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임원 이야기의 불씨가 살아나기를
어릴 적 장래 희망이 아나운서였다. 텔레비전에서 차분히 뉴스를 읽어 내려가는 아나운서의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 꿈은 거울 앞에서 혼자 말연습을 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국사 시간에 역사적 교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중학생 시절을 지나 어려운 계약을 거뜬히 따내는 직장인이 되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말은 내게 있어 취미였고 특기였다.
임원이 되어 나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자 말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상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이해관계 부서와의 의견 조율을 무사히 마칠 때마다 말이야말로 나를 빛나게 하는 가장 나다운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말의 힘을 맹신하였다.
그랬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백일 남짓이다.
퇴직 후 3번의 이별과 3번의 실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닥친 고통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의논할 선배도, 현실적인 고민을 나눌 동료도 없었기에 삶의 방향성마저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거나하게 취해 한바탕 울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을 알기에 그저 혼자서 속을 다스려야 했다.
그런 마음을 메모지에 적었다.
우연찮게 그 글을 후배가 보았고, 후배는 무언가 찡하다며 브런치를 권하였다. 글에는 취미가 없던 터라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무엇이라도 잡고 싶은 생각이 들어 되물었다. ‘브런치?’ 후배의 친절한 설명뒤 얼마 후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과연 내 글을 사람들이 볼까?'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상처만 입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퇴직 후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 가운데 무모한 도전으로 실망 하나만을 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무라거나 지루해하지 않는 믿음직스런 친구, 그런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글을 쓰고 나면 말과는 또 다른 차원의 후련함이 느껴졌다. 나는 더욱 솔직하고 진심을 담아 글과 마주했고 글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점차 변하여 갔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공감과 위로를 해주셨다. 퇴직 후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나에게, 세상을 향해 메아리 없는 함성을 외치고 있는 것만 같은 나에게 힘을 내라 말씀해 주셨다.
결과를 이루려면 무엇이든 5년은 해야 한다는 인생 선배님, 떠밀리듯 회사를 나왔지만 함께 이겨내 보자는 인생 동료분, 곧 닥칠 퇴직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인생 후배. 어느 때는 훌쩍거리며, 또 어느 때는 아파하며 그분들과 마음을 나누다 보니 힘이 나고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퇴직 후 내가 겪었던 일들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 그를 통해,
여전히 고군분투하실 앞서 퇴직한 분들께는 포기하지 마시라 말씀드리고 싶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 퇴직자들에게는 서로 격려하며 견뎌내자 말하고 싶고, 언젠가 퇴직을 겪을 분들께는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이니 더욱 힘을 내라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퇴직이라는 그 누구도 미리 경험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거대한 장애물을 함께 이겨내고 싶다. 퇴직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내가 받은 감사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어 힘을 보태고 싶다.
나는 글의 힘을 믿는다.
그중에서도 진심이 담긴, 솔직한 글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