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에도 비즈니스석을 생각하는 이유
그날은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열차로 공항까지 오는 동안 거리에서는 차들을 볼 수 없었다. 희미한 불빛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는 해도 그것이 차인 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이 온통 뿌옇게만 보였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장까지 찾아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안내판이 곳곳에 있을텐데 잘 보이지 않아 같은 길을 여러 번 되돌아가야 했다.
업무차 영국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 뿌연 안개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 탐정소설을 보며 연상했던 스산한 분위기가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듯했다. 낮이 되어도 해를 볼 수 없었고 추위에 으스스한 기운마저 느껴져 도통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한 도시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걱정이 앞섰다. 처음 타는 국내선도 부담이었지만, 무엇보다 안갯속에서 비행기가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근심 가득한 상태에서 출국장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안내가 있었다. 게이트를 여러 차례 확인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나의 자리는 항공기 끝부분 창가 쪽 좌석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의자가 비좁아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한 시간만 참자’ 겨우 몸을 피해 들어가 앉아 좌석벨트를 매었다.
출발 시각이 가까워 오는데도 분위기가 조용했다. 이륙 전의 부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은 순간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륙이 지연된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곧 떠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시간은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던 승객들도 점차 불평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시간.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 3시간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가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몇 번 편안한 숨을 쉬었다가 숨이 가빠져 크게 호흡하는 것을 반복, 그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로 빼곡하여 산소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고통에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면 옆자리 남성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함께 쓰는 팔걸이에 둔탁한 팔을 걸쳐 놓은 것도 참고 있건만, 나의 뒤척거림이 몹시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점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나의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제발 비행기에서 내리게 해달라고 애원하려 해도, 도움을 청할 상황도 아니었고 대상도 없었기에 버텨 낼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그 후 나는 비행기를 잘 타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늘 두려움부터 앞선다. 비행기 티켓팅부터 시작하여 수속을 밟는 모든 과정이 힘겹게 느껴진다. 언젠가 증상이 한창 심했을 때는 극심한 공포로 출발직전에 탑승을 취소한 적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어려움은 나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름의 방법으로 지나왔지만,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퇴직 후 이러한 증세는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마음이 울적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이내 포기하게 된다. 마음처럼 움직일 수 없으니 내가 정말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부족함이 그 부족함이 아닐진대 나는 무엇하나 온전한 구석이 없다는 생각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
“방법이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약물은 습관성이 될 수 있으니….”
이어지는 의사의 설명에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병원을 나왔다.
결국,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
30년 직장생활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나를 가두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나 스스로 훨훨 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