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던 메일이 뚝 끊겼다
오늘쯤이면 나의 발령을 대부분의 협력회사가 알 텐데, 연락을 준 사람은 고작 6명이다. 그동안 간이라도 빼줄 듯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던 협력사들은 연락이 없고, 오히려 나 때문에 섭섭했었을 수 있었을 의외의 분들이 안부 문자를 주셨다.
언젠가 들은 이미 퇴직한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회사를 그만두었더니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과의 연락이 대부분 끊겼다며 서운하다고 했었다. 또 어느 책에선가 본 대기업 인사 책임자의 글도 떠올랐다. 작은 회사로 이직하고 나니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람들이 큰 폭으로 줄었다며 역시 서운하다던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하여 떠난 후에도 과거의 인연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아 모자라 보이기까지 했었다.
“어휴, 심심하다고 놀아달라시네”
출근 후 눈이 벌겋게 충혈된 동료들이 지난밤 술자리를 떠벌리듯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회사를 다녀온 엄마·아빠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며 칭얼거리는듯한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간적 여유가 많은 퇴직한 임원들이 함께 근무했던 후배들에게 저녁이나 먹자고 여러 차례 청해 마지못해 함께 했다는 내용이었다. 퇴직 임원의 최근 동향이 별 것 없다 싶으면 우쭐거림이 심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두 가지 마음이 들었었다.
회사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는 정말 부질없구나. 그래도 한때 모시던 상사인데 어떻게 가벼운 흡연실 뒷담화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 함께 있을 때는 무엇이든 충성할 것처럼 행동했으면서 어떻게 한 차례 저녁 식사로 본인이 관계의 갑이 된 양 말할 수 있을까. 마지못해 만나준 것처럼 말하는, 그래도 한때 후배들의 철딱서니 없는 모습이 실망스러웠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떠나면 절대 후배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었다. 함께 있을 때는 예의 넘치게 행동하다가 다음 날 나의 일상이 난도질당할 일이 뻔했다. 나와 함께 했던 후배들만큼은 나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이 궁금하다고 넌지시 물어보는 일도, 내가 새롭게 시작하게 될 또 다른 일에 대한 부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나의 생활도 지난 선배 임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 날 후배들의 가십거리로 전락할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막상 내가 비슷한 처지가 되고 보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완전한 퇴직도 아니고 임원의 중심 자리에서 밀려났을 뿐인데 주변의 반응이 이렇다면, 정작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는 어떨지 상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내 본모습과의 관계는 아니다. 회사가 부여한 직급이나 직책과 맺어지는 관계이다. 그 말은 언제든 그 자리를 떠날 때 그로 이어진 모든 관계를 내려놓아야 함을 의미한다. 퇴직에 앞서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나의 감투를 원했던 것이다. 서운해하지 말고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소수의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로운 자리로 옮긴 후에는 통합으로 참석하는 미팅도 거의 없고, 업무 관련 메일도 거의 오지 않는다. 지난주 사내 통신망을 통해서 받은 메일은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한 형식적 알람 메일 한 통이 고작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의 메일은 늘 넘쳐 났었다. 대표님께서 주재하시는 회의 참석 안내, 협업 부서의 업무 요청, 차기 시즌 품평회 일정 공유 등, 매일 쏟아지는 한 화면을 벗어나는 메일 양이 나에 대한 회사의 기대를 짐작게 했었다. 메일을 읽을 때마다 나는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추켜세웠었다.
최근에 내가 맞는 상황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잘할 수 있는데, 이제는 내려놓으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미 이 회사에서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1년의 시간은 남았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일 뿐, 이미 도태되었을 수도 있다. 잘 포장되어 있는 최상품처럼 보이지만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다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 포장을 벗겨내면 사용도가 떨어져,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실망스러운 명절 선물세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저 여기 4년 있었는데, 상무님까지 상무님만 네 번이 바뀌셨어요. 일 년에 한 번씩.”
점심을 먹으며 후배가 했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의 내 자리가 암묵적인 임원의 퇴직 전 마지막 관문임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