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11화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
한정우 대리는 늘 타이밍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말을 꺼내야 하는 순간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좀 얄미웠다. 회사에는 밤새 엑셀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아침부터 욕먹으며 문서를 고치는 사람도 있었고, 구현 안 되는 기능을 두고 개발팀과 씨름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회의실에서는 그런 사람보다 한정우 대리 쪽이 더 센 것처럼 보였다.
그 무렵 와글소프트는 밖에서 보기엔 꽤 괜찮은 회사였다. 업계 최상위권은 아니어도 이름은 알려져 있었고, 한 번 크게 성공한 회사라는 자부심도 아직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자부심의 대부분이 여전히 하나의 게임에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왕국대전 온라인`은 회사를 키운 대표작이었다. 오래된 팬이 있었고, 안에서는 그 게임을 얼마나 오래 봤는지가 은근한 권위가 되기도 했다. 다들 미래를 말했지만, 실제로 프로젝트실에서 제일 자주 붙잡는 건 결국 이번 이벤트 보상안, 주말 접속 피크, 제작 재료 수급표 같은 현재의 숫자였다. 회사는 그 게임 덕분에 버티고 있었고, 동시에 그 게임 때문에 늘 지쳐 있었다.
나는 바로 그 한가운데로 들어온 신입이었다. 겉으로는 그냥 다음 주 이벤트 회의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여기서 말 한 줄, 숫자 하나, 공지 문구 하나가 괜히 예민한 게 아니라는 걸. 다만 나는 아직 그 무게를 사람들 표정으로 먼저 배우는 중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오전 회의 안건은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했다. 다음 주 이벤트 보상안, 주말 접속 피크 시간 대응, 게시판 불만 정리, 그리고 수정 예정인 제작 재료 수급표 확인. 겉으로 보면 다들 각자 맡은 일을 조금씩 조정하면 끝날 법한 일들이었다. 문제는 이런 회의가 대개 내용보다 기분으로 먼저 꼬인다는 점이었다.
박문태 팀장은 주말에 올라온 장애 로그 때문에 이미 예민해져 있었고, 윤성호 팀장은 워크숍 이후 밀린 일정 때문에 말수가 더 줄어 있었다. 최지수 선배는 회의 시작 전부터 표정이 지쳐 있었고, 나는 아직도 어떤 말을 어느 순서에 꺼내야 안전한지 계산이 느렸다.
한정우 대리는 회의 시작 30초 전에 들어왔다.
늦은 것도 아니고 빠른 것도 아니었다. 가장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종이컵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들어와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회의실을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문태 팀장님, 오늘은 제가 먼저 혼날 사람 정리해드릴까요?”
회의실에서 몇 사람이 웃었다. 박문태 팀장도 아주 잠깐 입꼬리가 움직였다. 별것 아닌 농담 같았는데 공기가 조금 풀렸다. 나는 그런 게 늘 신기했다. 같은 농담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례가 되기도 하고 분위기 전환이 되기도 했다. 한정우 대리는 그 차이를 본능처럼 아는 사람 같았다.
회의는 예상대로 보상안에서 막혔다.
운영 쪽은 유저 불만이 쌓였으니 이번엔 체감 보상을 조금 더 올리자고 했고, 개발 쪽은 그걸 올리면 다음 주 밸런스 수치가 다 흔들린다고 했다. 나는 중간에 끼어 있었다. 기획 문서상으론 두 말이 다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메모를 열심히 하거나, 누가 더 화를 낼 것 같은지 눈으로 먼저 확인하는 정도였다.
박문태 팀장이 말했다.
“맨날 이벤트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구조를 좀 손보죠.”
운영 쪽에서 바로 받아쳤다.
“구조 손보는 동안 유저는 계속 빠지잖아요.”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보다, 이 대목에서 누가 먼저 사람을 찌르기 시작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회의실은 그런 식으로 자주 흘렀다. 내용은 명분이고, 진짜 싸움은 책임의 방향을 정하는 식이었다.
그때 한정우 대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이번 주는 운영 쪽에서 급한 불만 끄고, 다음 빌드 때 구조 손보는 안은 기획이 정리해서 같이 올리는 걸로.”
말 자체는 아주 새롭지도 않았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했으면 아마 “기획이 너무 쉽게 말하네”쯤의 반응이 돌아왔을 것이다. 한정우 대리가 하니까 이상하게 덜 가벼워 보였다. 그는 누구 편을 드는 척하지 않으면서도, 누구 얼굴이 더 상하지 않는 쪽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정우 대리가 말을 이었다. “게시판 지금 분위기상 오늘 안에 한 줄이라도 예고는 나가야 돼요. 안 그러면 주말까지 또 우리끼리 욕먹어요.”
그 문장도 묘하게 셌다. ‘우리끼리’라는 말 때문이었다. 운영 쪽 편만 드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얻어맞는다는 식으로 묶어버리면, 이상하게 다들 반박을 덜 했다. 회사에는 그런 말이 있었다. 내용보다 먼저 사람을 같은 배에 태우는 말.
윤성호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도윤 씨가 안 정리하고, 정우 대리가 운영 쪽 코멘트 붙여서 같이 봅시다.”
나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정리한 안인데, 왜 한정우 대리가 붙는 순간 더 그럴듯해지는 걸까. 억울하다고 하긴 애매했고, 납득이 안 간다고 하기엔 너무 자주 보는 장면이었다. 회사에는 분명 문서를 만드는 사람과 문서를 통과시키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 한정우 대리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기분 나빴어요?”
“아니요. 그냥… 제가 한 말이랑 비슷한데, 대리님이 하니까 좀 다르게 들려서요.”
한정우 대리가 웃었다.
“도윤 씨도 나중엔 그렇게 들릴 때 와요.”
“뭐가 다른 거예요?”
그는 종이컵 뚜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회의실에선 맞는 말이 먼저가 아니에요. 지금 누가 먼저 듣고 싶어 하는 말인지가 먼저지.”
나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는 했는데 마음에 잘 안 들어왔다. 맞는 말이 먼저가 아니면 대체 뭐가 먼저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회사에선 내가 이해 못 하는 문장들이 대체로 오래 살아남았다.
점심시간에 최지수 선배에게 슬쩍 물었다.
“한정우 대리는 원래 좀 그런 스타일이에요?”
최지수 선배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말했다.
“어떤 스타일.”
“되게… 분위기를 잘 잡는?”
“응. 그런 사람 있지.”
“근데 다들 좀 듣는 것 같아서요.”
최지수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회의실에서 싸움 덜 나게 만드는 사람은 생각보다 귀해.”
그 말은 한정우 대리를 딱 한 줄로 정리했다.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 제일 정확한 사람도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싸움을 덜 나게 만드는 사람. 회사는 이상하게 그런 사람을 은근히 세게 대했다. 다들 싫어하는데도 필요하고, 얄미운데도 무시 못 하는 사람.
오후에 게시판 대응 문구를 정리하다가 나는 한정우 대리가 수정한 문장을 봤다. 내가 써놓은 초안은 이랬다.
‘제작 재료 수급 구조 개선을 검토 중입니다.’
한정우 대리가 손본 문장은 조금 달랐다.
‘이용자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작 재료 수급 구간의 체감 부담을 우선 확인하고 있으며, 개선 방향을 빠르게 안내드리겠습니다.’
더 길었다. 더 빙빙 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안전해 보였다. 회사 문장은 늘 그런 식으로 늙어 갔다. 짧으면 맞고, 길면 안심이 됐다.
잠시 뒤 운영 쪽 실무 한 명이 와서 그 문장을 보더니 말했다.
“이거 너무 회사 말 같은데요?”
나는 속으로 조금 반가웠다. 역시 내 초안이 더 나았던 것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한정우 대리는 그 말에도 바로 내 쪽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문장의 앞뒤만 살짝 바꿨다.
‘제작 재료 수급 구간의 체감 부담을 우선 확인하고 있으며, 이용자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 방향을 빠르게 안내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운영은 유저 말처럼 들려야 안심하고, 회사는 회사 말처럼 보여야 안 불안해해요. 둘 다 조금씩 만족시키면 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더 얄미웠다. 맞는 말이라서였다. 한정우 대리는 문장을 더 좋게 만든다기보다, 문장을 두 쪽 다 덜 싫어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그건 생각보다 큰 능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보다 저장했다.
퇴근 무렵 한정우 대리가 또 프로젝트실 쪽으로 와서 말했다.
“도윤 씨, 오늘 회의 때 말하려던 거 있었죠?”
“아까요?”
“표정에 써 있던데.”
나는 민망해서 웃었다.
“있긴 했죠.”
“좋은데, 너무 바로 던지진 마요. 회사는 생각보다 내용보다 순서에 예민해서.”
그 말은 윤성호 팀장이 자주 하던 말과 비슷했는데, 한정우 대리가 하니까 조금 다르게 들렸다. 윤성호 팀장의 말은 규칙 같았고, 한정우 대리의 말은 생존 팁 같았다. 같은 뜻인데도 이상하게 후자가 더 현실적이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회사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일이 굴러가게 보이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는 대체로 오래 지쳤고, 후자는 대체로 오래 살아남았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었다. 다만 회사가 어느 쪽을 더 빨리 알아보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가끔,
제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
제일 덜 싸우게 만든 사람이 더 센 사람처럼 보였다.
그게 좀 억울했고,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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