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예의를 고민하다.
사회에서 제법 어른의 축에 속한다.
당당하게 맞서던 상사의 지시에 더 이상 토 달지 않게 됐고, 후배들에게는 지시보다 부탁을 하게 됐다.
마흔초반의 문턱을 넘어서면 병법을 새로 쓰게된다.
'싸움의 기술'이 아닌 ‘후려치기의 철학'.
'싸워 이기기'가 아니라 '지지 않는 전략' .
“젊을땐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보이던 그 때, 무엇을 하든 두려움이 없었다.”
허나 마흔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항복 선언문’은 자연스럽다. 허나 이것이 회사내에서 차장 부장 정도의 테크닉이라면 임원으로 가는 기술은 확연히 다르다.
여기 표현의 형식을 고민하고 합당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을 올곳이 내면의 연습으로 안내하는 책이 있다.
마흔의 단어들 / 심의용 / 동녁 / 2016년11월
한 발짝 더 책으로 들어가 보자.
합당한 예의란 무엇인가?
내면의 정직을 잃지 않으면서 타인들에게 친절하게
꾸며서 전달해야 한다. 맨얼굴을 보여줘서 감사하다고 고마워 하는 사람들은 요즘 잘 없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 누구나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논리를 이렇게 바꿀수 있다.
누구나 정직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 표현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꾸밈” 이라는 표현의 형식을 고민하는 이유다.
‘당’ 이란 자신의 진심을 속이지 않는 “당당” 이고
상대와 상황에 적합하게 표현되는 “적당” 이며,
사리에 합리적으로 들어맞는 “합당” 이고, 자신의 능력이 충분하게 짏어 질수 있는 것이 “감당” 이다.
타인의 부탁을 들어줄수 있느냐 마느냐는 감당할수 있느냐의 기준이기도 하다. 당당하고 적당하며 합당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감당할 수있는 방식으로 타인을 응대하는 것이 예의를 갖춘 합당한 예의의 행위다.
그런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필요한 것은 맨얼굴의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예의의 합리적인 마땅함으로 진심을 전하는 태도이자 방법이다.
구분하자.
솔직한 것이 자연스러움이며 자연스러움이 인간적이라고 못을 박는다. 상대는 나의 솔직함을 볼려고 하는것 보다 나의 진심어린 예의의태도를 볼 것이다.
일전에 직장생활 할 때다.
한 임원이 밑의 직원에게 “이 안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편하게 말해보세요” 라고 말은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나름의 결론을 내고 있다. 타인의 말을 듣는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몰고가며 그의 감춰진 의도를 엿볼때 그남아 있었던 충성심도 나가 떨어지는 판국 이였다.
자신은 합리적이고 솔직했으며, 솔직한 것이 도덕적 우월성을 가진듯 말하지만 그의 감춰진 태도를 본 순간 답답한 마음 뿐이다. 직원들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안이 나왔고 자신의 생각을 포장하여 대표에게 고한다. 궁금했다. 아직도 그 임원이 근무하는지 물어보았다. 지금은 전무로 진급하여 근무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안타까움보다 아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아부(阿附)의 아(阿)는 ‘언더 아’ 자 부(附) 는 ‘기댈 부’ 즉 비빌 언덕 의지할 곳이다. 아부는 열추적 미사일 에 비교된다. 그가 임원이 되기 위해서 그 만의 필드에서 충분히 아부의 역사를 써왔으리라. 어디 안 가본 골프 필드가 있으리요.
나이를 먹을 수록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는 일이다. 프랑스 속담에 ‘재능은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신을 감추고 사람들의 미덕을 드러내도록 할 때 오히려 자신이 빛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나 혼자만 좋은 사람이 되도록 행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
작가의 말을 깊이 깊이 새겨볼 일이다.
깊어가는 가을아침.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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