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둘째도 나, 셋째도 나

by 안단테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다 같이 외출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이 물었다.


" ... 나. 둘째도 나, 셋째도 나.

엄마는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해. 너도 그렇게 해.

그리고 사실 엄마 '나' 안에 아빠도 있고, 너도 있어. 우리는 하나야."


내가 우선이다. 그래야 나머지도 챙길 수 있다.

결혼 전, 일을 하며 돈도 벌고 모으고, 보람도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가족을 챙겼고,

결혼 후, 역시 내가 행복해야 나머지를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산, 육아로 경력이 3~4년 단절되었을 때 경제적 여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로 고민했었다. 사춘기 때도 그냥 지나친, 궁금증이 이제야.


ㅡ임용공부를 다시 해볼까?

정교사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ㅡ그럼 일을 할까?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하며 맡은 업무며 교내외로 활동한 게 있는데 싶었지만, 기간제교사 자리에 지원을 해도 최근 경력이 없는 내가 쉽게 통과하기는 어려웠다.


ㅡ그럼 나는 정말 교사라는 일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타이틀이 좋은가?

수능 성적에 따라 사범대를 진학했고 당연하게 공부하고 졸업을 했는데, 이제 이런 고민을 하다니.


이런저런 고민은 시간 낭비일 뿐.

교육청 공고를 보고 감정코칭단에 지원해 보았다. 교육, 연수를 받은 후 학생들의 정서, 학력과 관련하여 감정 코칭 및 조언을 하는 일로 나에게도 필요한 일 같았다. 아이를 키우며 이전에는 몰랐던 학생들의 마음, 행동, 말 등이 떠오르며 뒤늦게 이해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 코칭단 활동을 하면 나도 아이도 학생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같이 생각해 보고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 등이 나에게도 배움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어보고 싶었다. 집과 가까운 학교에 지원하여 다시 나도 즐겁고,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아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가 국어 선생님이라는 것을 유치원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다니고, 그래서 자기도 책을 좋아한다는 둥, 가끔 길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보고


"저 형아들을 엄마가 가르쳐요?"

하며 놀라면서도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며 일을 다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학은 그냥 갔으나 '국어'는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글 쓰기는 어려워도 책 읽기는 무엇이든 좋아하고 가장 의지하는 친구였으니. 잘 못해도 좋아하는 거니까 나대로 수업해 보고 학교생활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하니 이전과 다르게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 내가 행복하면

너도 챙길 수 있고 우리가 행복한 거야.

그래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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