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만 아는 임원들의 계급사회

임원이라고 다 같은 임원은 아니었다

by 경아로운 생각


꿈을 꾸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짖다가 내 발을 물었다. 양말을 물고 이리저리 흔드는 것을 오래전 돌아가신 친척분이 데리고 어디론가 가셨다. 또 다른 꿈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이었다. 나는 죽어라 달리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발만 동동거렸다.


요사이 기분이 좋지 않은 꿈을 자주 꾼다. 꿈을 꾸면서도 이건 꿈일 뿐이니 빨리 깨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내 힘으로는 깰 수가 없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 해몽을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대부분 해석이 좋지 않았다. 평상시 꿈을 거의 꾸지 않는 편인데 희한하다. 나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일까? 예지몽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규 오픈 점에서 임원들이 모이는 날이다. 본격적인 고객 대상 오픈에 앞서 최종 점검을 하는 날로 오픈 준비를 위해 애쓴 임직원들을 치하하고 격려하는 의미가 있다. 나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지점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새로 모실 부서장이 가시는 자리였기에 불참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고민이 되었다. 막상 가면 어색하게 주변인처럼 있을 것이 뻔한데, 그 어색함과 뻘쭘함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임원들이 왜 왔냐고 물었다. 새로운 자리로 발령받았으면 안 와도 될 일을 굳이 멀리까지 올 필요가 있느냐 물었다. 업무 파악하기에도 바쁘지 않겠냐 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처가 되었다.


대표님을 따라 임원들이 지점 순회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맡은 파트가 없는데, 그런 자격으로 다른 임원들과 함께 대표님을 수행할 정도로의 뻔뻔함이 내겐 없었다. 또 하나,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담당했던 파트를 새롭게 임명된 다른 임원이 마치 본인의 업적처럼 브리핑하는 것을 볼 자신도 없었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전개 전반을 진두지휘 했건만 얼마 전 발령 이후 책임 소재가 달라진 것이다. 모든 것을 일순간에 바꿔버리는 발령이 갖는 막대한 힘에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지금껏 지점을 순회할 때면 대표님 뒷자리는 늘 내 자리였다. 지점장일 때도 그랬고, 구매담당 임원일 때도 그랬다. 내가 지점을 돌며 이런저런 설명을 드릴 때마다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는 대표님 모습에서 일의 고단함을 보상받곤 했었다. 불과 며칠 사이 달라진 나의 위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몇 임원들과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나눈 후 시계를 보니 겨우 십 분이 지났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더는 할 얘기도 없는데 앞으로 최소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이 걱정되었다. 영락없는 외톨이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자리에서 밀려난 나를 모두가 외면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주차장으로 갔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참아보라는 답이 왔다. 자신이 없었다.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이내 고인 눈물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터져 내렸다. 그 자리에 있을수록 나 자신이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나의 존재감이 여실히 드러날 것 같아 두려웠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상사가 오늘 일로 질타를 한다면 받으리라.


오는 중 오랜 친구에게 술을 청하였다. 술이 아니면 감정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는 매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없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에 감사하고, 라이트가 잠시 다른 곳을 비추고 있는 동안 나를 더 갈고닦으라고 했다. 라이트는 한 곳에 멈추어 있지 않고 가끔 무대 전체를 돌아가며 비출 테니, 그때 지나가던 라이트가 내게 멈출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다. 친구의 위로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밤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허함이 느껴졌다. 며칠 전 먹다 남은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밥 두 그릇, 달걀프라이 세 개, 단팥빵 한 개, 오렌지 주스 석 잔을 먹어 치웠다. 힘이 났다. 아니 힘을 냈다.


앞으로 1년이라는 시간을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일도 열심히 하여 나를 재신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발령이 나에 대한 오판이었음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럴 일 없겠지만 잡더라도 이젠 내가 싫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는 꼭 오라 하지 않는 자리가 아니고서는 가지도 않을 것이다. 가봐야 내 감정이 허비되어 흔들리느니 차라리 욕 한 번 먹고 말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나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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