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사러 갑니다
내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였다. 군을 제대하자마자 삼발이 운전부터 시작해 트럭, 시외버스 운전을 하다 쉰이 되어서야 비로소 당신 명의의 차를 갖게 되었다. 사업자등록을 알아보고 차를 계약하고. 아버지는 택시 사업 승인을 받은 후 끼니를 거르며 배 고픈 줄도 모르고 신이 나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고는 울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나는 많은 과제와 시험에 피곤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지만 선뜻 동행하겠다고 했다.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더 못하거나 잘할 리가 없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청량리역에서 막차를 탔다. 밤새 달려 새벽에 도착해 제일 먼저 출고받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게 시간을 계산했다. KTX가 없던 시기라 덜컹대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장시간을 간다는 건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설핏 잠이 들만하면 어딘가에 멈춰 누군가를 태우고 또 잠이 들만하면 덜컹덜컹. 엉덩이가 쉴 새 없이 시달렸지만 아버지의 들뜬 모습에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울산에 도착했다. 역 대합실에서 동이 트길 기다리면서 자판기에서 마신 커피는 지금도 최고의 맛이라고 할 정도로 꿀맛이었다. 잔뜩 움츠렸던 몸도 녹여주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달려온 몸 구석구석의 긴장감도 풀어주었다.
어둠이 가시자 택시 한 대가 역 앞으로 와 섰다. 아버지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달려가 택시를 잡고 나를 불렀다. 나도 단숨에 커피를 마시고 얼른 택시에 올랐다.
“자동차 출고장이요!”
아버지의 우렁찬 목소리는 스무살의 신임병 같았다.
“차 뽑으시나 봐요. 축하드립니다.”
택시 기사님이 빙그레 웃으며 아버지를 축하했다. 아버지는 봉인해제라도 된 양 그 동안의 자신의 삶을 처음 보는 기사님에게 줄줄이 풀어냈다.
“내가 운전만 30년 했어요. 이 택시 한 대 받으려고 아등바등 살았지요. 재작년 쟤 엄마 먼저 보냈을 때도 자식 새끼들 굶기지 않으려고 장례치르자마자 일을 나간 사람입니다.”
“아이고 진짜 축하받으셔야겠네. 훌륭하십니다. 저는 언제야 제 택시를 받을까요? 허허허.”
기사님과 아버지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 낀 나는 왠지 머쓱해 잠이 든 척 하며 고개를 모로 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택시는 서울에서는 막차였지만 울산에는 처음 도착한 기차를 타고 첫 택시에 몸을 싣고 첫 출고를 하고 세상의 모든 처음 것을 다 담아 아버지 평생 a으로 들어왔다. 수동 기어의 차를 몰다 자동 기어의 차를 모니 30년의 경력이 무색할만큼 서툴렀다. 왼쪽 발을 자꾸 헛놀리고 오른손을 기어에 올린 채. 하지만 곧 익숙한 솜씨로 서울행 고속도로를 달렸다.
“새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줘야 길들여져. 씽씽 달려줘야 엔진이 몸을 풀 듯 풀어지고 바퀴도 적당히 닳고. 그래야 더 오래 타는 법이야.”
아버지는 말과는 달리 내내 속도를 조절해 가며 어린아이 달래듯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엄마의 묘소로 향했다. 엄마의 묘소 입구에 차를 세우고 막걸리를 차 주위에 뱅 둘러 붓고 누구에게 올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절을 했다. 엄마에게인지, 자동차 신에게인지, 재물의 복을 줄 누구에게인지. 그 대상이 누구면 어떠랴. 지금껏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아버지를 위로해 주고 축복해 줄 대상이라면 그 누구든 상관없었다.
“여보, 보여? 이게 우리 차야. 포니2라고 이번에 새로 나온 차래. 멋있지? 당신을 제일 먼저 태워주고 싶었는데 왜 먼저 갔어? 조금만 기다리지.”
아버지는 장례식에서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와 엄마의 묵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나는 슬며시 뒤로 빠져 잡초를 뽑는 척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찾아올 행복을 위해 서로 애쓰며 노력해왔던 날들을 위로하고 뒤늦게 찾아온 복을 함께 누리지 못함을 안타까워 했으리라.
그 후로도 아버지는 대여섯번 택시를 바꾸며 일흔이 넘을 때까지 택시운전사의 삶을 사셨다. 탁송 서비스가 생겨 굳이 차를 출고하러 먼 곳을 갈 필요가 없는데도 아버지는 막차를 고수하며 직접 출고를 하러 가셨다.
“차푯값이 더 나가겠어요. 그냥 서비스 맡겨요. 여행가는 것도 아닌데 매번 휴가까지 받아 따라가는 거 이제 즐겁지 않다구요.”
번번이 동행하길 원하시는 아버지에게 한번은 볼멘소리를 했다. 차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휴가를 받으면 직장 동료들은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러냐며 놀려대기 일쑤였다. 그 놀림이 왠지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한심스럽게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탁송 서비스 받으면 편하고 좋지. 요즘 기차푯값이 오죽 비싸냐. 나도 다 안다. 그런데 나는 기차를 타면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는 설렘 못지 않은 설렘을 느껴. 기차에 내 몸을 맡기면 꿈을 파는 멋진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 같아 신이 나고 즐거워지지. 기억나니? 처음 택시를 받으러 갔던 날. 나는 그날 처음 꿈을 샀지. 내가 사는 동안 은 그 꿈을 내 손으로 직접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단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당연히 직접 가야지 않겠니?”
나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탁송료 몇 푼을 아끼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이 차를 먼저 타 부정을 타게 될까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밤새 달리면 꿈을 사게 될 거라는 설렘의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울산이며, 부산이며 달려가셨을 게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어렸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내 아이의 입시를 위해 기차에 올라타서야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했다. 눈으로는 면접예상지를 보며 잔뜩 긴장해 달달 떨고있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저기 창밖을 봐봐.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 보이지? 끊어질 듯한데 또 이어지고. 사는 게 그래. 지금 안 되면 당장 삶이 끝날 것 같지만 또다른 삶이 기다려.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이 기차에 몸을 맡기고 너의 꿈을 사러간다는 마음으로 즐겨. 결과 따위는 그닥 중요하지 않으니까 좀 쉬어.”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딸에게 전하고 있었다. 딸은 그제서야 주섬주섬 가방에 예상지를 넣고 눈을 감고 등받이에 몸을 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낮게 코를 골며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니 빙그레 웃음이 났다.
그 기차를 탄 누군가는 새로운 인연을 꿈꾸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안착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오랫동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는 안식을 꿈 꾸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내 아이처럼 미래를 향한 도전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혹은 나처럼 그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며 동행하는 의미로 기차에 올랐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덜컹대는 기차는 꿈을 파는 어딘가로 데려다 주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행복하고 설레는 꿈을 샀을 것이다. 꿈이 얼마나 이루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원래 여행은 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순간이 제일 신나고 행복한 법. 기차에 오르는 순간 이미 꿈의 절반은 이루어졌을 테니까.
올 여름에는 기숙사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올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아버지를 모시고 기차에 몸을 실어야겠다. 짐이야 택배로 받으면 되니 오래간만에 아버지, 나, 아이 삼 대가 함께 제대로 된 기차여행을 해야겠다. 찐계란에 사이다까지 준비해 아버지에게 추억도 선물하고 아이에게는 레트로 문화를 알려주며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꿈을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