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임원이 혼밥을 하다 울음을 터뜨린 이유
“사장님, 여기 돈가스 스페셜 정식 한 개요”
저녁 식사 무렵, 혼자 들어간 돈가스 전문점에서 제일 크고 비싼 메뉴를 주문했다. 배가 고픈 것을 감안하더라도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잠시 뒤, 테이블 위에 놓여진 돈가스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건강 회복을 위해 계약직 상담직원으로 근무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생각보다 나의 몸은 잘 견뎌주고 있었다. 처음과 달리 출퇴근 버스에 장시간 서 있어도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았으며, 계단 손잡이 없이도 근무하는 3층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퇴근 시 바깥 쓰레기장까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갈 때 살짝 복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기에 이 또한 견딜 만했다.
평일엔 오후 2시부터,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6시간씩이 나의 근무 시간이었다. 시간제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약속된 근무 시간 동안에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가끔 에너지가 떨어져 단것이 먹고 싶어지면 초콜릿 몇 알로, 전화 통화를 많이 해 허기가 느껴지면 비스킷 몇 조각으로 힘을 내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울리는 전화벨에 마음이 급해졌다. 오픈 전 냉장고에 음료도 채워야 하고, 얼룩진 거울과 현관문도 닦아야 하는데 전화까지 받으려니 정신이 없었다. 간신히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휴대전화를 잡고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쌤, 식사하세요”
함께 근무하는 직원이 스텝 사무실에 점심을 마련해 두었으니 같이 먹자 하였다. 수년째 근무하고 있던 직영사원으로 잦은 질문에도 찡그리지 않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네~” 아침부터의 분주함 때문에 기력이 없던 상황이라 여느 때 보다 신나서 대답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도시락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메뉴가 달랐다. 사각 투명 뚜껑을 통해 보여지는 도시락 하나는 돈가스였고, 그 옆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머지 하나는 김밥이었다.
‘무얼 먹어야 하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같이 먹을 직원이 돈가스로 보이는 도시락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뚜껑을 열었다. “같은 것 시키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장은 내가 들으라는 것 같았다. 남은 도시락을 내 앞쪽으로 끌어당기는데 마음이 상했다. 사람에 따라 달리 차려지는 점심상에 적잖이 당황도 되었다.
“쌤, 돈가스 한 조각 드릴까요?” 혼자 먹기에 민망했던지 직원이 젓가락으로 돈가스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저 돈가스 별로 안 좋아해요” 굳이 묻지도 않은 대답까지 하는데 목이 막혔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배가 고팠었는데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미 차갑게 식은 김밥의 속 재료들이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먼저 일어날게요. 맛있게 드세요” 나는 김밥의 반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았다. “왜요? 배 안 고프세요?” 직원이 미안했던 건지 아니면 걱정이 되었던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침 먹은 게 아직 소화가 안 돼서요”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며 남은 식사자리를 정리했다.
평상시 김밥을 좋아하긴 했었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 바쁘게 일하느라 끼니를 놓쳤거나. 마라톤 회의를 하며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김밥만 한 것은 없었다. 한 줄로도 배가 든든히 채워지고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해주니 바쁜 나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메뉴였다. 밥 먹는 시간까지 아끼려 김밥을 먹는 내가 기특하게 생각되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퇴직 후에 먹는 김밥은 달랐다.
회사 다닐 때 먹었던 김밥이 열심히 일하는 나의 상징과도 같았다면, 퇴직 후 계약직 상담직원으로 먹는 김밥은 험난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주문한 돈가스를 다 먹지 못했다.
온종일 먹은 것이라곤 김밥 몇 개가 전부인 탓에 첫 조각을 삼키자마자 배가 아파왔다. 함께 나온 된장국으로 속을 달래 보았지만, 점점 더 꼬이는 듯한 복통을 막을 수는 없었다. 끈적거리는 목메임도 이유였다. 돈가스 조각과 눈물이 뒤엉켜 제대로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오후 내내 상한 마음을 달래며 퇴근하면 돈가스부터 실컷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니 속이 상했다.
내가 주문했던 것은 돈가스가 아니라 나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먹지도 못할 과한 양을 시킨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호기였을 것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흔들리며 상처받는 내가 안쓰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