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500원짜리 붕어빵의 의미
‘이상하다. 무슨 일 있으신가?’
며칠째 안 보이셨다. 계셔야 하는 자리를 작은 트럭이 막고 서 있기도 했다. 전에 없던 상황이라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와~ 오셨다~!’
드디어 나오신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달려갔다. 요 근래 그토록 내가 기다렸던 분은 지하철역 사거리 앞에서 붕어빵을 파시는 할머니였다.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는데 계신 곳에 가까워질수록 누군지 모를 할아버지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생각처럼 리어카 안에 할머니가 계셨다. 여전히 작은 체구로 붕어빵 빵틀을 뒤집는 중이셨다. 내가 발끝을 올리지 않으면 빵 매대에 가려 잘 보이시지 않을 정도였다. ‘촤랑촤랑’ 뒤집혀지는 빵틀의 쇳소리가 어느 때보다 신나고 경쾌했다. ‘누구지?’ 평소와 달리 할머니께서는 젊은 여자분과 함께 계셨다. 궁금했던 차였는데 나를 재촉하게 만든 할아버지를 통해 할머니의 따님임을 알게 되었다.
“딸~!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어머니 방해하지 마!!” 손님으로 보이시는 할아버지는 할머니 따님에게 화난 듯 호통을 치고 계셨다. 딸은 풀이 죽은 표정인 데 반해 할머니의 표정은 당당해 보이셔서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호통은 계속되었다. “내가 팔십일곱이야. 내 친구들 다 가고 몇 안 남았어. 그나마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나 하나야. 일을 해야 사람이 살아.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어머니 기다리는지 알아?” 할아버지께서 말끝에 나를 쳐다보셨다. 당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시는 것 같았다. 눈치는 챘지만 휴대폰을 보는 척 고개를 밑으로 떨구었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의사 선생님이 찬 바람맞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이번엔 딸이 말했다. “또 쓰러지시면 안 돼요” 지지 않으려는 듯한 딸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에게 힘을 얻은 듯 바로 받아치셨다. “내가 괜찮다니까~ 내가~! 나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가 쓰러져도 나와야지~! 내가 행복하다고~ 내가~!” 예전에 붕어빵 몇 마리 줄까 물으셨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힘 있는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할머니께서 오랫동안 나오시지 못했던 이유는 뇌출혈로 쓰러지신 탓이었다. 의사가 찬바람 맞는 노점 장사는 안된다 만류했지만, 할머니는 고집 내어 나오셨고 엄마를 꺾지 못한 딸이 어쩔 수 없이 함께 나왔던 것이었다. 큰소리치셨던 할아버지는 나처럼 할머니를 오래 기다리셨던 손님으로, 당신의 상황을 빗대어 딸에게 할머니 편을 들어주셨던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가시자 딸은 나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버거웠지만, 나만큼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할머니 역시도 내가 힘이 되어주길 바라시는 듯 이전의 내용을 똑같이 말씀하셨다. 매번 다른 손님이 올 때마다 티격태격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 짐작되었다.
할머니의 마음도 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한 편을 들어드리는 대신 “할머니를 저도 기다리긴 했어요. 그러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할머니의 빵틀이 더 힘차게 돌아갔다. 내게 주실 붕어빵을 담으시는 걸 보니 두 개는 지느러미가 까맣게 타 있었고, 두 개는 흰색 밀가루가 배 부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할머니께서 딸과 입씨름하는 동안 적당히 구워내는 것은 어려우셨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오시고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붕어빵을 받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났다. 할머니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할머니는 붕어빵을 파시면서 당신의 존재감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계셨던 것이었다. 겨울엔 붕어빵으로 여름엔 옥수수로 할머니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셨다. 몇 달 전 한여름 그 더위에도 ‘찐 옥수수’라고 굵은 매직으로 적힌 아이스박스 앞에 땀을 흘리며 앉아 계셨었다. 지나가다 덥지 않으시냐 여쭈면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 나올 수 없다’ 시며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셨었다.
할머니를 통해 퇴직 후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나의 존재감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해주고 나 또한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곳, 나는 여전히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자리, 그것이었다.
퇴직 후 나는 거대한 호수 위에 떠 있는 한 방울의 기름처럼 느껴진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이 사회의 이방인처럼 생각되어진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하나로 뭉쳐져 있으면서 내게는 마음 둘 곳 한 뼘, 자리할 빈틈조차 내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둥둥 떠다니는 내 몸이 잘게 부서진다 하더라도 호수 속 그들과 섞이고만 싶다.
부디 할머니께서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할머니께 따뜻한 담요를 가져다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