가. 거의 원시시대에 가깝도록?


너희들의 시대는 너희가 선택해서 만드는 거야.


  이 말씀을 잘 기억해두도록 하자. 강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보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바틀비]는 정말 애를 태우며 읽었다. 섬에 버려진 개 바틀비. 아마도 처음에는 미친 듯이 헤매며 주인을 찾고 기다렸을 것이다. 선착장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목을 빼고 주인이 내리나 살폈을 것이다. 얼마나 그걸 반복했을까. 이제 바틀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길 위에 죽은 듯 엎드려버렸고 그러다 풀숲으로 던져졌다. 안타깝게 보던 해찬이 다가가 말을 걸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찬이 할머니가 내뱉는 거친 말로 아이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지 새끼도 버리는데 개야 오죽하겠어!" 애태우며 바틀비를 보살피던 해찬이가 어느 날 육지로 나갔다. 이후 태풍이 불어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바틀비는 내리는 비와 함께 녹아들어 그대로 꺼져버리는 듯했다. 마지막이 가까워져 가는 순간에 바틀비는 해찬이를 떠올린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이 그토록 끈질긴가. 다시 찾은 해찬이가 발견한 것은 반쯤 썩은 시신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그런데.... 꼬리가, 꼬리가 움직였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개가 꼬리로 어떻게 말을 하는지. 울컥 눈물이 났다. 개야. 이제 함께 해라. 너와 같은 처지의 소년과. 이제 버려질 일 없을 거야. 해찬이가 용기 있게 살아가게 곁을 지켜줘.


  [산을 엎는 비틀 거인]은 폭력가정의 이야기다.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와 트집을 잡고 끝내는 밥상을 엎는다. 세상에 이런 남자들이 많다는 걸 난 꽤 나중에 알게 됐다. 못난 새끼들. 아껴줘야 할 가족들에게 오히려 분풀이하는 지질한 루저들. 분노가 인다. 엄마는 안 계신 것 같고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 할머니와 연우가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할머니는 연우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제목인 '산을 엎는 비틀 거인'이다. 잘 들어보면 이건 바로 '상을 엎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엔 희망이 있다. 연우는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작 그게 희망이라는 게 슬프지만.....


  여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좋아서 쓰다 보니 다 쓰게 되었네. 슬프고 외롭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상실을 경험했거나, 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버려졌거나, 결핍이나 장애를 갖고 있거나, 인간의 욕심 때문에 희생되었거나....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빛을 준다. 장경혜 그림작가의 노란 표지와 빛나는 햇살 또한 이런 공감 때문이지 않을까.


  찬찬히 읽고, 음미하고, 이야기 나눠볼 책 한 권을 더 소장하게 되어 든든하다. 무게감이 남다른 책이라 생각한다.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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