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후 빈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늘 엄마가 집에 계셨던 덕분에 나는 이런 빈틈없는 스케줄 속에 살지 않아도 되었다.
MBTI로 설명하자면 I 성향이 아주 강한 나는 하루 종일 밖에 있으라고 하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첫째는 엄마를 닮지 않아 확신의 E 성향이라 유치원도 태권도도 즐겁게 잘 다닌다.
그런데 이런 첫째도 주말이면 집돌이가 된다. 평일에 하지 못했던 여가활동, TV를 보고, 닌텐도를 하고, 종이접기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느라 바빠 외출하는 것을 싫어한다. "왜 주말은 이틀밖에 없냐"며 투덜대는 모습을 보면 너도 하루 종일 밖에 있느라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해지기도 한다.
퇴사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둘째 육아 휴식을 끝내고 복직을 앞두었을 때는 진지하게 일을 그만둘까 고민을 했었다. 아이가 둘이 되었고, 첫째 때와 달리 남편은 더 바빠져 육아에 충분히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등하원 도우미도 생각해 봤지만, 활발하고 고집 센 아들 둘을 맡아줄 도우미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설령 구한다 해도 내 월급의 대부분이 도우미 비용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일을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와서 박혔다. 장거리 출퇴근으로 내 몸도 많이 지쳐있던 터라 퇴사라는 선택지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니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일을 하고 있을까.
첫 번째 떠올린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작고 소중한' 월급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했다.
휴직을 하며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지니 지갑도, 마음도 쪼그라들었다. 갚아야 할 대출도 있고, 생활비와 사교육비는 점점 늘어날 텐데.. 돈을 벌어도 모자랄 상황에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지금은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고 살림도 하고 있으니 당당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와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작은 돈이라도 '돈을 번다'는 핑계로 살림과 육아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두 번째로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아이들을 키운 뒤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본다는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도 있었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냥 다시 일을 하러 가고 싶었다. 힘들다 투덜대며 다녔지만, 일을 하면서 보람찼던 순간도 많았고, 경력이 쌓이며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을 느꼈던 때도 있었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출근할 때의 느꼈던 묘한 해방감, 동료들과 커피 한잔 나누며 떨었던 수다도 즐거웠다.
여기서 놓아버린다고 생각하니 '더 해보고 싶은데',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때 확신했던 것 같다. 일 하러 가야겠다고.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건 진심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의 존재와 정돈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컸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는 삶은 나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나는 매일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복직을 선택했다.
앞으로 돌봄 공백이 더 많아질 수 있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출근을 결심했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
지금은 엄마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서운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그때 일을 계속해서 다행이었다고 이해해 주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