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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Oct 23. 2023

어느 대기업 과장의 내 집 마련 도전기

두고두고 발목 잡는 그 시절 그 순간


때아닌 비로 외출을 뒤로하고 집안 정리를 하였다. 주말마다 몰아서 청소하던 습관은 회사를 떠나고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빨래며 설거지를 미뤄둘 수밖에 없다고 했었던 말이 모두 핑계였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은 베란다 벽장이었다. 잘 쓰지 않는 물건을 대충 몰아두는 장소라 열기 전에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 그 안에 있을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발견한 오래된 납부 고지서, ‘에휴….’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기가 막힌 게 있는데, 들어 볼래?” 내가 과장 시절이었던 어느 날, 간만에 동창을 만난 자리에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사방팔방 모르는 사람 없고 발이 넓어 학창 시절부터 별명이 마당발이었다. 늘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의 은밀한 뒷얘기를 들려준다거나 생전 처음 듣는 별천지 정보들을 알려주어 친구가 입을 열면 항상 솔깃해서 듣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하던 식사를 멈추고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 순간이 이후 오래도록 나를 올무로 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자신의 지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 지인은 속칭 돈이 될 부동산 물건을 찾아내는 귀재라고 했다. 찍어주는 족족 몇 년 안에 몇 배의 수익이 나는 통에, 이득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며 본인도 얼마 전 작은 주택을 추천받아 구입할까 고민 중인데 혹시 나도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 들으려니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때마침 살고 있던 집의 전세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집주인이 나가라고 한 터라 염려가 태산인 상황이었다. 집주인의 아들이 결혼하는데 왜 그 영향이 나에게까지 오는 것인지, 이사 비용을 쳐준다고는 했으나 대책 없이 나앉게 된 처지가 서글퍼서 꼭 집 장만을 하리라 마음먹던 차였다.   

   

친구는 내가 관심을 보이자 곧바로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리하면, 서울 끝자락에 작은 주택이 하나 있는데 주인이 사정상 급매물로 내놓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했다. 서울에 개발이 되지 않을 땅은 없다며 일단 사두기만 하면 직접 들어가 살기도 세를 주기도 좋을 거라고 했다. 그리 좋은 정보가 나에게까지 들어올 리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설마 친구가 내게 거짓말을 할까 싶은 생각에 점점 욕심이 생겼다.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모든 절차는 중개인이 알아서 해준다는 말도 매력적으로 들렸고, 무엇보다 내 집 장만에 대한 마음이 컸던지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계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뿔싸. 잔금을 치르자마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덜컥 계약을 한 집은 아직 허가가 나지 않은 주택이었다. 나는 중개인이 하라는 대로 필요한 서류를 가져다주고 계좌로 송금을 했을 뿐인데, 이 무슨 날벼락같은 일인가 싶었다. 의심도 걱정도 하지 말라는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일이 잘못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친구에게 물으니, 친구는 한 발 빼며 중개인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개인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여러 번 찾아간 끝에 겨우 통화가 되었지만 더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되었다.      


이후 허가 없는 주택과의 전쟁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라에서는 범칙금 고지서를 시도 때도 없이 보내왔고, 살고 있는 세입자는 갑자기 이사를 간다고 했으며, 나는 매입한 주택과 차로 두 시간 거리의 먼 지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한꺼번에 걱정이 몰아치는 통에 어찌할 바 모르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눈에 보이는 손실은 그렇다 쳐도, 무엇보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법을 따르지 않는 파렴치한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벌금을 납부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한순간의 판단이 그리 오랜 시간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일이 진정되기까지 이후로도 한동안 그 때문에 많은 일이 꼬여 골머리를 앓았다.      


‘아, 정말….’ 당시에 냈던 고지서를 다시 보려니 속이 쓰렸다. 다시 생각해도 뭔가에 홀리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까운 지인에게 이 일을 말하면 대개는 내가, 동창과 중개인에게 한꺼번에 속임을 당한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동창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동창은 그저 순수한 마음에 나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려 했으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인해 나만큼 당황했을 거라 믿고 있다. 속상하긴 해도, 어리석은 판단을 한 사람은 나였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다시 직장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주변에 난무하는 카더라 정보에 현혹당하지 않을 것이다. 워낙 귀가 얇기도 하고, 뭐든 마음만 먹으면 빠른 시간내에 행동을 하는 성격이기에 자칫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귀를 닫을 것이다. 또한, 노력 없는 헛된 욕심은 버리고 소소하지만 알찬 내실을 기하며 제대로 된 길을 따져보며 걸을 것이다. 영원토록 직장생활을 할 것으로 착각했던 30대 호기 넘치던 시절의 설익은 판단은, 퇴직자가 되고 나니 더 큰 후회로 느껴진다.     

 

과연 내게 퇴직할 자격이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벽장 안에 수북이 쌓인 고지서를 쓰레기통에 담았다. 여전한 의문속에 아쉬움과 속상함까지, 나의 첫 내 집 장만의 뼈아픈 기억도 모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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