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이레 6월호

백솔이네 토마토밭


아직 여름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벌써 등줄기로 땀이 흥건히 젖었다. 허리를 펴고 모자를 벗으니 엉킨 머리카락 새로 바람이 훅 하고 들어와 시원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던 땀방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솔아, 힘들면 쉬엄쉬엄 해라. 나머지는 할미가 할 테니깐.”

허리를 푹 숙인 채 할머니가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가 꼭 활 같았다.

“할머니, 어차피 여기 길 생기면 거두지도 못하는데 왜 심어? 아빠도 심지 말라고 했잖아. 아빠 오면 또 화낼 텐데….”

아침부터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일한 탓에 잔뜩 골이 나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십 년 전부터 집 근처 텃밭에 토마토를 심어왔다.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키운 토마토는 작긴 해도 달고 맛이 좋아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외지 사람들도 들러 사갈 정도였다. 시내 큰 마트가 훨씬 싼데도 마을 사람들은 싱싱하고 좋은 거 먹어야 한다며 서로 앞다퉈 우리 토마토를 사갔다.

할머니는 그 재미에 해마다 토마토 가지 수를 늘려갔다. 그런데 삼 년 전부터 토마토밭이랑 주변 공터 주변으로 도로와 물놀이장이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길이 들어서는 듯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좁은 길 때문에 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오도가도 못 하고 한쪽에 나무처럼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서로 비키라며 싸우기도 해 도로가 생긴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신이 났다. 게다가 변변한 놀이터 하나 없는 동네에 물놀이장이 생긴다니 아이들까지 들떠 공사를 기다렸다.

어른들은 조합을 세우고 공사를 빨리 시작하라며 시청에 민원을 넣는 등 일을 서둘렀다. 쓸모없는 땅을 이번 기회에 팔고 아파트를 사겠다는 집도 있었다. 조합장을 맡은 현우 아빠는 할머니에게 박카스를 사들고 와 매일 설득을 했다. 주민의 80프로가 찬성하면 무조건 시행된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 때마다 할머니는 퉁명스레 한마디 던지고는 토마토밭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빠도 처음에는 일이 그리 쉽게 되겠냐며 모른 척 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때문에 일이 늦어진다고 화를 내고 큰돈을 바라는 거냐며 비아냥거리자 할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 이제 그만 하세요. 용돈 제가 드릴게요. 허리도 아프다면서 왜 고집을 피워요. 어차피 마을 사람들이 안 사면 썩어 없어지는데 뭐 하러 심냐고요.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는 거 안 들려요!”

설득이 안 되자 아빠는 할머니한테 화를 냈다. 엄마가 옆에서 말렸지만 그럴수록 아빠는 더 화를 냈다.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토마토밭만 내다봤다.

할머니는 아빠가 없는 틈을 타 밭에 토마토 아주심기를 했다. 분명 아빠가 오면 화를 낼 게 뻔한데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일을 서둘렀다. 엄마는 오전 내내 일을 거들다 점심을 준비하러 들어가서는 무소식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꼼짝없이 붙잡혀 구멍 사이로 모종들을 심었다. 해마다 해 온 일이라 익숙해도 아픈 허리는 어쩔 수 없었다.

“솔아, 할머니랑 점심 먹어.”

마침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렸다는 듯 모자랑 호미를 홀랑 내버리고 할머니보다 앞서 달려 집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멸치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점심은 잔치국수다. 젓가락질 몇 번에 내 그릇은 금세 동이 났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할머니와 마당에 나와 잠시 쉬었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매실차를 들이키는 할머니 손등에 검버섯이 군데군데 피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두 손 사이에 끼고 부볐다. 서걱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할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 빙그레 웃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웃을 때는 꼭 내 친구같다. 나는 할머니를 향해 싱긋 웃어보이고는 일어나 토마토밭으로 가 모종을 마저 심었다.

하루 종일 토마토를 심은 탓에 모종들이 눈에 어른거려 잠을 설치다 아빠 목소리에 잠이 깼다.

“아니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내가 분명 심지 말라고 했잖아. 가을되기 전 공사를 착공한다고. 심어봤자 다 쓸어버릴 건데 뭐 하러 일을 사서 만들어. 어머니도 참.”

술에 취한 아빠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컸다. 엄마가 아빠 등을 밀치며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빠는 한참을 더 큰 소리를 내다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 할머니방에서는 깊이 잠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새벽까지 말똥거리던 눈이 어느 틈에 감겨 늦잠을 자버렸다. 부리나케 일어나 학교로 향했다. 간당간당하게 뛰어 들어와 숨을 고르는데 현우가 내 책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야, 백솔! 너 어제 또 토마토 심더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너네 때문에 길도 못 내고 물놀이장도 못 만드는 거래. 좁은 길 다니다 사람들 사고 나면 너희가 책임질 거야? 여름에 애들 수영장 값 네가 다 내 줄 거냐고.”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현우가 꼴 보기 싫어 대답대신 눈을 흘겼다.

“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야, 너희들 물놀이장 생기는 거 반대하는 사람 있어?”

현우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이들이 흘끔대며 나를 쳐다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화를 삼켰다.

그 후로 아이들이 내 등 뒤에서 수군대는 날이 점점 늘었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 아이들 몇몇까지 합세해 모두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러다 말거랬지만 대놓고 ‘이기주의자’ ‘욕심쟁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신발주머니를 화장실 변기에 쑤셔 넣는 사건도 생겼다. 실내화에 ‘백솔, 이기주의자’라고 써 놓기까지 했다.

화장실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다 집으로 와 가방을 집어던졌다. 그 순간 한참 꽃을 피우고 있는 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달음에 토마토밭으로 달려갔다.

“이깟 토마토가 뭐라고. 나도 물놀이장에서 놀고 싶어. 구불구불하고 좁아터진 길도 지겹다고. 이 토마토밭만 아니면 왕따 당할 이유도 없단 말이야. 꼴도 보기 싫어.”

토마토밭 한복판에서 악다구니를 치던 나는 곁순을 쳐 말끔하게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는 토마토 가지를 움켜쥐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가지를 뽑았다. 하나 둘 뽑다가 아예 모조리 뽑아 버렸다. 심을 때는 온 종일 걸리던 일이 뽑을 때는 순식간이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토마토밭을 뒤로 하고 큰길로 내달렸다.

마트를 시작으로 옷가게, 문방구 등등을 돌아다녀도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다. 주머니에 든 천 원짜리를 만지작대다 떡볶이를 사 먹고 나니 저녁놀이 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좁은 길을 터덜대며 걷는데 멀리 토마토밭에 구부정히 서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가 뽑힌 가지들을 살피며 고르고 있었다. 어차피 한번 뽑혀 시든 건 다시 심어도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데 그걸 고르고 있는 할머니가 미웠다. 할머니가 미련하고 바보같아 보여 더 화가 났다.

빵빵!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퇴근하고 돌아오던 아빠였다. 커다래진 내 눈을 뚫어져라 보던 아빠가 창문을 열고 타라고 했다. 아랫입술을 꼭 물고 차에 올라탔다.

구불구불 달려 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이 콩닥대며 당장이라도 터질 듯 했다. 아빠의 굳게 다문 입에서 당장이라도 고함이 나올 것 같아 조마조마 했다. 잘근잘근 씹어대던 입술에서 피가 나는지 비릿한 맛이 스며들었다.

집에 도착한 아빠는 창고에서 갈퀴를 꺼내 토마토밭으로 갔다. 엄마가 말릴 새도 없이 갈퀴로 어질러진 토마토가지들을 훑어 모았다. 손에 토마토가지를 들고 있던 할머니가 아빠 바지를 잡고 매달렸지만 아빠는 할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할머니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와 내가 달려가 부축을 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할머니를 보니 왠지 미안하고 겁이 났다. 다 내 잘못 같았다. 엄마는 나를 한번 흘겨보고는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발끝으로 운동화에 묻은 흙만 털었다. 금세 아빠가 긁어모은 가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꽃망울이 떨어져 너덜너덜하게 축 쳐져 있었다.

“네 잘못 아니야. 열 한 살짜리가 뭘 알겠니.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니까 미안할 거 없다.”

축 늘어진 가지들을 바라보고 서 있던 내게 아빠가 말했다.

“네. 그. 그래도 죄. 죄송해요.”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꾹 참고 말하느라 목이 아팠다. 일을 마친 아빠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참았던 눈물이 수도꼭지 마냥 툭 터져서는 아빠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아빠가 허리를 낮춰 흙이 묻은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솔아, 울지 마. 네 잘못 아니라니까. 할머니…. 치매란다. 아빠도 얼마 전에 알았어. 할머니가 쓸데없이 욕심 부리는 줄 알았는데 토마토밭 가꾸던 일이 할머니한테 제일 행복한 기억이었나 보더라. 아빠가 할머니를 너무 몰랐어”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우리 할머니가 치매라니. 내 이름도 알고 혼자 알아서 뭐든 다 하는 우리 할머니가 치매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아빠가 붉어진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에 아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보다 더 슬퍼 보였다. 입술을 꼭 깨물어도 자꾸 눈물이 나 아빠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마을에 덤프트럭들이 들어서며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공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큰 덤프트럭이 드나들자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조심시켰다. 뒷집은 먼지가 일어 여름인데 창문도 제대로 못 연다며 에어컨을 달았다. 물놀이장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은 물놀이장 대신 작은 공원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에 울상이 되었다.

우리 집은 시끄러운 마을과는 달리 조용했다. 일손을 놓은 할머니는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안하고 식사도 자주 걸렀다.우리 집에만 장마가 걷히지 않은 듯 했다.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미장원에 간 일요일 아침. 아빠가 일찍부터 덜그럭대며 차고로 쓰던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나 싶어 나가보니 차 트렁크에 방울토마토 모종들이 실려 있었다.

아빠는 창고 지붕을 덮고 있던 나무판자를 걷고 바닥을 쓸고 배양토를 뿌려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조리개로 물을 뿌려 흙도 촉촉하게 만들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 장갑을 끼고 아빠를 도와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할머니가 가꾸던 텃밭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았지만 조로록 심겨진 모종들을 보니 반가웠다.

아빠가 나머지 기구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방으로 들어가 크레파스를 들고 나와 한쪽 구석에 있던 나무 판자에 꼭꼭 눌러 썼다.

‘백솔이네 토마토밭’

아빠와 나는 창고 텃밭 입구에 푯말을 푹 눌러 박았다. 아빠와 나는 서로 마주보다 배시시 웃음이 나와 한참을 웃었다.

멀리서 장마 끝 무지개 같은 고운 모습의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두 팔을 높이 들고 힘껏 흔들었다. 할머니가 수줍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