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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균 Jan 20. 2017

큰딸의 생리가 시작되었다.

성에 대한 아빠의 생각

지나치리 만큼 성에 대한 폐쇄성을 갖고 있는 우리가 한 참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신체에 대해 잘 알게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다. 


돌이켜 보면, 난 초등학교 6학년 무릅 처음으로 자위행위를 한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이성에 대한 애욕의 행위가 아닌 그저 바닥에 고추를 비빌때 알수없는 야릇한 쾌감이 머리로 전달하고 그런 행위가 지속될수록 하얀 분비물이 분수처름 터져 나와 화장지를 대거 사용한 경험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을 알고 난 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몰래 나만의 의식으로 자리잡아 갔고 숨어서 하는 나의 행위가 왠지 죄의식을 동반하게 만들었다. 이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는 그런 시기였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남자들이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그들의 최초 성적 경험은 나와는 조금 다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처름 막내이면서 누나가 있던 꼬맹이들은 조금 특이한 누나로 부터 성적 경험 또한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억컨데 내 누이가 내 고추를 잡고 약간의 장난을 친것이 초등학교 5학년인지 6학년인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지만, 공포의 질감은 끔찍하리만큼 확연했다.  어찌보면 별것 아니였지만 내 기억이 나쁘게 기억할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오랜 시간 그 겨울에 벌어진 일은 충격과 기피로 이어졌다. 


출처 : 비룡소

아이들이 나에게 "섹스가 뭔데?" 라고 묻는다면 
"키스하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다."
라고 난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장황한 설명을 덧붙일 것이다.

"섹스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자신도 즐겁기 위해서 몸으로 함께하는 행동 중 하나야. 잘 성장한 성기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신체의 중요하고 은밀한 부분을 보이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불쾌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를 잘 배려해서 해야 하는 행동이야.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느낌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해. 남자랑 여자랑 할 때도 있고 여자랑 여자가 할 때도 있고 남자랑 남자가 할 때도 있는데, 책임감이 많이 따르는 행동이라서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그 의미를 알고 배워야 하는 일이야. 즐거움에는 보통 책임이 따라. 그리고 상대방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면 그건 상대방에 대한 일정한 책임까지 떠안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섹스에는 감정과 몸이 개입되는 거고 그로 인해 나도 상대방도 감정과 몸의 변화를 겪게 되니까. 그 변화란 건, 우리가 죄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더 조심스러운 거고. 엄마랑 아빠는 함께 소중한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정성껏 섹스를 한 뒤 너희들을 얻었어. 섹스는 그만큼 대단한 일이기도 해. 하지만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에 관한 책임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임까지 안을 수 있는 일이야." 

난 나의 이야기를 마친뒤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절대 섹스를 하지 않을 거야." 

아직은 주제가 어색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말할 수 있다.

"글쎄, 그걸 미리 결정할 필요는 없어. 단지, 그에 대한 질문이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엄마나 아빠에게 물어봤으면 좋겠어. 섹스는 세상의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때가 되면 알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거고." 

이제 우리 딸의 첫 생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품게 될 대단한 능력이 그 아이의 선택 아래 삶과 조화를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 


더불어 몸과 마음에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조촐하지만 멋진 축하 방식을 궁리 중이다. 

여자의 성장은 세상이 함께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닌가.  


출처:www.pierrot.pe.kr



돌이켜서 난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대구에 있는 집장촌을 갔었다. 당시 돈으로 삼천원 정도였던것 같은데 어떻게 내가 그 큰 돈을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당시 학교에서 유행했던 "포르노 만화"처름 여자랑 할 수 있다는 것, 엄청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별로 깊이있게 생각하지 못했다. 


미로처름 엮인 어두컴컴한 거리를 지날때 마다 이쁜 누나들이 손을 흔들어 댄다. 바지의 텐트는 주체를 할 수가 없고 단지 어느곳이 우리같은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받아줄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걷는 내내 어깨에는 어른의 흉내를 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최대한 멋스럽게 보여야한다는 소영웅심이 가득찼다.


기억의 끝자락을 줌인(Zoom in) 해서 들어가 보면 집장촌을 관리하는 할머니 인것 같은데 우리가 가는 길을 막아서며 묻는다. 


"하러 왔니? ,돈은 얼마나 있어?  내가 이쁜 누나랑 연결시켜 줄테니 잔말말고 따라와." 


우린 대꾸 할 틈도 없이 그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나와 친구 2명은 코너를 돌아돌아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화대값 부터 달라고 한다. 우리는 코뭇은 돈을 모아 화대비를 지급하고 지정된 대기장소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가 우리를 모아놓고 주입식교육을 실시했다. 


너희들 명심해야 할게 있어!, 절대 방을 들여다 보지마 그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면 5분 뒤에 다른 친구가 들어오면 되. 알았지? 


그것이 다 였다. 


그랬다. 


그 여자는 우리 친구 3명을 돌아가면서 안았으며 그렇게 우리의 아다(최초의 경험)는 그렇게 끝났다. 허무하리 만큼 처참하지만 학교에서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 였다..


난 아내와 7년간의 연애를 하면서 결혼하기 전에  한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아내가 성에대해 가진 보수적 관념을 내가 가진 지식으로는 관철 시킬수 없었다. 더욱 중요한건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 존중의 댓가는 고스란히 내 몫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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