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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Nov 03. 2023

회사를 떠난 후 가장 후회되는 한 가지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이것이 필요했다


“질문 있으십니까?” 강사가 물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백만 가지 생각들이 빠르게 오고 갔다. 손을 들까 말까,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강사는 고작 질문이 있느냐는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 말에 내 머릿속은 다시 한번 뒤죽박죽이 되었다.     


학원에 다닌 지 두 달이 지났다.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수업을 들으려니 다니기 전부터 흥분이 되었다. 홈페이지에서 보여지는 구석구석 모습도 마음에 들었고, 수강생의 후기도 믿음이 가서 결정을 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상담원에게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클래스를 원한다고 말했는데, 다행히 한 자리 남았다는 답변을 들어 스스로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등록한 학원은 영상편집 학원이었다. 회사를 나오기 얼마 전, 상사분께 SNS를 해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는데 그 자리에서 안 된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시작하려는 이유가 내가 맡은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지만, 단칼에 자르시는 모습에 더는 말씀드리지 못하고 뜻을 접고 말았다. 아마도 회사 입장에서 이런저런 걱정이 되시는 듯 보였다. 아쉬운 마음은 들었지만, 상사의 입장도 이해가 가기에 함께 가지고 간 다른 안건만 보고 드리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회사를 나오면 SNS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퇴직을 하자마자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모든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외출 자체가 쉽지 않았고 하더라도 온갖 조심은 다 해야 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집에만 박혀 지낼 수도 없는 일,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감염도 불사하고 학원을 등록하였다.      


시작은 좋았다. 수업 첫날, 일찍 집을 나선 덕에 가장 먼저 학원에 도착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문가 좌석에도 앉을 수 있었다. 책상의 3면에 투명 아크릴판이 설치된 것도 안심이 되었다. ‘출발이 좋네’ 잠시 생각했지만, 곧바로 나의 멘탈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선은 컴퓨터를 켜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있어야 할 자리인데, 전원 버튼을 찾을 수가 없었다. 회사 다니는 동안 늘 같은 컴퓨터만 썼던 터라 본체 자체가 아예 낯설었다. ‘어딨지?’ 허둥대며 찾으려니 짧은 순간 머리가 하얘지며 식은땀이 났다. 그사이 다른 수강생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손까지 떨렸다. ‘찾았다!’ 다행히 전원을 켜고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당최 학원 강사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는 왜 그리 섞어 쓰는지, 이거 원, 일단 들은 영어를 머릿속에서 우리말로 바꿔서 이해하려니 시간이 배가 걸렸다. 설명 쫓아가랴, 컴퓨터 조작하랴, 하나하나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들은 진도를 잘 따라가는 것 같아서 대놓고 질문을 하기도 주저되었다.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 수업 중 강사가 질문 있냐 물으면, 주변 눈치를 살피며 손을 들까말까를 고민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런 상황은 학원에 다니는 내내 내내 지속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잠시 쉬는 시간에 강사에게 질문을 해 보았지만, 내가 답을 듣고 이해까지 하기에 그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나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가끔은 강사가 나를 피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도는 훌쩍 나가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은 점점 쌓여만 가고, 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수강생들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확실히 느껴졌다. 이러려고 학원을 등록했나. 결국 학원 과정이 종료되는 시점에 내가 할 줄 아는 사용법이라고는, 영상에 아주 간단한 글자를 넣는 정도였다.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가슴을 치며 후회했던 점이 있다. 대체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뭘 한 걸까. 거창하게 특별한 준비는 못 했을망정 변화에 맞춰 필요한 컴퓨터 활용법은 왜 익혀두지 않았을까. 나는 그동안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로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나름 관리자 중에 나 이상 보고서를 잘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회사에서 사용했던 프로그램은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말이나 글처럼, 누구나 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수단이었다. 직장인으로 오래 사는 동안 세상의 신문물과는 담을 쌓는 구닥다리 인간이 돼 가고 있음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     

  

내가 다시 직장인 시절로 돌아간다면, 최대한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힐 것이다. 내 생각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은 무조건 공부할 것이다. 그랬다면 퇴직 후 학원에 다니며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위축되는 일은 덜 했을 것 같다. 부담스러운 지출 끝에 얻게 되는 지식이 겨우 초보적인 수준에서 머물지도 않았을 듯하다. 무엇보다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그나마의 기회를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 같다.      


언젠가 회사를 나온 후 알게 된 강사 하나가, 퇴직 직후 내가 기관에 보냈던 나의 제안서를 보고 놀라하던 적이 있다. 그때 강사는, 이런 제안서는 세상 처음 본다며, 이 수준이면 내용이 읽혀지지도 않고 바로 버려졌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이 상처가 되었지만, 내가 퇴직 후 길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버둥거린 이유를 알 것 같아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처음부터 워드, 엑셀을 잘하지 못했다. 사수에게 혼나고 배우며 반복해서 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하게 된 것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지켜내며 험난한 여정을 지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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